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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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4월 11일 한겨레신문 18면 ‘김훈의 거리의 칼럼’
김훈 기자
지난 6일 아침부터 직장으로 복귀한 발전노조원들이 전해오는 뒷소식은 흉흉하다. 사업장마다 '교육' 또는 '노사 한마음 대회'를 열어 복귀노동자들에게 여러 가지 문건들을 요구하고 있다.
돌아온 노동자들은 우선 복귀서를 써야 한다. 그다음에는 서약서를 써야 한다. 서약서는 파업 기간을 '무단결근'으로 규정한다. '잘못했으니, 회사가 요구하면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겠으며 징계조처에 승복하겠다'는 내용이다. 사업장에 따라선 이 서약서에 '파업참가 경위서'를 첨부해야 한다. 누구누구의 권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 파업에 가담했나를 '자백'하는 문서다.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어떤 발전소에선 또 '근무투입 자원서'를 써야 한다. 이제 일하기를 원하니, 작업라인으로 보내달라는 요청서다.
노동자들은 노·정간 '합의'에 따라 복귀한 것이다. 이 '합의'가 현장에선 '투항'으로 바뀐 듯하다. 노동자들의 복귀절차는 마치 전쟁포로 절차와 비슷한 느낌이다. 이런 일들이 '노사 한마음' 표어 아래 벌어지고 있다.
노사는 본래 '한마음'이 되기 어렵다. 여기에서 수많은 고통과 갈등이 일어난다. 하물며 인간에게 굴욕을 강요함으로써 관리자의 권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노사 한마음'은 불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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