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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어릴적 피폭당한 엄마 이어 딸까지…“매년 방사능 치료”

등록 2011-04-27 20:50수정 2011-04-27 21:39

면역력 강화 치료 지난 20일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에 있는 주다노비치 어린이 요양센터에서 에브게니아 치를니코바(8·오른쪽)가 어머니 이리나 치를니코바(38)가 지켜보는 가운데 면역력 강화를 위한 광선치료를 받고 있다. 체내에 쌓인 방사성 물질은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종영 기자
면역력 강화 치료 지난 20일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에 있는 주다노비치 어린이 요양센터에서 에브게니아 치를니코바(8·오른쪽)가 어머니 이리나 치를니코바(38)가 지켜보는 가운데 면역력 강화를 위한 광선치료를 받고 있다. 체내에 쌓인 방사성 물질은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종영 기자
[체르노빌 원전재앙 25년]
남동풍탓 낙진피해 ‘고스란히’
어린이들 내장피폭 등 후유증
18살이하 갑상선암 최고 39배↑
연 12만명 요양소서 저감요법
(하) 이웃나라 벨라루스 ‘공포의 그림자’

지난 20일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의 즈다노비치 어린이 요양센터. 예브게니아 치를니코바(8)가 은색 방사능 측정 의자에 앉았다. 의사가 “예브게니아는 ‘카테고리 1’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어머니 이리나 치를니코바(38)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카테고리 1’은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25년 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당시 분 남동풍으로 방사능 낙진 피해는 이웃 나라 벨라루스에 집중됐다. 지금도 국토의 23%가 방사성 물질인 세슘에 오염돼 있고, 방사능 오염이 심한 지역의 18살 이하 어린이·청소년들은 해마다 한 차례씩 방사능 저감 치료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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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나는 사고가 나던 1986년 4월26일, 길가에서 크바스(벨라루스의 전통음료)를 파는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나갔다. “매우 건조하고 뜨거운 바람이 불었던 것 같아요.”

이리나가 80㎞ 떨어진 체르노빌 원전에서 방사능이 유출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그로부터 1주일 뒤였다. “며칠 뒤 길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공무원들이 방사능 검사를 했어요. 다른 마을 사람들은 이미 마을을 떴죠. 다행히 우리 마을은 낙진이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어요.”

하지만 이리나도 18살 때까지 해마다 방사능 측정 의자에 앉았다. 딸 예브게니아처럼 1년에 한번씩 옛소련과 흑해의 요양소를 돌아다니며 방사능 치료를 받았다. 길거리에서 주로 놀던 아이들, 축산농가에서 태어나 소고기와 우유를 많이 먹은 아이들은 내장이 피폭돼 특히 수치가 높았다고 이리나는 말했다. 오염도가 높은 아이들은 목에 항상 계측기를 걸고 다녔고 매달 요양소에 보내졌다.

어린이 요양센터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받는 게 방사능 검사다. 세슘 등 체내 방사능 농도를 측정해 문제가 없으면 ‘카테고리 1’로 분류한다. ‘카테고리 2’는 기준치에 근접한 수치, ‘카테고리 3’은 기준치를 넘은 수치가 나온 경우다. 반감기가 긴 세슘과 칼륨은 지금도 토양에 남아 있어 어린이들이 노출되기 쉽다. 코스트비차 스베틀라나 요양센터 부소장은 “지난번 입소한 350명 가운데 3명이 ‘카테고리 3’으로 분류됐다”며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카테고리 3’은 1%밖에 없고 20~25%가 ‘카테고리 2’로 분류된다”고 말했다.

요양센터에서는 다양한 방사능 저감요법이 시행된다. 면역체계를 강화하고 혈액순환을 활성화시켜 방사능을 체내에서 빼낸다. 뇌신경세포 손상을 줄여주는 ‘이산화탄소 사우나’, 방사능 배출에 좋다는 허브차 등도 제공된다. 24일짜리 프로그램을 마치면 ‘카테고리 2’에 속한 아이들도 ‘카테고리 1’로 낮아진다고 스베틀라나 부소장은 말했다.


전국 14곳의 요양센터에 입소하는 어린이는 한해 12만명에 이른다. 아직도 전국에 방사성 물질이 남아 있기 때문에 체내 흡수가 빠른 어린이들은 방사능 농도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벨라루스 비상사태부의 체르노빌 재난복구국이 낸 25주년 보고서를 보면, 국토의 23%가 세슘137에, 10%가 스트론튬90에 오염됐다. 25년이 흐른 지금도 농경지 2500㎢가 오염돼 농사를 지을 수 없고, 국토의 3%인 6000㎢가 출입이 통제된 상태다.

지블코 니콜라이 체르노빌 재난복구국 부국장은 “농경지 오염면적은 초기보다 8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며 “돌로마이트 등을 뿌려 농작물이 방사성 물질을 흡수하지 못하게 하는 등 정화 과정을 거쳐서 재배 가능 면적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는 안전성에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에코돔(에코홈)의 이리나 수히 고문은 “예전 오염지대에서 키운 농작물이 다른 농작물과 섞여서 판매되는 등 원산지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는다”며 “극미량은 안전하다고 하지만 사람들의 공포는 가시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암 사망자가 4000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민간 과학자로 구성된 ‘체르노빌을 반박하는 또다른 보고서’(TORCH)는 벨라루스에서만 1만8000~6만6000명이 암이 발생했거나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벨라루스 정부 자료를 보면, 1986년에서 2004년까지 18살 이하의 어린이·청소년 2430명에서 갑상샘암이 발견됐으며, 가장 수가 많았던 1995~96년의 환자 수는 1986년의 39배에 이르렀다. 특히 갑상샘암은 잠복기가 길게는 20년이나 돼, 최근에는 20대 갑상샘암 발병률도 늘고 있다.(그래프 참조)

애초 우려한 치명적인 건강 재난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질병에 대한 공포로 야기된 사회적 혼란은 긴 후유증을 남기고 있다. 예브게니아의 엄마 이리나는 “어렸을 적 많은 친구들이 갑상샘암과 심장병에 걸렸다”고 말했다. 어릴 적부터 숲에 들어가지 말고 흙장난을 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커온 그도 이제 엄마가 되어 딸을 요양시설에 보내고 딸에게 같은 말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민스크/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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