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화망간 나노입자 MRI 조영제를 이용해 촬영한 실험용 쥐의 뇌 영상(가운데). 보통 MRI(왼쪽) 영상보다 선명해, 해부도(오른쪽)와 같은 수준을 보여준다.
나노공학자 현택환·영상의학자 이정희 교수 공동개발
현택환(43) 서울대 공대 교수는 3년 전 모양과 크기가 고른 분자 수준의 나노입자들을 값싸게 대량으로 제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논문이 과학저널 〈네이처 머티리얼〉에 실려 지금까지 다른 에스시아이(SCI·과학논문인용지수)급 논문에 106회나 인용됐다. 지난해에는 에스시아이 관리 회사인 톰슨이 선정하는 ‘뉴 핫 페이퍼’에 뽑히기도 했다. 현 교수는 자신의 기술로 만든 나노입자를 이용해 자기공명영상(MRI)의 새로운 조영제 개발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국내 굴지의 의과대학에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세 차례나 모임을 했음에도 상대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이런 차에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원 출신인 이정희(45) 성대의대 교수의 ‘망간 이온을 이용한 조영증강 엠아르아이’ 관련 발표를 보고 현 교수는 무릎을 쳤다. 그는 포럼 뒤 이 교수를 찾아가 명함을 건넸지만, 이 교수는 ‘유명한’ 그를 몰라보는 듯했다. 현 교수는 “공동연구는 이 교수의 남편인 이명균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가 자신의 테니스 파트너인 나를 ‘괜찮은 친구’로 추천하면서 성사됐다”고 말했다. 사회에서는 같은 이공계로 분류하지만, 철학과 수학 사이보다 거리가 먼 공학과 의학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돼 과학·의학계가 주목할 연구 성과를 낳았다. 현 교수 연구팀은 18일 “기존 영상기술과 조영제로는 볼 수 없었던 뇌 조직을 살아 있는 분자-세포 차원에서 해부를 한 듯이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해주는 MRI 조영제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기존 병원 영상의학과에서 쓰는 조영제는 ‘혈뇌장벽’이라는 장애물 때문에 뇌 조직을 찍을 수 없었다. 과학자들은 최근 분자-세포 수준의 영상을 얻기 위해 나노입자를 이용한 새로운 조영제를 개발했지만, 영상이 어두워 내출혈 등 다른 병리현상에 의한 영상과 구분이 어렵거나 동물실험에서 심장마비 등 부작용이 발생하는 한계가 있었다. 공동연구팀은 현 교수팀이 제조한 산화망간 나노입자를 이용해 세포 안에 흡수가 잘 되고, 독성이 없으며, 표면에 약제 등을 부착할 수 있는 성질의 새 MRI 조영제를 개발했다. 연구팀이 이 조영제를 쥐의 정맥에 주사한 뒤 MRI로 뇌, 간, 신장, 척추 등을 촬영하자 해부를 통해 만든 것처럼 선명한 영상을 얻었다. 또 유방암세포 특이 항체(허셉틴)를 결합시킨 조영제를, 뇌에 유방암이 전이된 쥐에 주입해 0.7㎜ 크기의 암세포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현 교수는 “알츠하이머병·파킨슨병·간질처럼 혈뇌장벽 손상 없이 진행돼 기존 방식으로는 영상을 얻기가 어려웠던 질환의 진단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물론 장기 독성 여부 등 후속 연구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의 논문은 세계 권위지인 독일화학회의 〈안게반테 케미〉 14일치 온라인판에 실렸으며, 5월호 학회지 표지논문으로 게재될 예정이다.
이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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