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6일 태풍 힌남노가 몰고 온 폭우와 강풍으로 경북 경주 서악동 고분군의 일부 봉분이 붕괴한 모습(왼쪽). 지난해 8월 115년 만에 서울 일일 강수량 최고치를 기록한 역대급 폭우를 포함해 중부지방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사적인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성벽이 붕괴한 모습(오른쪽). 출처: ‘문화재 분야 기후변화 대응 종합계획 수립 연구’ 보고서.
지난해 9월 태풍 힌남노가 몰고 온 폭우와 강풍으로 경북 경주 서악동 고분군의 봉분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큰 문화재인 이 고분군(사적 제142호)의 대형 무덤 4개는 신라 법흥왕, 진흥왕, 진지왕, 문흥왕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들이다. 당시 힌남노로 사적 12건, 보물과 국가민속문화재 각각 1건 등 모두 14건의 문화재 피해가 보고됐다. 한달 앞선 같은 해 8월에는 중부지방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사적인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성벽이 붕괴하는 등 53건의 문화재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강한 태풍과 폭우를 포함해 폭설, 폭염 등 극한 기후현상은 삽시간에 문화유산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위협이 된다. 최근 심화되고 있는 기후위기는 이런 극한 기후현상의 빈도와 강도를 높여 문화유산 피해를 키울 수밖에 없어,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이 문화재청에서 제출받은 ‘문화재 분야 기후변화 대응 종합계획 수립 연구’ 용역보고서를 보면, 문화유산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요인은 태풍, 폭우, 폭설 등으로 나타났다. 문화재청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 한국위원회에 의뢰해 이 보고서를 작성했다.
2020년 8월11일 전남 담양 삼지천마을 옛 담장(국가등록문화재)이 집중호우로 무너져 내린 모습. 연합뉴스
태풍·폭우·폭설과 관련한 강수량 증가는 특히 목조 건축문화재에 치명적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목재 동산문화재(옮길 수 있는 문화재)의 경우, 2010년대에는 전국에서 목재 동산문화재가 위치한 지점의 연 강수량 범위가 1056~1913㎜였다. 강수량 최소값 지점에는 경북 안동 보광사의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이 위치해 있고, 최대값 지점에는 경남 창녕 관룡사의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이 있다. 2050년대에는 기후위기로 목재 동산문화재가 소장된 지점의 연 강수량이 179~376㎜ 증가하는 것으로 전망됐다. 이코모스 한국위원회는 “동산문화재는 강수량과 기온의 영향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점진적 영향에 대한 위험도를 분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도 커질 전망이다. 지난 109년간(1912~2020년) 한반도의 강수 강도는 평균 15.8㎜/일이었다. 강수 강도는 1년 동안 내린 비의 양을 비가 내린 일수로 나눠 하루에 내린 비의 양을 뜻하는 것으로, 강수 강도가 높다는 것은 짧은 시간에 그만큼 많은 비가 온다는 것이다. 2050년대에는 강수 강도가 지난 109년간의 평균보다 크게 강해진 20㎜/일에 노출되는 문화재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2010년대 기준 강수 강도 20㎜/일 이상의 기후현상에 노출된 목조건축문화재는 경남 남해 용문사 대웅전(보물)을 비롯해 총 5곳인 반면 2050년대에는 이 수가 75곳으로 15배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또 현재 강수 강도 20㎜/일 이상에 노출된 석조건축문화재는 경기 양평 용문사 정지국사탑·비(보물)를 비롯해 총 32곳이지만 2050년에는 5배가 넘는 168곳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문제는 현재 문화재청에는 기후변화와 관련한 전담 조직(컨트롤타워)도 없고, 전담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류호정 의원은 “기후위기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만큼 문화재청이 종합적인 관련 계획과 대책을 신속하게 수립해야 한다”며 “3월 중 국회에서 관련 토론회를 열어 기후위기 시대 문화유산 관리에 대한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김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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