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 등 250마리 기르다
재개발로 사육장 철거돼
개 사라지거나 ‘난민’ 신세
“개들 터전 마련해야” 목소리
대량사육 ‘동물학대’ 우려도
* 애니멀 호더 : 반려동물 대량 사육자
재개발로 사육장 철거돼
개 사라지거나 ‘난민’ 신세
“개들 터전 마련해야” 목소리
대량사육 ‘동물학대’ 우려도
* 애니멀 호더 : 반려동물 대량 사육자
인천시 서구 오류동의 재개발 지역에는 떠돌이 개들이 헤매고 있다. 지난 봄 철거가 시작돼 건물은 잔해만 남고, 개 사육장 주변에서는 수많은 개들이 컹컹 짖고 있다.
김기철(가명)씨는 1991년부터 동물병원 등에서 버린 개를 거둬 기르기 시작했는데, 그 수가 어느새 250여 마리로 불어났다. 이곳이 검단산업단지 터로 지정되면서 재개발이 시작됐고 개를 옮길 곳을 찾기가 막막해졌다.
현장조사를 벌인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사랑실천협회는 28일 “김씨가 개들을 데리고 갈 곳이 없어 시간을 끌다가 결국 인천도시개발공사의 강제철거로 인해 하루 아침에 개들을 난민으로 만들었다”며 “그동안 개들은 원인도 모르게 없어지거나 교통사고로 죽거나 서로 물고 싸워서 죽는 등 결국 150마리 이상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일부 개들이 심장사상충과 모낭충 등에 감염돼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지금도 사육장에는 개 수십 마리가 남아 불안한 날을 보내고 있다. 재개발을 맡은 인천도시개발공사도 일부만 남겨둔 사육장 철거를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애처로운 마음 때문에 지나치게 많은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들을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라고 부른다. 공격적으로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진 않지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동물이 좁고 열악한 환경에 방치되면서 ‘동물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애니멀 호더에 따른 피해를 막을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이다. 반려동물은 법적으로 개인 소유이기 때문에 동물보호소 이관 등 강제 조처를 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물보호법도 공격적인 행위만 동물학대로 규정하고 있어 형사처벌도 힘들다. 외국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2005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애니멀 호더가 기르는 300마리를 구조하라는 판결이 나왔고, 영국에서는 대량 사육자의 사육환경을 점검하도록 하는 법률 제정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애니멀 호더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는 △무책임한 사육문화로 인한 유기동물 증가 △일반인의 유기동물 입양 기피 △동물보호소의 유기동물 안락사 관행과 이를 마음 아파해 무작정 입양하는 애니멀 호더 등 여러 요인이 얽혀 있다.
박소연 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는 “시간이 갈수록 떠돌이 개들의 행동반경도 넓어지고 경계심과 독립심이 강해져 구조조차 어려워질 것”이라며 “인천시와 김씨는 개들의 새 터전을 만들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천도시개발공사 관계자는 “지난 3월과 6월 행정대집행을 연기해주기도 했다”며 “최근에는 김씨가 개들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등 30여 마리만 남았는데, 점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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