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과학의 어제와 오늘]
2년 전에 경제시찰단을 이끌고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을 방문한 북한 국가계획위원회 박남기 위원장은 이 연구원이 개발한 사료첨가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는 북한의 생명공학 연구가 식량 증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가축사료 해결은 오래전부터 국가적인 힘을 기울여 연구해 오던 분야이다. 북한이 자력갱생을 중요시하므로, 이 안에서도 상당히 독특한 기술을 개발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산가단백질’이다.
산가단백질은 단세포 단백질(SCP)로서, 메탄올을 영양원으로 증식하는 세균이나 효모를 탱크 배양한 미생물 균체를 말한다. 북한이 여기에 ‘산가’라는 말을 붙인 것은 메탄올 제조 원료인 일산화탄소가 북한 고유의 산소열법에 의한 카바이드 생산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산소의 ‘산’과 카바이드의 ‘가’를 합성한 말인데 이 연구의 중요성을 감지한 당시의 최고지도자가 직접 명명했다고 한다.
산가단백질이 크게 부각되었던 배경에는 1980년대부터 대대적으로 건설한 순천 비날론공장이 있다. 산소열법을 사용하는 이 공장이 완공되면 연간 70만t의 메탄올이 생산되므로, 이로부터 30만t의 산가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다고 추산한 것이다. 이는 아미노산 조성 영양가로 600만t의 옥수수에 필적하므로, 양계에 이용하면 100만t의 닭고기나 달걀을 생산할 수 있다. 순천 비날론공장의 건설로 인민의 입는 문제와 먹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한다는 구상이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최고지도자의 관심이 지대한 만큼 과학기술계가 즉시 대응했다. 과학원 공업미생물연구소와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 농업과학원 등의 전문가들로 ‘산가단백질 전문위원회’가 설립돼 본격 연구가 추진되었다. 주요 연구에는 종균의 선택과 연속배양, 공정 최적화와 자동화·분리·농축·건조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 연구는 90년대 중반부터 크게 줄었다. 가장 큰 원인은 산소열법에 의한 카바이드 생산공정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산소열법이 소규모 공장에서는 성공적으로 운영되었지만 대규모 생산에는 부적합했던 것이다. 결국 원래의 전기식 카바이드 생산으로 전환하면서 메탄올 대량생산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최근에 절충식인 산소전기열법을 개발했다고 하지만 이를 통해 대량으로 산가단백질을 생산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산가단백질은 공업원료 대량생산을 통해 가축사료를 해결하려는 독특한 시도로서 북한 과학기술의 발전방향과 관련해 상당한 의미가 있다. 잘만 하면 비날론과 함께 또 하나의 세계적 연구 성과로 내세울 만한 제품의 개발이 거의 중단된 것이다. 다만, 북한 과학기술자들의 끈질긴 노력만큼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겠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cglee@step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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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연구위원 cglee@step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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