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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기술자’ 이근안의 덜미를 잡다

등록 2018-06-04 16:30수정 2018-07-06 14:39

[창간 30년, 한겨레 보도-1]
1988년 이근안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기까지의 뒷이야기
1988년 12월 21일 한겨레신문 1면 기사의 일부.
1988년 12월 21일 한겨레신문 1면 기사의 일부.

1988년 12월 19일 오후 6시, 서울 기독교회관 지하 다방에서 문학진 기자가 김근태와 마주 앉았다. 김근태의 부인 인재근도 동석했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이었던 김근태는 1985년 9월, 각종 시위의 배후 조종 혐의로 연행되어 구금당했다.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가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했는데, 이 사실을 아내 인재근에게 알렸다. 1985년 12월, 김근태의 변호인단이 고문 경찰들을 고발했다. 다만 이름을 알지 못해 고발장에 ‘이름 모를 전기고문 기술자’로 적었다. 고발 이후 3년이 지났어도 당국은 수사는커녕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자연스레 대화가 고문 이야기로 번졌다.

“그 고문 기술자 이름을 아직도 모릅니까?”

문학진이 물었다.

“조금 알아내긴 했는데, 이근, 뭐라던데. 현재 경기도경 대공분실장이라는 이야기가 있고…. 확인해본 건 아니야.”

김근태가 말했다. 문학진의 귀가 번쩍 띄었다. 바로 경기도경 담당인 배경록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부탁했다. “경기도경 대공분실장은 김 아무개고, 다만 공안분실장 이름이 이근안”이라고 배경록이 잠시 뒤 알려왔다.

문학진은 자신의 담당인 치안본부로 달려갔다. 경찰 인사 파일을 구했다. 이근안의 거주지 등 인적 사항과 함께 희미한 사진 복사본이 있었다. 김근태를 찾아가 그 사진을 보여주었다. 김근태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쳐다봤다.

“맞습니다. 바로 그자요.”

문학진은 이근안에게 고문을 받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거듭 확인을 받았다.

동대문서를 출입하던 김성걸 기자와 종로서를 출입하던 안영진 기자가 이근안 주소지의 동사무소로 뛰었다. 동사무소 직원이 내미는 주민등록대장에 이근안의 최근 모습이 담긴 증명사진이 있었다.

하루 반나절의 맹렬한 취재 끝에 1988년 12월 21일, ‘이름 모르는 고문 기술자 이근안’ 기사가 한겨레 1면에 실렸다. 풍문으로만 떠돌던 고문 기술자의 이름과 사진이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보도 일주일 전 백남은, 김수현, 김영두, 최상남 등 김근태 고문사건 당시 치안본부 대공분실 소속 경찰간부 4명이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을 때에도 신병조차 확보되지 않았던 ‘성명 미상자’의 얼굴을 공개한 특종이었다.

2001년 1월 서울시내에 걸린 고문경찰 이근안의 현상수배 대자보를 시민들이 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01년 1월 서울시내에 걸린 고문경찰 이근안의 현상수배 대자보를 시민들이 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후 이근안은 잠적했다. 그에게 고문당한 사람들의 제보와 고발이 이어졌다. 이근안은 1970년대 이래 치안본부에서 조사를 받아야 했던 거물급 민주화운동가들이라면 누구나가 그 기억만으로도 치를 떠는 인물이었다. 일제시대로부터 전수되어 온 칠성판 고문, 고춧가루 고문, 통닭구이 고문에 덧붙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기술인 관절빼기 고문, 전기 고문까지 구사했다. 바로 그 고문의 잔혹성 때문에 집권세력 공안기관의 총애와 비호를 한몸에 받던 존재였다.

한겨레가 이근안 개인에만 초점을 맞춘 건 아니었다. 청산되어야 할 과거사이자, 국가기구와 법제도의 문제를 정면으로 따져 묻는 기획물도 연재했다. ‘일상화된 반문명적 폭력, 고문’(1988년 12월)이 대표적이다. 고문이 군사정부의 인권유린을 대표하는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여론에 밀린 당국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1988년 12월 29일 한겨레신문 5면에 실린 기사의 일부.
1988년 12월 29일 한겨레신문 5면에 실린 기사의 일부.

이근안은 11년 동안 도피 생활을 하다 1999년 자수했고, 결국 7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2010년 2월 시사주간지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고문기술자가 아니며 “굳이 기술자라는 호칭을 붙여야 한다면 심문기술자가 맞을 것 같다”며 전기고문 등 고문수사 행위를 전면 부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은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를 ‘애국’이라고 표현했다.

김근태 의장을 고문한 이근안 전 경감이 공소시효가 지난 1999년 10월 자수를 한 뒤 그해 11월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근태 의장을 고문한 이근안 전 경감이 공소시효가 지난 1999년 10월 자수를 한 뒤 그해 11월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이근안은 2008년 10월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개혁 교단의 통신신학 과정을 이수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정식으로 목회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이 별세한 뒤 이씨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자, 그가 소속됐던 기독교 교단에서 2012년 목사직을 박탈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개혁총회 이도엽 교무처장은 2012년 1월 한겨레 기자를 만나 “이근안씨가 과거에 고문기술자로 살았던 삶을 회개하고 목사로서 신중한 삶을 살았어야 하나, 직분을 망각하고 반공강연에 나서 ‘고문은 예술’, ‘나는 애국자’라는 식으로 자신의 행위를 미화했다”며 “이로 인해 이씨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교단의 명예를 손상시켜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 한겨레 창간 30돌을 맞아, 한국사회를 바꾸는 데 기여한 특종이나 기획 기사의 뒷이야기를 <창간 30년, 한겨레 보도>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디지털 역사관인 '한겨레 아카이브'에 소개된 내용의 일부입니다. 한겨레의 살아 숨쉬는 역사가 궁금하시다면, 한겨레 아카이브 페이지(www.hani.co.kr/arti/archives)를 찾아주세요. 한겨레 30년사 편찬팀 achiv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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