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필리핀 안티케 지역 벨리슨시의 공장 터에서 한국 아이쿱생협연대 회원들과 현지 농민들이 마스코바도 공정무역 설탕 공장 착공식을 열었다.
‘아이쿱생협연대’ 회원 모금으로
필리핀에 ‘마스코바도’ 생산시설
“소비자·농민·노동자에 고루혜택”
필리핀에 ‘마스코바도’ 생산시설
“소비자·농민·노동자에 고루혜택”
“1980년대 국제 설탕값이 폭락하면서 사탕수수밭을 버렸죠. 하지만 이제 사탕수수가 더 나은 생활을 가져다줄 거라 믿어요.”
30도를 웃도는 땡볕 아래서 여성 농민 아마도 오마니오(64)가 마스코바도 생산 공장 조감도를 보며 웃었다.
지난 3일 필리핀 파나이섬 안티케 지역의 벨리슨시. ‘공정무역 설탕’인 마스코바도 공장을 짓는 착공식이 열렸다. 한국의 생활협동조합인 ‘아이쿱생협연대’ 조합원과 생산자, 직원들이 건립비용 15만달러(약 1억8000만원)를 모았다. 단 두달 만에 7100여명이 참가할 정도로 호응이 높았다. 한국 소비자들이 외국에 공정무역 설탕의 생산시설을 지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설탕은 역사적으로 ‘불공정한’ 감미료였다. 17세기부터 스페인과 포르투갈, 영국 등 제국주의 국가는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납치해 서인도제도의 사탕수수 농장에 노예로 팔았다. 20세기 들어선 거대 식품기업이 생산하는 정제 백설탕이 대규모 공급되면서,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 감미료로 가미됐다. 설탕값은 다국적 식품기업과 대규모 농장이 좌우했으며, 소규모 농장은 주판알을 튀길 새조차 없었다. 파나이섬의 농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마니오는 “15년 전 사탕수수를 포기하고 쌀농사를 지었지만, 그나마 관개시설 부족과 가격 폭락으로 겨우 생계를 잇고 있다”며 “내년부터 다시 사탕수수를 재배할 수 있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착공식에 나온 에드윈 갈리도 벨리슨시 부시장도 “재배 작물을 다양화할 시점인데, 좋은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마스코바도는 다국적 식품기업이 지배하는 설탕 시장에서 자기 영역을 개척한 ‘공정한 설탕’이다. 사탕수수를 착즙기에 넣어 원액을 얻은 뒤 3~4시간 끓이는 전통적인 정제 방식 때문에 일반 설탕에 비해 중독성이 적다. 정제 과정에서 비타민에이(A)와 미네랄도 덜 파괴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마스코바도는 영국의 옥스팸 등 공정무역 기업에 팔린다.
파나이섬의 파나이공정무역센터(PFTC)는 각 지역의 생산협동조합과 계약을 맺고 마스코바도를 한국의 아이쿱 생협연대 등에 공급해왔다. 여성·농민·도시빈민 운동단체가 운영하는 공정무역센터의 지배인 앙헬 팡가니반(52)은 “소작농민, 여성, 빈민들이 생산 공정에 투입되고 이들에게 혜택이 고루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이날 착공한 마스코바도 공장은 내년 말부터 가동에 들어간다. 0.5㏊ 미만의 땅을 가진 농민, 소작농 44명이 사탕수수를 공급하고 생산에 참여한다.
김태연 생협연대 공정무역팀장은 “공정무역은 과거 식민지 무역에 대한 반성으로 옛 제국주의 국가들에서 활발했다”며 “이번엔 시민 성금으로 공장을 짓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필리핀 안티케/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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