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서 자생하던 정향나무가 1947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스킴라일락이 됐다. 사진은 국림산림과학원 이유미 박사 제공
[이젠 환경월드컵] ①생물자원이 돈이다
종자산업의 근간이 되는 종자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멀게는 16세기 유럽인들이 식민지 식물을 자기 나라에 들여와 팔아먹었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형규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는 “제국주의 시절 선교사들이 식민지에서 성경책에 씨앗을 숨겨 자기 나라에 가져간 일은 유명하다”고 말했다. 서양은 이렇게 들여온 식물을 바탕으로 식물학을 발전시켰다.
토종 종자가 별로 없는 미국이 세계 최대 종자유전자원(45만점)을 보유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국가에 가장 공헌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밖에서 유용한 식물을 도입해 재배할 수 있게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1862년 농무부 창설 이후 외국 주재 영사관이 작물 도입 임무를 직접 맡았다.
우리나라는 빼앗긴 쪽에 속한다. 국내 학자들은 일단 일제 강점기때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토종 종자가 일본에 의해 훑어졌다”고 본다. 안완식 박사(한국토종연구회)는 “당시 군인 신분이던 일본 대학 교수가 탄통에 전국의 보리, 밀 종자를 모두 반출해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대학은 이후 400~500점의 보리 종자를 보유한 세계적 보리유전자원센터(국제식물유전자원연구소)로 선정됐다.
일본이 지나간 자리를 미국이 또 한차례 쓸고 지나갔다. 북한산에서 자생하던 정향나무를 1947년 한 미국인이 가지고 간 것이 지금 미국 라일락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미스킴라일락’이라는 일화는 유명하다. 1980년 당시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있던 정혁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사에게 지도교수가 미국인 교수를 안내해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정 박사는 전국 야산을 돌며 산포도, 머루, 산딸기와 같은 야생과수 종자를 채집하는 미국인 교수를 지켜봐야 했다. 그는 미 오레곤주립대학의 웨스트우드 농대 교수로 과수학의 대가였다. 정 박사는 “당시 아무 대가나 제재없이 우리 유전자원이 반출됐던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 씨앗 가운데 하나가 미국산 수입 딸기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도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1980년대 후반 한국은 정보기관(당시 안기부)이 직접 채종 활동도 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마늘 품종 개발을 위해 꽃 피는 마늘 종자를 옛 소련의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직접 채집해왔다. 당시 한국 마늘은 꽃이 피지 않아 교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자국의 생물자원에 대한 소유권 개념이 정립되면서 이제 이런 노골적인 약탈은 어렵게 됐지만 007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은밀한 종자사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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