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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죽음의 땅’ 된 고향…250명엔 여전히 '삶터'

등록 2011-04-25 20:36수정 2011-04-25 22:52

19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17㎞ 떨어진 파리시브 마을에서 할리나 야브첸코(74)가 저녁밥을 짓기 위해 자신의 집 부엌을 나서고 있다.
19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17㎞ 떨어진 파리시브 마을에서 할리나 야브첸코(74)가 저녁밥을 짓기 위해 자신의 집 부엌을 나서고 있다.
[체르노빌 원전재앙 25년]
노인들, 출입통제 마을서 자급자족 농경생활
정부 “방사능 수치 가끔 높게나와 경계필요”
체르노빌로 돌아온 사람들

‘재앙의 땅’인 체르노빌에도 사람이 산다. 방사능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지만, 사람들은 감자를 캐고 우물물을 길어 저녁을 준비한다.

지난 19일 만난 할리나 야브첸코(74)는 파리시브 마을에서 태어나 남편을 만났고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고 있다. 이 마을은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남서쪽으로 17㎞ 떨어진 곳이다. 이 마을은 1986년 사고 당시 소개됐고 지금도 발전소 반경 30㎞ 안에 있어 출입통제구역이다.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을 뿐 아무도 사고가 났다고 알려주지 않았죠. 바람이 불 때 약간의 연기가 날아가는 것만 보였어요.”

옆집에 사는 이반 이바노비치(74)와 마리아 콘드라드파냐(72) 부부도 사고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다. 이바노비치는 “이튿날 시내에서 소식을 들었는데, 워낙 사고가 많았기 때문에 별생각이 없었다”고 말했다.

피난용 버스 수십 대가 마을에 들어온 건 사고 일주일 뒤인 1986년 5월3일이었다. 이바노비치 부부는 2년 동안 전국을 헤맸다. 가족을 부양하기엔 낯선 도시가 오염된 땅보다 더 위험했다. 결국 이바노비치는 방사능에 오염된 땅에 돌아와 다시 씨를 뿌렸다. 그는 “타지에서 딱히 할 일이 없었다”며 “나의 일은 농사를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 마련된 수용자 지구에서 겨울을 보낸 야브첸코도 고향에 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 곧장 따라붙었다. 그는 “아이들만 데려가지 않는다면, 무료 주택을 마다하고 되돌아가는 사람들을 정부가 막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정부는 체르노빌 사고와 관련해 주민들을 안심시키는 데 주력했다. 방사능 오염을 몰랐던 시절이라, 사람들은 미덥지 않아 하면서도 하나둘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1988년까지 150명이 파리시브 마을에 돌아왔고, 다른 마을까지 합치면 재정착자는 2000명에 이르렀다.


이바노비치의 집은 여느 농장과 다를 바 없다. 마당에 닭이 돌아다니고 창고에는 건초 더미가 쌓여 있다. 물은 우물에서 길어서 마신다. 1년에 두 번 수질검사를 하지만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이바노비치는 “지난해 건강검진 때 아무 문제 없다고 나왔다”며 “내가 지금 이렇게 건강하지 않냐”고 말했다. 야브첸코는 “우물물이 안 좋으면 정부가 막는데, 그러면 다른 우물에서 길으면 된다”며 웃었다. 하지만 한때 발전소 경비로 일한 야브첸코의 남편은 최근 위암으로 세상을 떴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비상사태부 산하 체르노빌 정보센터의 예브게니 곤차렌코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건 노인들의 믿음일 뿐이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가끔 식수와 농작물에서 방사능 수치가 높게 나온다”고 말했다.

물론 이 마을에서 측정되는 방사능은 인체에 당장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체르노빌 재정착자들은 주로 발전소 남쪽 산림지대에 산다. 사고 직후 바람이 피해가면서 방사능 낙진이 적었던 곳이다. 실제로 이날 방사능 계측기로 측정해 보니, 대기 중 농도는 0.2마이크로시버트(μ㏜)로 키예프나 서울과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곤차렌코는 “방사능이 축적된 일부 토양에선 7~10마이크로시버트까지 측정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때 2000명에 이르던 방사능 오염지대 재정착자는 현재 체르노빌(40명) 등 9개 도시·마을 250명으로 줄었다. 정부는 이들이 60~80대의 노인들이어서 쫓아내거나 농경 금지 조처를 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한해 국가예산 5~7%를 체르노빌 복구에 쓴다. 복구비용 말고도 7억8500만달러에 이르는 석관 보강공사 비용까지 지원받아야 하는 실정이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체르노빌 사고수습요원에게 주는 무료진료 혜택을 없앴다. 한때 사고 수습에 참여한 이바노비치에게 주어지는 건 한 달에 1500흐리브냐(약 15만원)인 노인연금이 전부다. 이들에게 키예프가 안전할지 체르노빌이 안전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바노비치는 고향이 더 안전하다며 자신의 선택이 후회되지 않는다고 했다. 파리시브(우크라이나)/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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