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권 전체 필사·촬영 금지
도면 가리고·어려운 수식만
환경단체 “허울뿐인 공개”
도면 가리고·어려운 수식만
환경단체 “허울뿐인 공개”
한수원 보고서 공개현장 가보니
수명을 연장해 가동중 고장나 멈춰선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를 두고 시민들의 불안과 수명 연장 중단 요구가 커지자,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수명 연장 허가의 근거가 된 보고서를 2일 뒤늦게 공개했다. 그러나 중요한 도면은 대부분 열람을 제한한데다, 열람을 허용한 문서도 복사나 촬영은 물론 내용을 간단히 기록하는 것조차 막아 ‘공개했다’는 명분쌓기를 위한 면피성 조처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날 공개된 보고서는 한수원이 1978년 우리나라 원전으로는 처음 상업운전에 들어간 고리 1호기의 수명 연장 가동을 허가받으려고 2006년 당시 과학기술부에 낸 것이다. 보고서는 △주기적 안전성 평가보고서(5권) △주요 기기 수명 평가보고서(3권) △방사선 환경영향 평가보고서(1권) 등 9권으로 이뤄져 있으며, 모두 54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보고서 공개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수원 본사와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원자력본부 등 2곳에서 동시에 시작됐다. 고리원자력본부는 본관 2층 사무실에 보고서를 비치한 뒤, 열람만 허용하고 필사·복사·녹음·촬영 등은 제한한다는 안내문을 붙여뒀다.
주기적 안전성 평가보고서 1권을 펼쳐보니, 고리 1호기의 일반 현황이 나왔지만 고리 원전의 주소와 위치조차 흰 종이로 가려져 있었다. 복잡한 내용을 비교적 알기 쉽게 표현한 도면도 대부분 가려져 있었다. 고리 1호기로부터 반경 50㎞ 안 주민 수를 거리별로 파악한 내용이 있어, 주민 수를 더해보려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러자 직원이 바로 제지했다. 결국 1시간30분 남짓 만에 보고서를 덮을 수밖에 없었다.
고리원자력본부에서 보고서를 열람했던 부산·울산 환경단체 활동가와 정당 관계자 10여명도 불만을 터트렸다. 이상범 울산환경운동연합 반핵특위위원장은 “이런 식으로 공개하면 국민의 의혹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동안 보고서 공개를 강력히 요구해온 환경운동연합은 2일 “기록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5400여쪽에 이르는 보고서 열람은 요식행위”라고 비판하고, 제대로 살펴볼 수 있도록 국회나 지방자치의회에 제출하는 형식으로 공개할 것을 촉구하며 열람 참여를 공식 거부했다.
고리원자력본부 관계자는 “원전 시설은 국가 1급 보호시설로 지정된데다 설계도면 등은 영업기밀이어서 일반에 공개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며 “원전 경쟁국가와 북한 등에 자료가 유출될 우려 때문에 지금보다 더 많은 내용을 공개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부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