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피스 초르노빌 현지 조사 팀이 접근 제한 구역에서 토양 내 방사능 물질의 종류를 조사하는 모습. 그린피스 제공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우크라이나 초르노빌(러시아어 체르노빌의 우크라이나 발음 표기)의 방사능 수치를 자체 조사한 결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조사 결과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가 나왔다고 20일 밝혔다. 앞서 러시아군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방사능 확산 위험이 제기됐고, 국제원자력기구는 이에 대해 조사한 결과 방사능 수치가 정상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린피스는 이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국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6일부터 사흘간 진행한 초르노빌 접근 제한구역 방사선 조사의 결과를 발표했다. 기자회견에는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그린피스는 “지난 4월 국제원자력기구의 조사 결과보다 최소 3배가 넘는 방사선량이 확인됐다”며 “국제원자력기구의 조사 대상 면적이 초르노빌 제한구역 내 극히 일부였기 때문에 조사의 공정성에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린피스가 초르노빌 내 러시아군이 구축했던 진지의 토양을 분석한 결과, 2.5µSv(시간당 마이크로시버트)의 방사선량이 확인됐다. 이는 국제원자력기구가 같은 장소를 조사해 발표한 최대 0.75µSv/h보다 최소 3배 높다. 그린피스는 또 “해당 지역 토양 샘플에서 최대 ㎏당 4만5000㏃(베크렐), 최소 500㏃의 세슘이 검출됐다”며 “러시아군이 고농도 방사능으로 오염된 토양에서 상대적으로 오염이 적은 지역으로 이동하며 방사성 물질이 확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린피스는 “군 진지와 진지에서 남쪽으로 600m 떨어진 지역의 감마선량은 무려 40배나 차이 났다. 그런데도 IAEA의 조사 장소는 러시아군 진지에 국한됐다”고 덧붙였다.
초르노빌은 1986년 사상 최악의 원전사고가 발생한 지역으로, 현재까지 사고 원전으로부터 반경 30㎞ 이내 지역은 출입이 통제된다. 유엔(UN)은 이 사고로 50명이 직접 숨진 것으로 파악했고, 방사능 유출에 따른 장기적 사망자는 최대 1만6000명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러시아군은 지난 2월24일 우크라이나 침공과 동시에 초르노빌을 점령했다. 이후 러시아군은 3월31일 초르노빌 원전 운영권을 우크라이나에 넘긴 뒤 철수했다. 국제원자력기구는 러시아군이 철수한 직후인 지난 4월 초르노빌의 방사선량을 조사한 뒤 “원전 사고 현장의 방사능 수치가 한때 비정상 수준으로 올라갔지만 현재는 정상”이라고 밝혔다.
그린피스는 “러시아군이 철수 당시 대부분 지역에 지뢰를 대량 매설했다”며 “ 이로 인해 이 지역의 방사능 및 화재 위험을 관리하는 과학자와 소방관들의 생명도 위험하다. 러시아군이 방사선 측정 도구와 소방 장비들을 파괴하거나 약탈해 우크라이나 정부가 초르노빌 접근 제한구역의 오염 변화를 정상적으로 관리하거나 통제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린피스는 또 “러시아군이 의도적으로 ‘붉은 숲’ 지역에 불을 지른 것으로 보이고, 이 화재로 토양 속에 있던 방사성 물질이 대기로 확산됐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식수원과 연결되는 주변 강의 방사능 오염도 우려된다. 확산된 방사성 물질에는 플루토늄·아메리슘과 같은 알파 방사선 핵종들이 있는데, 인체에 유입될 경우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얀 반데푸타 그린피스 벨기에 수석 방사선 방호 전문가는 “곳곳에 설치된 대인 지뢰로 인해 조사팀이 조사를 진행한 곳은 극히 제한적이다. 러시아군이 군사 활동을 펼친 전체 지역을 조사하면, 방사성 물질의 확산으로 인한 피해 정도가 더욱 심각한 것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원자력기구는 좁은 지역에서 극히 적은 샘플만 조사해 러시아군에 의한 초르노빌 피해가 없다고 전 세계에 공표했다. 하지만 우리가 조사한 결과, 초르노빌은 결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