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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카이브

7만 국민 주주가 지켜온 한겨레

등록 2018-05-29 18:03수정 2018-05-29 18:08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한겨레신문 사옥 로비에 있는 주주명부 동판.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겨레신문 사옥 로비에 있는 주주명부 동판.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설 연휴를 하루 앞둔 2018년 2월 14일, 서울역은 귀성객들로 온종일 붐볐다. 오후 2시, 고향으로 향하는 사람들만큼이나 달뜬 얼굴을 한 10여 명의 사람들이 서울역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이날 아침 발행된 한겨레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한겨레신문사 임직원 같지만, 아니다. 이들의 정체는 한겨레 주주·독자 모임인 한겨레신문발전연대 회원들이다.

한겨레신문발전연대는 2001년부터 18년째 매년 설·추석 명절 직전에 귀성객들에게 한겨레를 홍보해왔다. 2001년 3월, 정형기 주주가 한겨레신문에 개인 돈으로 광고를 내어 모집한 한겨레신문사랑모임(한사모)이 2010년 다른 시민단체와의 연대에 무게를 두려고 한겨레신문발전연대로 이름을 바꾸었다. 초대 대표인 정형기를 이어, 노재우, 김종열, 임성호, 정재현, 이요상 주주 등이 모임을 이끌었다.

이 모임만이 아니다. 한겨레가족청주모임, 부산주주독자클럽, 경남주주독자클럽 등 전국 곳곳에 한겨레 주주·독자들이 조직되어 맹활약해오고 있다. 모두 각자의 삶터에서 자발적으로 조직되었는데, 이들이 목적하는 바는 비슷하다.

1992년 창립해 27년 차를 맞은 한겨레가족청주모임의 회칙에는 “이 모임은 가족끼리 한뜻으로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회의 민주화와 겨레의 통일’이라는 한겨레의 창간이념을 지역사회에서 실현해 나가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 사업으로는 첫째, 한겨레 독자 늘리기, 둘째, 모임을 키우고 널리 알리는 조직·홍보, 셋째, 민주·사회단체와 연대 등을 열거했다. 최영분, 임명수, 김성구, 조인호, 김윤모, 연규민, 정영권, 오상칠, 박찬교, 조관호, 김인규, 조철호 주주 등이 모임을 이끌었다. 부산·경남 지역은 하일민, 서금성, 배다지 주주 등이 주도했다. 경주·포항 독자 주주 모임은 이미진, 남용탁 주주 등이 지켜왔다.

한겨레신문발전연대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역에서 설 귀성객 등에게 이날 발행된 신문을 나눠주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겨레신문발전연대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역에서 설 귀성객 등에게 이날 발행된 신문을 나눠주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들만이 아니다. 2018년 3월 현재, 한겨레 주주는 모두 6만 9509명이다. 이들이 보유한 311억 3795만 원의 주식이 한겨레의 자본금이다. 전체 주주 가운데 95.14%가 200주 이하를 갖고 있다. 1000주 이하를 가진 소액 주주가 전체의 99.6%다. 이들 소액주주가 보유한 주식액은 191억 원이 넘는다.

창간 주주 2만7223명

국민 주주가 한겨레를 낳았다. 한겨레가 어렵고 힘들 때마다 도왔다. 1987년 12월 15일, 신문사 설립등기를 할 때 12억 5000만 원의 발행 자본금을 모았는데, 7000여 명의 주주들이 이 돈을 냈다. 1988년 2월 25일, 창간기금 50억 원을 다 모았을 때, 모두 2만 7223명이 참여했다. 이들이 창간 주주다.

창간 직후 발전기금 모금운동을 다시 벌였다. 1988년 12월, 주주가 3만 8217명으로 늘었고 자본금도 74억 원이 되었다. 그 뒤에도 꾸준히 국민주 모집을 통한 증자를 추진했다. 1989년 4월, 처음으로 자본금이 100억 원을 넘었고, 1991년 12월, 주주가 6만 명을 넘어섰다.

2001년까지 200억 원에 조금 못 미치는 자본금을 갖고 있던 한겨레는 2002년 12월, 자본금을 크게 늘렸다. 신문사가 어려움에 처하면서 임직원들이 퇴직금을 주식으로 바꿨다. 주주 수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자본금은 198억 원에서 311억여 원으로 크게 늘었다. 한겨레의 현직 임직원들이 보유한 주식은 2018년 현재 전체의 19.76% 정도다. 퇴직 임직원들이 보유한 주식을 더하면 그 비중은 더 늘어나지만, 사원 주주에 비해 국민 주주의 비율이 여전히 더 높다.

매년 열리는 한겨레 주주총회장에서는 2~3대에 걸친 가족 참가자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
매년 열리는 한겨레 주주총회장에서는 2~3대에 걸친 가족 참가자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

매년 2월 또는 3월에 열리는 정기주주총회는 국민주 신문사 한겨레를 상징한다. 전국의 주주 수백 명이 한자리에 모여 한겨레를 꾸짖고 격려한다.

2018년 3월 17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30기 정기주주총회 자리에서도 그랬다. 주주들은 경영진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손실이 나는 자회사를 빨리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자 교육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됐다. 삼성언론재단 등 바깥 단체의 돈으로 기자를 교육시키는 게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주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기자들한테 교육비를 대줄 수 있는 사업을 계획하면 어떤가?”, “지난 10년 동안 정부가 국가 경제를 제대로 운영했는지 철저하게 분석하는 보도를 한다면, 신문 판매를 늘릴 수 있지 않을까?”

화를 내고, 고함치는 주주들도 있다. 하지만 자제시키는 이도 주주들이다. 창간 때부터 매년 빠짐없이 주주총회를 찾은 이태호·김경자 부부는 2016년 “주총에서 주주들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것도 바른 길을 가기 위한 거라고 생각한다. 다 조용히 지나가면 한겨레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한겨레:온 주총 인터뷰 ’한겨레는 이미 100배 배당을 주었다’ 보러가기).

창간 초기 주식업무실 이사를 지낸 김태홍은 한겨레 임직원들이 주주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끼고 파악하려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했다. “서툴고 엉성하고 정돈되지 않은 ‘럭비공처럼 튀는 열성’은 때로는 부담스럽겠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민중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족들끼리 한겨레 주총장 찾기도

주주총회에는 어린아이를 업은 부모, 장성한 자녀의 부축을 받는 어르신 등 2~3대에 걸친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많다. 경기 군포시에 사는 정종식 주주는 30기 주주총회에 초등학교 5학년 딸과 2학년 아들을 데려왔다.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다음부터 내가 애착을 가진 신문은 이런 곳이라는 것, 기업 활동은 이렇게 이루어진다는 것 등을 보여주려고 함께 주주총회에 오고 있다.”

한겨레는 창사 이래 단 한 번도 주주들에게 이익을 배당하지 못했다. 한겨레 주식이 아직 주식시장에 상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겨레 주주들은 그 주식을 사고팔아 이익을 남길 것을 기대할 수도 없다. 한겨레 주주는 보통의 주주들과 조금 다르다.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금전상의 이득에 앞서 올바른 언론이다. “창간 정신을 잊지 말라.” 지난 30년 동안 한겨레 주주들의 요구다.

생각이 서로 다른 수만 명의 주주들이 내놓는 건강한 제안과 비판을 한겨레의 지면과 경영에 어떻게 담을 것인지는 한겨레가 영원히 짊어져야 할 숙제다. ‘세계 유일의 두레 자본주의’에 기초해 미디어 기업 경영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최선의 길을 한겨레 사람들은 여전히 찾고 있다.

오늘날도 누구든 한겨레의 새 주주가 될 수 있다. 2017년 2월 2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새 주주 초청 간담회. 전남 보성과 목포 등 전국에서 모두 54명의 새 주주가 이날 모임에 참여했다.
오늘날도 누구든 한겨레의 새 주주가 될 수 있다. 2017년 2월 2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새 주주 초청 간담회. 전남 보성과 목포 등 전국에서 모두 54명의 새 주주가 이날 모임에 참여했다.

한겨레 주주 가운데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글을 쓰려는 사람들이 많다. 한겨레 창간 때 논설고문을 지낸 리영희는 창간 직후 사보에 쓴 ‘한겨레 후배기자들에게’라는 제목의 글에서 “나는 우리 신문의 ‘기자’를 편집국 소속원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전국의 주주들도 각기 있는 곳에서 한겨레의 기자이고 기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주주도 한겨레에 직접 정보를 제공하는 뉴스 생산자라는 선구적 발상은, 2006년 5월 주주·독자가 직접 리포터로 참여해 기사를 쓰는 주주·독자 매거진 ’하니바람’ 발행으로 실현되었다. 주주들의 바람이기도 했다. 2005년 5월, 제2창간을 선언한 한겨레는 이듬해인 2006년 4월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주주 간담회를 열었다. “한겨레와 더 자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달라”는 주주들의 요구가 빗발쳤다. 하니바람은 종이신문 대판 형태로 한 달에 한 차례씩 발행되다가 2007년 8월 한겨레 경영 위기로 중단되었다.

2014년 9월, 한겨레는 다시 주주통신원을 모집하고, 2015년 1월 디지털 주주 매거진인 ’한겨레:온’(www.hanion.co.kr)을 창간했다. 250여 명의 주주통신원들은 다시, 자발적으로 한겨레주주통신원회 모임을 조직했다. 한겨레:온 편집위원회 자율규약을 만들고, 전국 한겨레 주주통신원 총회를 열었다. 2016년 겨울, 촛불 혁명 때 ‘한겨레:온’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여했다.

한겨레 주주·독자와 시민들이 협동조합을 꾸리고 종로 피맛골에 보금자리로 ’문화공간 온’을 만들었다. 이곳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한겨레 주주·독자와 시민들이 협동조합을 꾸리고 종로 피맛골에 보금자리로 ’문화공간 온’을 만들었다. 이곳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주주통신원회는 온라인 기사 취재·작성 활동에서 나아가, 한겨레 주주들과 시민의 오프라인 아지트 ‘문화공간 온’을 만들었다. 한겨레 주주·독자는 물론 시민사회와 협동조합 형태로 협업해서 사회적 경제 실험을 해보자는 취지였다. 신문에 첫 광고를 내고 열흘 만에 1억 원 가까이 모였다. 140여 명의 조합원이 2억 원가량의 자본금을 모아, 2016년 5월 17일 서울 종로 피맛골(종로구 종로 11길 6)에 문을 열었다. 공연, 전시, 강연, 세미나, 단체 회식 등을 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마련되었다. 일반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 한겨레가 창간 30돌을 맞아 디지털 역사관인 ’한겨레 아카이브’를 열었습니다. 이 글은 '한겨레 아카이브'에 소개된 내용의 일부입니다. 한겨레의 살아 숨쉬는 역사가 궁금하시다면, 한겨레 아카이브 페이지(www.hani.co.kr/arti/archives)를 찾아주세요. 한겨레 30년사 편찬팀 achiv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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