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제 불신 불러…산업진흥·안전규제 기관 분리안돼
미량의 방사성 물질은 건강에 전혀 위협을 주지 않을까? 치명적인 영향은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게 현대과학의 예측이다. 하지만 방사능 노출은 임상연구 사례가 많지 않아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정부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안전하다고만 강조해 오히려 국민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전예방원칙이 실종됐다는 얘기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초기부터 정부는 편서풍이 분다면서 한반도에는 방사성 물질이 오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사고 2주일 만인 23일 방사성 물질인 제논이 검출된 데 이어 28일에는 요오드131과 세슘까지 나왔다. 기상청 예상과 달리 방사성 물질은 캄차카 반도로 북향한 뒤 시베리아를 돌아오는 ‘샛길’을 택했다.
김승배 기상청 대변인은 “애초 뜻은 방사성 물질이 한반도로 직접 날아오지 않을 거라는 얘기였다”며 “다른 지역을 거쳐 돌아오면 대기에 희석돼 위험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의 지나친 ‘안전 강조’는 국민들의 의심을 샀다. 사고 초기, 방사성 물질의 한반도 상륙설을 제기한 시민까지 경찰 수사를 받자 이런 불신은 더 커졌다.
정보도 제때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제논을 검출하고 사흘 뒤에야 발표했다. 요오드131 검출 사실은 일부 언론이 보도하자 처음에는 부인하다 나중에야 인정했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위험 소통) 전문가인 안종주 석면환경연합회장은 “일단 검출됐다고 발표한 뒤 그 다음 어디에서 왔다고 알렸어야 옳았다”며 “대중들은 자신들이 모든 정보를 가졌다고 느낄 때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말했다.
방사성 물질의 인체 영향은 아직 논란 중이다. 특히 식품과 대기를 통해 유입되는 미량의 ‘저선량 노출’은 연구 사례가 많지 않아 과학자마다 의견이 갈린다. 하미나 단국대 교수(예방의학)는 “세계보건기구(WHO) 등도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사전예방원칙을 적용해 가급적 방사선 피폭량을 줄이라고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소극적인 대응은 원자력 산업 진흥과 안전 규제 기관이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원자력규제위원회(NRC)를 둔 미국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는 독립기관이 원자력 안전을 규제한다. 반면 방사성 물질 누출 정보를 축소했다는 의혹을 산 일본처럼 한국은 사업과 안전을 같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맡고 있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산업 진흥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한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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