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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시간이 멈춰선 땅 체르노빌 “인류는 핵재앙서 뭘 배웠나”

등록 2011-04-25 21:03수정 2011-04-25 23:01

이 신발의 주인은…  1986년 4월26일 새벽 1시24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폭발음과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날 이후 원전에서 5㎞ 떨어진 인구 5만의 작은 도시 프리퍄티는 유령의 땅으로 변했다. 25년이 지난 19일 찾아간 프리퍄티 시내의 한 유치원 교실 바닥에 신발 한짝과 책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놓여 있다. 프리퍄티(우크라이나)/남종영 기자
이 신발의 주인은… 1986년 4월26일 새벽 1시24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폭발음과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날 이후 원전에서 5㎞ 떨어진 인구 5만의 작은 도시 프리퍄티는 유령의 땅으로 변했다. 25년이 지난 19일 찾아간 프리퍄티 시내의 한 유치원 교실 바닥에 신발 한짝과 책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놓여 있다. 프리퍄티(우크라이나)/남종영 기자
원전재앙 25년 현장을 가다
바람불자 “삐삐삐” 방사능 위험수위 경고음
관광객 한켠에선 복구작업
삶과 죽음이 공존했다
(상) 꺼지지 않는 ‘원전 불씨’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위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맨땅은 밟으면 안 됩니다. 흙을 만져서도 절대 안 됩니다.”

지구에 이런 곳이 있을까.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북쪽으로 130㎞ 떨어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가 난 1986년 4월26일 새벽 1시24분부터 체르노빌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건강이 나빠질 수 있는 지구에서 유일한 곳이 됐다.

환경단체 에너지정의행동과 <한겨레>는 지난 18~19일 체르노빌 발전소와 ‘유령 도시’로 변한 프리퍄티 그리고 주변 마을 일대를 돌아다니며 방사능 조사를 벌였다. 사고 직후 방사능 낙진이 집중된 곳에선 인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수치가 확인됐다.

체르노빌 원전 4호기가 폭발한 뒤 체르노빌 주변 도시와 마을 주민 23만명은 거주지를 떠났다. 발전소 반경 30㎞는 ‘체르노빌 통제구역’으로 선포돼 접근이 금지됐다. 25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하루 수백대의 차량이 들어온다. 체르노빌 원전을 덮은 석관의 보강 공사를 하는 직원과 주변 지역을 복구하는 작업자 4000명이 일하고 250명이 산다.

체르노빌 통제구역 검문소를 통과하자마자 나오는 체르노빌 시내는 소란스럽기까지 하다. 폐허가 된 콘크리트 건물에 페인트를 칠하고 아스팔트를 새로 깔고 있다. 방사능 계측기로 측정한 농도는 시간당 0.1~0.15마이크로시버트(μ㏜) 안팎. 서울과 다를 바 없다. 우크라이나 비상사태부 산하 체르노빌 정보센터의 유리 타타르추크 대외협력국장이 말했다.

“체르노빌은 복구작업이 한창입니다. 각 지역의 방사능 농도를 측정하고 건물을 보수하는 등 미래를 위해 관리하고 있어요.”

작업요원을 빼면 돌아다니는 이들은 모두 관광객들이다. 지난해 하루 평균 150명이 왔다 갔는데, 여세를 몰아 2000명을 돌파한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관광객들은 체르노빌 발전소 직원들이 살던 새도시 프리퍄티 들머리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갑자기 왼쪽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방사능 계측기가 ‘삐삐’ 날카로운 소리를 울려댔다. 바늘이 눈금의 최고치를 넘어 오른쪽 끝에 달라붙었다. 시간당 4마이크로시버트. 1년 동안 이런 바람을 맞는다면 35밀리시버트(m㏜), 즉 일반인의 연간 한도치(1m㏜)의 35배에 이르는 방사능에 노출된다. 체르노빌에서 방사능은 그림자처럼 숨었다가 괴물처럼 나타났다.


바람의 진원은 ‘붉은 숲’이었다. 사고 직후 방사능은 이 숲을 덮쳤고 소나무는 빨갛게 말라 죽었다. 붉은 숲을 지날 때는 차량 내부에서도 19마이크로시버트까지 치솟았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사고 뒤 2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오염도가 높다”며 “물에 씻기지 않아 축적되기 쉬운 숲이나 토양에 오염물질이 몰려 있다”고 말했다.

발전소 직원과 과학자 5만명이 살던 프리퍄티는 폐허가 됐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레닌대로의 아스팔트는 금이 갔다. 사고 당일 불구경 인파가 몰렸던 고층 빌딩 폴리샤호텔 객실에는 잡목이 자랐다. 아파트와 백화점, 테마파크 등 사회주의의 근대적 열정을 상징하던 새도시는 사람이 떠난 뒤 자연에 굴복했다. 늑대와 여우, 말코손바닥사슴이 사람이 떠난 체르노빌 일대를 돌아다닌다.

하지만 체르노빌 발전소는 여전히 위험에 빠져 있다. 소련 정부는 사고 직후 군부대와 헬리콥터를 동원해 콘크리트로 4호기를 봉인했다. 여섯달 만에 ‘석관’이 완성됐지만, 허겁지겁 공사한 탓에 균열이 생겼다. 석관 틈새로 빗물이 들어가면 중성자 수치가 높아지면서, 매우 낮지만 핵분열 연쇄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지난 22일 키예프에서 열린 ‘체르노빌 안전을 위한 국제 콘퍼런스’에서 이고리 그라못킨 체르노빌 발전소장은 발전소 내부를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핵연료 250t이 건물 잔해에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며 “건물 내부 가운데 우리가 아는 것은 60%밖에 안 된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지원으로 석관 보강 공사를 진행중이다. 4호기 옆에서 철제 지붕을 조립한 다음, 레일을 통해 옮긴 뒤 기존 석관을 덮을 계획이다.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을 만드는 데 들어간 양의 3배에 해당하는 강철이 사용되고, 자유의 여신상도 들어갈 수 있는 거대한 구조물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1983년 핵분열을 일으켜 켠 체르노빌의 ‘원자력 불’에서는 지금도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이 나온다. 빅토르 발로하 비상사태부 장관은 지난 18일 체르노빌 발전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새로운 석관의 수명은 100년”이라며 “그때쯤이면 체르노빌은 이전 상태로 복구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자력 불을 켠 것은 인간이지만 정작 인간은 방사능 방출을 막거나 제거할 수 없다. “100년이 지나면 세슘과 스트론튬 등 방사성 핵종의 반감기가 거의 다 돼 위험이 줄어든다”는 희망에 기댄 채 그냥 놔둘 뿐이다.

사고 수습에 나섰던 소련의 원자력과학자 게오르기 레핀(80) 박사는 “인간이 원자력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일본이 결코 지진, 쓰나미가 나는 곳에 발전소를 짓진 않았을 것”이라며 “체르노빌은 여전히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체르노빌·키예프·민스크/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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