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 과학자 비율이 약 12퍼센트밖에 안 되는 우리나라에서 ‘과학자의 반이 여성이라면’ 하는 가정은 현실성이 없지만 남녀 과학자의 비율이 비슷했다면 과학 기술은 지금과 어떻게 다른 모습일까를 상상해 보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다.
과학전문지 <사이언스>를 출판하는 미국과학진흥협회의 2005년 연차대회의 한 토론회에서 국제여성과학자네트워크(INWES)의 모니크 후리츠 회장은 환경파괴를 초래할 연구비 지원을 용감히 거절한 지도교수를 예로 들면서 여성과학자의 참여가 높았다면 과학이 훨씬 환경친화적으로 발전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여성적 사고와 끈기와 섬세함이 도입되었다면 과학기술은 지금보다 더 자연친화적이고 실용적이며, 또 좀더 융합적인 발전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의견과 함께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유전자 위치 이동 학설로 1983년 81살에 노벨상을 수상한 바버라 매클린톡의 연구 일생은 생명에 대한 자연친화적 연구, 여성적 끈기와 사고의 전형을 보여준다. 30년간이나 학계에서 무시당하고 이단자 취급을 받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평생을 옥수수 생명체의 본질과 유전자 특성을 탐구하였다. 연구에 몰두했을 때 그는 옥수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안에, 그들과 함께 있었고, 그런 일체적 사고를 통하여 심지어 옥수수의 내부기관까지 보였다고 술회하고 있다. 연구대상과 혼연일체가 되어 연구한 끝에 그는 마침내 노벨상을 수상하는 이론을 정립했던 것이다.
26살의 젊은 나이에 아프리카 오지에 들어가 40여년 동안 침팬지들의 절친한 친구로서 동물들의 생태를 연구한 여성과학자 제인 구달은 차가운 제3자적 과학자가 아니라, 사랑으로 공감하는 한 인간으로서 침팬지에 대하여 중요한 발견을 하였다. 또한 단순히 과학적 연구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바쁜 중에도 직접 세계 각 곳을 두루 다니며,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 대한 애정을 감동적으로 일깨워주어 많은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국내외 과학교육 연구결과를 보면, 과학기술의 문제를 실제적인 콘텐츠 중심으로 접근하면 여학생들에게서 교육의 효과가 훨씬 크다고 한다. 여성의 경우 실용적 측면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실용적 측면에 대한 관심은 관계성 중심으로 생각하려는 여성적 사고의 특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실용성, 관계성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여러 분야들을 연결하여 융합하는 사고의 형태로 발전가능하다. 미래 과학기술은 융합과학기술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데, 이를 위해서도 여성과학기술자의 적극적 육성이 중요한 것이다.
이혜숙 이화여대교수·수학/WISE거점센터소장 hsllee@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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