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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캣맘들은 안다 수컷 두목이 누구인지를

등록 2013-06-14 20:20수정 2013-06-16 15:50

TNR(티엔아르)는 국제적으로 검증, 인정받고 있는 길고양이 관리 방법입니다. 포획(Trap)-중성화수술(Neuter)-방사(Return)를 이르는 용어입니다. TNR 고양이는 왼쪽 귀 끝을 9mm 정도 잘라 표식을 남김으로써, 아직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길고양이와 구분합니다.  강풀 제공
TNR(티엔아르)는 국제적으로 검증, 인정받고 있는 길고양이 관리 방법입니다. 포획(Trap)-중성화수술(Neuter)-방사(Return)를 이르는 용어입니다. TNR 고양이는 왼쪽 귀 끝을 9mm 정도 잘라 표식을 남김으로써, 아직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길고양이와 구분합니다. 강풀 제공
[토요판/커버스토리] 길고양이와 함께 사는 법
자생적으로 생긴 길고양이는
안락사시켜도 수 안 줄어
길고양이 생태 잘 아는
캣맘들과 지자체 협력하면
TNR 사전·사후 관리 가능해

길고양이의 가장 큰 문제는
호불호 주민 간의 갈등
고양시에선 밥 주기 반대 서명도
“‘무조건 보호’ 당위적 접근보다
점차 합의 이루는 게 중요해”

길고양이(feral cat)는 길을 잃은 고양이가 아니다. 길에서 사는 고양이다. 길 잃은 유기고양이(stray cat)는 유기동물 보호소로 구조돼, 정해진 기간 안에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된다. 반면 길고양이는 역사적으로 인간 주변에 자유롭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동물이다.

국내 법률도 길고양이에게 새로운 법적 정의를 내렸다. 지난해 개정된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은 길고양이를 “도심지나 주택가에서 자연적으로 번식해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고양이”이자, “개체 수 조절을 위해 중성화하여 포획 장소에 방사하는 조치 대상”으로 규정했다. 도시 생태계에서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로 길고양이를 인정한 것이다.

TNR로 개체수 28% 줄어든 샌프란시스코

길고양이는 없앤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진공 효과’ 때문이다. 길고양이는 특정 영역을 몇 마리가 공유하는 식으로 살아간다. 따라서 한 지역의 길고양이를 모두 퇴치한다고 하더라도, 이웃의 길고양이가 들어와 처음과 같은 밀도가 될 때까지 번식한다. 따라서 길고양이를 유기 개체로 보고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안락사시키더라도 개체 수는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다.

이 때문에 1990년대 들어 유럽과 미국에서는 티엔아르(TNR)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어차피 길고양이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태적 경험에서 나온 지혜다.

티엔아르를 지속적으로 시행하면 길고양이가 줄어든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1993~99년 개체 수를 28% 줄였고, 샌디에이고도 안락사를 40% 줄이는 효과를 거뒀다. 장기적으로 개체 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그때마다 길고양이를 퇴치하는 방식보다 비용이 적게 든다. 중성화 수술을 받은 고양이는 특유의 발정음이 줄어드는 이점도 있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반 경기도 과천, 수원 등에서 티엔아르를 도입한 이래 최근에는 전국 주요 도시로 확대됐다. 서울시는 2007년 ‘도심 속 길고양이 관리계획’을 세우고 포획 뒤 유기동물 보호소에 보내는 기존의 방식 대신 티엔아르를 길고양이 정책으로 삼았다. 2008년부터 매년 5000마리 안팎의 길고양이들이 불임수술을 받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시골을 제외한 도시 지자체에서 티엔아르를 한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티엔아르 사업이 정작 큰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 또한 있다. 첫째, 길고양이 개체 수 조절이라는 목적 아래 티엔아르가 체계적으로 시행되지 않고, 단순히 민원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대다수 지자체에서는 길고양이 울음소리 등 민원이 제기되면 티엔아르를 시행한다. ① 민원인의 신고 ② 포획인이 신고 지역에 통덫 설치 ③ 포획 뒤 동물병원에서 불임수술 ④ 제자리 방사 등의 단계를 거친다. 서울시 동물보호과 관계자는 “전체 길고양이의 70~80% 이상에 대해 중성화 수술을 단기간에 마치고 매년 15%씩 수술을 진행해야 개체 수 감소 효과가 나타난다. 예산과 인력의 한계 때문에 사실상 이렇게 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둘째, 길고양이들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티엔아르는 민간업체에 위탁해 진행되는데, 일부 업체는 할당 마릿수를 채우기 위해 마구잡이로 길고양이를 잡아들여 심심찮게 문제가 됐다. 번식 능력이 없는 어린 고양이를 잡아 중성화 수술을 시킨다거나, 중성화 수술 뒤 다른 지역에 방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길고양이는 적응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2011년 10월 농림수산식품부(현 농림축산식품부)가 낸 ‘유기동물 보호·관리 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한 동물보호소에서 중성화 수술이 되어 입소된 암컷 61마리 가운데 10마리에서 자궁내막증식증이 확인되는 등 사후관리도 잘 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둑’고양이가 아니라 ‘독립’고양이

정부 담당자와 전문가들은 서울시 강동구의 ‘길고양이 급식소’ 실험을 하나의 대안으로 본다. 티엔아르의 사전·사후 관리를 위해 지자체와 캣맘(캣대디)이 협력한 사례라는 점에서다. 서울시 동물보호과 관계자가 13일 말했다.

“적은 예산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티엔아르 효과를 누리기 위해선 각 지역에서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캣맘들의 정보가 필요합니다. 이분들은 번식력이 우수한 수컷 우두머리가 누구인지 누구보다 잘 알거든요.”

동물보호단체 ‘카라’가 외국 연구를 조사한 자료를 보면, 길고양이 암컷은 일년에 평균 1.4회 출산을 하고 한번에 1~6마리(평균 3마리)를 낳는다. 새끼의 75%는 병균 감염 등으로 죽는다. 강한 수컷은 넓은 영역을 가지고 짝짓기 가능성을 높인다. 암컷이 여러 수컷과 짝짓기 하는 일은 드물다.

서울에서 한해 5000마리에게 불임수술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길고양이 개체 수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불임수술 횟수가 턱없이 적은 이유도 있지만 통덫에 걸리는 고양이 대부분이 번식 능력이 적은 약한 고양이기 때문이다. 번식 능력이 우수한 힘센 고양이들은 먹을 게 많기 때문에 통덫에 들어가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캣맘들은 올해 어떤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지, 어떤 길고양이가 우두머리인지 알 정도로 주변 고양이들에 밝다. 이들의 지식을 활용해 강한 고양이를 선별해 수술을 시행하면 티엔아르 사업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서울시의 생각이다.

서울시는 8월까지 새로운 ‘길고양이 관리지침’을 제정할 예정이다. 서울시에서 활동하는 ‘캣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각 구청은 캣맘 정보를 이용해 티엔아르를 시행하도록 하려고 한다. 민원 해소용으로 사업을 국한시키지 않고, 번식능력이 우수한 고양이에게 먼저 중성화 수술을 시행함으로써 개체 수 조절의 성공률을 높인다는 복안이다.

캣맘이 정기적으로 먹이를 주면 몇 가지 이점이 있다. 길고양이가 사람을 적이 아닌 존재로 인식하면서 성격이 순해진다. 동네의 길고양이가 느리고 친근하다면 분명 누군가가 밥을 주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에 놀란 고양이가 뛰쳐나가는 등의 사례가 줄고 쓰레기봉투를 훼손하는 일도 적어진다. 길고양이 블로거 고경원씨는 “강동구가 주민센터 앞에 급식소를 설치한 것은 정부가 길고양이와 인간이 공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며 “길고양이가 보호 대상이라는 점을 공인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도 길고양이 문제를 주민 참여 방식으로 풀고 있다. 고양시는 2011년 8월부터 캣맘들과 티엔아르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200명 안팎이 활동하는 고양시캣맘협의회는 자신의 동네에서 밥을 주면서, 중성화 대상 고양이 선정과 방사 등에 관여한다. 다만 강동구와 달리 고양이 밥은 자신이 정한 장소에 별도로 준다.

길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길고양이 문제의 가장 큰 문제는 길고양이가 아니라 주민 사이의 갈등이라고 지자체 담당자들은 입을 모은다. 때로는 양쪽의 감정 다툼이 폭력 사태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7월 길고양이에게 밥을 줬다는 이유로 이웃 주민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거꾸로 처박아 전치 4주의 상해를 입힌 ‘인천 캣맘 폭행사건’이 대표적이다. 고양시에서조차도 최근 한 아파트 주민들이 주거환경을 해친다며 ‘길고양이 밥 주기’를 반대하고 나서면서 서명운동과 집회가 열리는 등 주민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길고양이 밥 주기는 불법이 아니지만 정부의 권장 사항도 아니다. 한성준 고양시 동물방역팀 계장은 “티엔아르 이후의 밥 주기 등 사후관리에 대한 법제화가 필요하다. 기준이 없다보니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커진다”고 말했다. 올해 10월 ‘티엔아르에 관한 고시’를 확정할 예정인 농림축산식품부도 길고양이 밥 주기에 대해서는 유보적이다. 방역총괄과의 정지원 주무관은 “정부가 ‘고양이 밥 주기’ 권장을 법제화시키기에는 아직 이르다. 티엔아르는 정부가 하는 게 맞지만, 밥 주기는 민간에서 하는 게 바람직하다. 지자체가 주도해 (찬반) 주민들과 대화와 협의로 해결하는 게 이상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길고양이를 여전히 도둑고양이로 부르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반려동물처럼 끔찍이 여기는 사람도 있다. 길고양이는 자생적으로 사는 ‘독립 고양이’다. 새로 들어온 손님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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