동백나무 서울살이 7년째 거뜬 아열대 병해충 출현 잦아
잣·구상나무 산 정상쪽 이동
고산식물 사라질 위험
정밀한 조사·보존대책 필요 “남쪽 해안과 섬에서 자란다는 동백나무가 서울에서도 7년째 거뜬히 자라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기후변화가 생물종의 생활 지역도 바꾸고 있습니다.” 서울 청량리2동 국립산림과학원 안에 자라는 남방 식물들을 가리키며 신준환 박사(산림환경부장)은 “한반도에서 생물종의 이동이 점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산림과학원은 지난 1998년 과학원 안 온실이 비좁아지자 동백나무·가시나무·감탕나무 등 남방 식물 8종을 온실 밖에 심었다. 최명섭 박사(산림생태과)은 “당시 온실이 비좁아지자 남쪽 식물이 북방한계선을 넘은 서울의 온실 밖에서도 자랄까 하는 호기심 반, 궁여지책 반으로 심었는데 별탈없이 7년째 버티고 있다”며 “나무를 연구하는 사람들한테는 매우 신기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동백나무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꽃을 피울 것으로 기대된다. 기후변화의 도전에 대한 생물종의 응전이 ‘생물종의 점진적 이동’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들이 잇따르고 있다. 그 이동은 점차 따뜻해지는 북쪽 지역으로, 산 정상으로 향해 수십년에 걸쳐 조금씩 나타난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대표적 종의 이동은 사람들의 감시망에 쉽게 걸리는 병해충들이다. 산림과학원 조사결과를 보면, 아열대 기후에서 일어나는 병해충들이 지난 10~20년 사이에 한반도에 출현하는 일이 점차 잦아지고 있다. 1월 평균기온이 섭씨 0도 이상 지역인 미국 남부, 멕시코, 일본 큐슈 남부 등에서 발병하는 아열대성 병충해인 푸사리움가지마름병이 96년 한반도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확산 중이다. 동남아시아에 주로 사는 대벌레도 1983년 이후 확산해 지금은 내륙산간까지 북상 중이다. 최근 북상 중인 소나무 재선충도 아열대성 병해충으로 꼽힌다. 신 박사는 “국경을 넘는 교류가 잦아지면서 아열대성 병해충이 옮아올 수 있지만 이렇게 쉽게 적응해 퍼지는 것은 지구 온난화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
||||||
설악산 나비에 대한 조사결과도 생물종의 점진적 이동을 보여준다. 권태성 박사(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의 조사분석을 보면, 지난 30년 동안 출현 빈도가 감소한 나비 종은 한해에 3~5세대를 거치는 나비 종(제비나비·줄흰나비·작은주홍부전나비 등 4종)보다 1~2세대를 거치는 나비 종(왕자팔랑나비·이른봄애호랑나비·모시나비·갈구리나비 등 6종)에서 뚜렷히 나타났다. 반대로 출현 빈도가 높아진 나비 종은 한해에 3~5세대를 거치는 다세대 나비 종에서 더 많았다. 권 박사는 “아열대 등 더운 곳에서 주로 많은 다세대 나비종의 출현이 잦아지는 설악산의 변화는 온난화의 영향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연구에서도 우리나라 집흰개미의 서식 북방한계선(북위 32도)은 35도까지 북상했으며 솔나방도 30년 전 중부지방에서 한차례, 남부에선 한두 차례 산란했으나 99년 이후 조사에서는 한해에 세차례나 산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사과의 주산지가 60년대 대구 일대에서 지금은 안동·영주·의성·문경·예천 등으로 북상하는 등 작물에서도 종의 북상은 이미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고산지대와 섬 지역의 식물이 가장 큰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한라산 고산지대는 대표적인 피해 예상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고산식물을 조사한 공우석 경희대 교수(지리학)는 “최근 조사에서 한라산의 극지·고산식물인 돌매화나무·시로미·솜다리·구름체꽃 등 9종이 쇠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높은 산 정상 부근에 사는 식물종은 밑에서 위로 올라오는 식물종과 경쟁해야 하는 데다 여름철 최고기온의 상승으로 예전처럼 왕성하지가 못하다”고 말했다. 한라산국립공원 부설 한라산연구소 고정군 박사는 “한라산 극지·고산식물은 기온상승의 영향으로 가장 먼저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중턱 식물종들도 쉽지 않은 처지에 놓여 있다. 박원규 충북대 교수(산림과학)는 “소나무는 봄에 가장 활발히 생장하는 특성을 지니는데 기온은 올라 이른 봄부터 생장을 시작하지만 봄 가뭄 때문에 오히려 생장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구상나무·잣나무 등도 표면적이 줄어드는 산 정상쪽으로 이동하면 생존 경쟁이 치열해져 쇠퇴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국제기구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은 유럽과 미국의 과거 식생 자료를 바탕으로 중위도에서 평균기온이 1도 오르면 기후대는 북쪽으로 150㎞, 수직으로 150m 가량 이동하는 효과를 일으킨다고 보고한 바 있다. 공 교수는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반면에 식생대가 기후대의 이동을 따라가지 못하면 많은 식물종이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며 정밀한 식생 조사와 종 보존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