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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아카이브

창간 정신을 형상화한 사옥

등록 2018-05-29 18:10수정 2018-05-29 20:05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서울 안국동과 양평동 임대 사무실 거쳐
1991년 공덕동에 둥지 틀어 현재까지
1991년 완공된 서울 공덕동 한겨레사옥의 초창기 모습.
1991년 완공된 서울 공덕동 한겨레사옥의 초창기 모습.

2017년 9월, 국립현대미술관은 1987~1997년 한국 현대건축운동을 조망하는 ‘종이와 콘크리트’ 전을 열었다. 한겨레 사옥 모형이 전시장 맨 앞에 놓였다. 한국사회 진보 건축운동이 실현된 주요 결과물이라는 의미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건축계 일부는 국가 규모의 프로젝트를 돕는 역할에서 벗어나 건축을 사회문제와 연결하고 건축가의 자율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이 열망이 정치·자본 권력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한겨레 창간 정신과 맞닿았다.

창간 정신의 형상화

서울시 마포구 효창목길 6(공덕동 116-25번지). 한겨레 사옥을 설계한 사람은 한국의 대표적인 ‘저항의 건축가’로 불리는 조건영이다. 한겨레는 1989년 6월 조건영이 대표로 있던 기산건축설계사무소와 사옥 설계 계약을 맺었다. 시공은 처음에 부국건설이 맡았으나, 1991년 4월 부도를 내는 바람에 태화건설이 건물을 완성했다.

권력층과 거리가 먼 민중들이 일상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값싼 시멘트 뿜칠, 슬레이트 지붕에 칠하는 페인트 등이 건물 공법과 재료로 선택되었다. 한겨레 건물 중심부는 사람이 두 팔로 세상을 감싸 안는 형상으로 곡선 모양이다. 하지만 건물 앞쪽에는 매끈한 직선의 뼈대가 세워져있다. 건물 오른편에는 펜을 상징하는 삐죽한 탑까지 갖췄다. 곡선과 직선. 전체적으로 매우 낯선 형상이다.

조건영은 한겨레가 여느 신문과는 탄생부터 다르며, 그런 한겨레에 입사한 사람들이 일하는 공간은 여느 월급쟁이의 사무실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겨레 창간 정신이 사옥으로도 형상화되기를 바랐다.

“반역은 위험하고 힘들다. 상투는 안전하고 쉽다. 그러나 모든 진보는 반역으로부터 비롯된다. 반역은 역사와 사회를 썩지 않게 하는 유일한 처방이다. 바로 그 처방이 한겨레신문의 탄생 설화이다. 나는 이 탄생 설화를 부호로써 형상화시키고 싶었다.”

사옥은 1991년 한국의 10대 건축물의 하나로 뽑히는 등 건축사적 가치를 두루 인정받았다.

창간 사무국 사람들이 사무실을 임대해서 머물렀던 서울 종로구 안국빌딩의 모습. 신문 이름이 ’한겨레신문’으로 정해지자 빌딩 바깥에 현수막을 내걸었다.
창간 사무국 사람들이 사무실을 임대해서 머물렀던 서울 종로구 안국빌딩의 모습. 신문 이름이 ’한겨레신문’으로 정해지자 빌딩 바깥에 현수막을 내걸었다.

공덕동 사옥이 마련되기 전, 한겨레 사람들은 안국동과 양평동의 임대 사무실 시절을 거쳤다. 창간 사무국 사무실은 안국빌딩에 있었다. 시내 한복판인데다 교통이 사통팔달하여 지나는 사람이 많았다. 형편에 맞게 저렴한 사무실을 찾자는 이야기가 없지 않았지만, 창간 사무국을 주도했던 정태기(조선일보 해직기자)는 “번듯한 사무실을 얻어야 사람들이 새 신문 창간을 신뢰한다”고 생각했다.

신문사가 만들어질 때는 임대료가 그리 비싸지 않은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터를 잡았다. 원래 창고로 쓰이던 건물 2층에 편집국을 차리고, 윤전기를 들였다. 1988년 4월 10일, 안국동에서 양평동으로 이사했다.

양평동 사무실 1층에는 일성정밀이라는 공장이 있었다. 쇠를 깎고 다듬는 소음과 기계에서 나온 쇳가루가 하루 종일 사람들을 괴롭혔다. 건물이 상습 수해지역에 위치해, 장마철에는 윤전기가 침수될까봐 윤전부 사원들이 밤새 윤전기 곁을 지켰다.

두 번째 임대 사무실은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위치했다.
두 번째 임대 사무실은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위치했다.

1989년 2월 정태기를 본부장으로 하는 개발본부가 발족했다. 고속윤전기 도입, 업무 전산화 등과 함께 새 사옥을 짓는 게 본부의 임무였다. 다시 한 번 서울 시내 땅을 뒤졌다. 여의도, 신수동, 한남동 등이 후보로 올랐지만, 공덕동으로 낙점되었다.

지방으로 신문을 수송하려면 기차역이 가까워야 했는데, 서울역이 5분 거리에 있었다. 같은 마포에 있으면서도 공덕동 땅값은 마포대로 주변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고속윤전기를 들이기 위해 지하층이 깊어야 하는 조건에도 맞았다. 지표면의 고저차가 16m에 달하는 경사진 입지 덕택에 지하층을 만들려고 땅을 깊이 파지 않아도 됐다. 그만큼 공사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 한겨레 사옥 모형은 1991년 12월 14일 한겨레 사람들이 양평동을 떠나 공덕동에 처음 입주할 때의 형태다. 1991년 지하 3층, 지상 4층, 연면적 2031평 규모였던 공덕동 사옥은 그 뒤 지하 3층, 지상 8층, 연면적 3691평 규모로 늘었다. 1996년 4월에 3개 층을 더 지어 올렸고, 1999년 12월엔 신관을 증축했다.

사옥 담벽을 따라 담쟁이를 심은 것은 2001년 무렵이다. 당시 막내 격이었던 이주현 기자의 제안에 따랐다. 공간에 관심이 많은 이주현 기자는 6층 야외 공간에 정원을 만드는 아이디어도 내놨다. 노동조합이 주축이 되어 야외 정원을 가꿨다. 사원들이 직접 나무를 깎아 의자와 테이블을 만들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경영진이 직접 나서 9층 옥상 주차장 터에 흙을 깔아 정원을 꾸몄다.

담쟁이 심고 옥상정원 만들다

1994년, 한겨레가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하지석리 일대에 3212평의 땅을 매입하려 한 적이 있다. 대규모 윤전시설을 들여와 제2공장을 지으려 했다. 그러나 자금 사정이 나빠지면서 새 윤전기 도입이 어려워졌다. 부지 매입을 위해 계약금까지 준 상태였는데, 이 땅을 어찌할 것인지를 놓고 다시 논란이 일었다. 당장 필요 없더라도 미래를 위해 일단 사놓고 보자는 의견과 신문사가 본연의 영업 활동과 상관없는 부동산 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맞섰다. 논란 끝에 결국 땅을 포기했다.

2009년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한겨레 사옥 야경.
2009년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한겨레 사옥 야경.

2008년에는 아예 공덕동 사옥을 매각하고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 새 사옥을 지으려는 계획이 추진되기도 했다. DMC는 서울시가 미디어와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관련 기업을 한데 모을 목적으로 개발을 진행한 지역이다. 당시 문화방송·YTN 등이 본사를, 조선일보·동아일보 등이 용지를 매입해 디지털 자회사를 DMC로 옮길 예정이었다.

한겨레 경영진은 신문 콘텐츠를 디지털과 방송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 공급해야하는 시기에 관련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모여있는 DMC가 협력 시스템 구축에 최적의 장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2008년은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에서 비롯한 세계금융위기로 실물 경제가 얼어붙은 상황이었다. 입찰에 성공하더라도 무리한 차입을 하게 되면 유동성 위기가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사옥 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논란은 오래가지 않았다. 입찰 결과, 한겨레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뽑히지 않아 사옥 이전 계획 자체가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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