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낮 기온이 34.2도까지 치솟은 지난 3일 서울 중구 신당역 인근 건널목 그늘쉼터에서 더위를 피하는 시민들을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모습. 온도가 높은 부분은 붉게, 낮은 부분은 푸르게 나타난다. 연합뉴스
지난 10일 서울의 일 최고기온은 오후 3시47분에 올 들어 가장 높은 35.1도까지 치솟았다. 이때 습도는 48%, 체감온도는 34.3도였다. 이날 최고 체감온도가 기록된 시점은 이보다 1분 빠른 3시46분으로 34.6도였다. 이때 기온은 35.0도, 습도는 51%였다.
기상청은 온도와 습도를 모두 고려한 체감온도를 기준으로 폭염 특보를 발령한다. 폭염이 인체에 실질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체감온도가 33도를 넘을 것으로 예상되면 폭염주의보를, 35도가 초과할 것 같으면 좀더 강한 폭염경보를 발령한다. 사람들은 정말 체감온도가 35도를 넘어서면 견디기 어려울까?
폭염이 계속된 지난 4일 점심식사를 하려는 노인들이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원각사 노인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과학자들은 체감온도와 비슷한 ‘습구온도’(온도계 볼 위를 젖은 심지로 감싸 습도와 온도를 합쳐 측정한 값)로 35도가 인간의 안전 상한선(임계온도)일 것으로 추정해왔다. 습구온도 35도는 습도가 100%일 때 35도, 습도 50%일 때 46.1도를 가리킨다.
이 임계온도를 지나면 인간의 몸은 심부체온(몸 깊숙한 장기의 온도)을 항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신체 표면의 땀을 증발시켜 스스로를 식힐 수 없게 된다.
지난 5∼6월 남아시아를 덮친 폭염 동안 파키스탄 자코바바드의 최대 습구온도는 33.6도에 이르렀고, 인도 델리에서는 임계온도에 거의 근접한 기온이 기록됐다. 공기가 품을 수 있는 최대 수증기량은 온도마다 다른데, 해당 기온에서 공기가 품고 있는 최대치의 수증기량이 습도 100% 상태다. 장마철에 장대비가 내리거나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게 낀 상태가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습구온도 35도는 이론과 모델링을 기반으로 한 수치로, 실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나온 값은 아니다. 미국 펜실베니아대 연구팀은 최근 “사람들은 얼마나 더워야 정말로 더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18∼34살의 건강한 젊은 남녀 24명을 대상으로 열 스트레스 실험을 했다. 연구 결과는 과학저널 <
응용생리학저널>에 실렸다.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한테 캡슐에 담긴 자그마한 무선 원격측정 장치를 삼키게 해 심부체온 변화를 관찰했다. 참자자들은 실험 공간 안에서 요리와 식사, 가벼운 사이클링, 트레드밀에서 천천히 걷기 등 최소한의 일상활동을 했다. 연구팀은 실험 공간에 서서히 온도와 습도를 증가시켜 실험 대상자들의 심부체온이 상승하는 시점을 조사했다.
지난 2015년 6월23일(현지시각)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한 여성 열사병 환자를 가족들이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사람 몸이 과열되면 심장은 열을 발산하기 위해 피부로 더 많은 피를 보내려 펌프질을 더 열심히 해야 하고, 땀을 흘리면 체액이 줄어든다. 최악의 경우 폭염에 장기간 노출되면 열사병이 발병할 수 있다. 열사병은 무덥고 밀폐된 공간에서 일이나 운동을 해 몸의 열을 내보내지 못해 체온이 40도 이상일 때 발생하는 질환으로 체온 조절 중추가 정상작동하지 않아 고열과 의식장애나 혼수상태가 올 수 있다.
연구팀 실험 결과 인간의 안전 상한선은 이론상 제시된 임계온도 35도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부체온을 항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습구온도는 31도 곧 습도 100%에서 31도, 습도 60%에서 38도로 측정됐다. 연구팀을 이끈 래리 케니 펜실베니아대 신체운동학과 교수는 “습구온도가 31도를 넘을 때 세계의 습한 지역에서 젊고 건강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걱정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의 연구는 펜실베니아대의 히트(H.E.A.T) 프로젝트의 하나로 추진됐다. 히트는 노인들이 열 스트레스를 견딜 때 문제가 발생하기 전 환경이 얼마나 덥고 습해야 하는지를 조사하는 연구다.
연구팀은 “온도와 습도가 낮아도 심장 등 인체의 장기와 기관에 부하가 걸릴 수 있다. 임계온도를 초과하는 것이 반드시 최악의 시나리오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노인과 만성질환자 등 폭염 취약 인구에게는 장기간 노출이 치명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 칭화대 연구팀은 2020년 의학저널 <
랜싯>에 발표한 논문에서 폭염 관련 사망률이 1990년에서 2019년 사이에 4배 증가했는데 65살 이상이 폭염으로 사망할 위험이 10.4% 더 높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펜실베니아대 연구팀은 폭염으로 인한 사상자의 80∼90%가 65살 이상 인구라는 점에서 나이 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케니 교수는 “온도와 습도의 상한선을 안다면 취약한 사람들을 더위에 미리 대비시킬 수 있다.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의 우선 순위를 정하거나 폭염 때 지역사회에 경보를 발령하는 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