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창간 31년 - 디지털 아카이브]
2000년 5월 15일 한겨레신문 19면
“<한겨레> 구독 12년 만에 신문에 등장하는 일까지 생기네요. 우린 너무 평범해 할 얘기도 별로 없는데….”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가회동 배경권(67)씨의 한옥집에 들어서자 네 식구가 마당까지 나와 반갑게 맞아주면서도 연신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배씨 가족은 4명 모두 한겨레신문사의 주주이면서 12년을 한결같이 <한겨레>만 구독한 열성 독자들이다. 게다가 배씨의 둘째아들 성재(22·한양대 휴학중)씨의 생일은 5월15일이다. <한겨레>보다 꼭 10년 먼저 태어났다.
“묘한 인연이지요. 87년 국민주 모금운동에 참여하면서 <한겨레>가 88년 5월15일 창간한다는 발표를 듣고 너무 기뻤어요. 당시 초등학생이던 둘째는 <한겨레>와 함께 자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죠.”
가족들을 <한겨레>의 주인으로 만든 배씨의 아내 신성수(59)씨의 말이다. 신씨는 <한겨레> 창간 즈음 한 신문사 해직기자가 부장으로 있는 출판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한국 언론의 잘못된 점을 생생하게 들으면서 자연스레 <한겨레> 가족이 됐다. 평소 중소기업을 운영해오면서 “재벌신문도, 신문재벌도 안된다. 국민을 위한 공정한 신문이 있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던 남편 배씨도 아내의 뜻에 흔쾌히 따랐다.
배씨네는 지난 96년부터 <한겨레>를 2부 구독한다. 성재씨가 논술공부를 위해 학교 갈 때 신문을 꼭 가져갔기 때문이다. 성재씨는 “한겨레 사설은 논리정연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워 입시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의 대학 진학 뒤부터는 배씨 가족이 열성 독자라는 사실을 안 종로지국에서 1부를 덤으로 배달해주고 있다.
<한겨레>의 ‘생일동기’ 성재씨는 “해마다 기사가 풍성한 창간기념호를 보면 마치 신문에 내 잔칫상이 차려진 기분”이라고 말했다.
네 식구 모두 <한겨레> 독자이지만, 펼쳐보는 지면은 각양각색이다. 배씨는 정치·사회면과 정보기사를 즐겨보면서 한때 <한겨레21>도 구독했고, 신씨는 요즘 디지털면을 관심있게 보고 있다. 또 뮤지컬 배우인 큰아들 성우(28)씨는 문화면과 <씨네21>의 애독자다.
<한겨레>에 애정을 갖고 있는 만큼 비판도 날카롭다. ‘한글예찬론자’인 신씨는 “‘춘투’ 같은 일본식 한자어보다 순우리말을 찾아야 한다”고 했고, 배씨도 “<한겨레>도 가끔 독선적일 때가 있는 것 같다”고 따끔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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