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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인체 무해하다던 쥐약은 극약이었다

등록 2014-11-07 16:54수정 2014-11-08 10:58

1960~1970년대 쥐잡기운동은 대통령부터 초등학생까지 나선 국민총동원 체제의 연습장이었다. 그러나 쥐의 높은 기피성과 서식지 이동 성향에 따라 매년 3000만~4000만마리를 포획해도 쥐 박멸은 허사였다. 오히려 미국 시장에 출시되기 전의 쥐약을 섣부르게 수입해 국민에게 무료 배포함으로써 수백명의 피해자를 양산했다. 사진은 당시 정부가 배포한 쥐잡기운동 포스터. <한겨레> 자료사진
1960~1970년대 쥐잡기운동은 대통령부터 초등학생까지 나선 국민총동원 체제의 연습장이었다. 그러나 쥐의 높은 기피성과 서식지 이동 성향에 따라 매년 3000만~4000만마리를 포획해도 쥐 박멸은 허사였다. 오히려 미국 시장에 출시되기 전의 쥐약을 섣부르게 수입해 국민에게 무료 배포함으로써 수백명의 피해자를 양산했다. 사진은 당시 정부가 배포한 쥐잡기운동 포스터.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생명
미국대사관 ‘쥐약’ 비밀문서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서류 더미에서 1975년 주한 미국대사관이 ‘쥐약’과 관련해 본국에 보낸 비밀 보고서를 발견했습니다. 미국에서 개발된 살서제 ‘바코’, 한국에서는 ‘백호’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RH-787 성분의 신약이었습니다. ‘인체에 무해하다’고 알려진 이 쥐약은 한국에서 수백명의 사상자를 불렀습니다. 군사정부의 국민 총동원 체제, 동물실험에 대한 근대적 맹신 그리고 한-미 간의 정치적 위계가 이 사건의 이면을 흐르고 있었습니다.

기자는 최근 고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미국 외교문서 자료실에서 흥미로운 문건을 찾아볼 수 있었다. ‘미국제 살서제(쥐약)의 인간 독성’이라는 제목의 기밀 문건으로, 1975년 6월4일 리처드 스나이더 주한미국대사가 국방성과 국무성에 보고를 올린 내용이다.

“미국의 화학업체인 롬앤하스가 개발한 쥐약이 여러 명의 한국인 죽음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경남 마산에 사는) 두명이 쥐약 때문에 숨진 것으로 보이며, 추가로 여섯명이 숨졌거나 사망이 예상된다고 회사 쪽 인사들은 밝혔다. 또한 한국 정부가 더 많은 피해 사례와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감추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이들은 보고했다.”

어느 중국집 종업원들의 비극적 실험

무슨 일 때문이었을까? 사건은 약 한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정부는 1975년 4월30일 쥐잡기운동을 맞아 새 쥐약을 200만가구에게 나눠줬고, 이는 5월7일 경남 마산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일하던 젊은이들에게 우연한 비극으로 닥친다. 한 신문은 이렇게 전한다.

“마산시 남성동 중국음식점 경화반점의 종업원 정아무개(29)씨와 황아무개(19)군은 쥐잡기용으로 배급된 쥐약을 시험 삼아 먹었다가 숨졌다. 이들은 지난 4월30일 쥐잡기용으로 시로부터 배정받은 경기도 시흥군 서면 소하리 에스(S)화학 제품인 백호 쥐약 네 봉지가 남아 있자, 지난 7일 같은 종업원 이모(18)군 등 4명과 함께 ‘요즘 쥐약은 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얘기하던 끝에 ‘시험해보자’면서 정씨와 황군이 10g들이 쥐약 한 봉지씩을 먹고 배가 아파 마산도립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19일 오전 둘 다 숨졌다는 것이다.”(<동아일보> 1975년 5월20일)

문제의 쥐약은 25g짜리 작은 봉지에 들어 있었다. 겉면에는 사람과 가축에게 거의 해가 없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극히 많이 먹을 경우에만 식욕감퇴와 설사 등의 증상만 나타난다는 경고 말고는 없었다. 이 약은 미국에서 ‘바코’(Vacor)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기 직전, 한국에서 합작 형태로 ‘백호’라는 비슷한 이름의 상품명으로 생산·보급됐다. 미국 롬앤하스(RH·Rohm & Hass)사에서 787번째로 개발한 신약 성분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RH-787’로도 불렸다. 미국에서도 독성검사를 마치고 판매를 기다리는 상황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대사관은 이 문서에서 한국 수사기관이 소유한 사망자의 신체 조직 샘플을 얻기 위해 본국 정부가 외교력을 발휘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마산의 젊은이들이 정말로 RH-787 때문에 숨졌는지, 직접 시험해보고 싶어서였다. 스나이더 주한미국대사는 이렇게 보고를 맺는다.

“롬앤하스와 환경청(EPA) 전문가들은 바코에 인간 독성이 있을 가능성을 높게 보진 않는다. 그렇다고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든 이들의 죽음이 쥐약 때문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고, 문제가 있다면 미국 판매를 금지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미국 기업과 정부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1975년 쥐잡기 때 200만 나눠준
인체 무해한 ‘백호 쥐약’
미대사관, 본국에 비밀 보고
“여러 명 죽음과 관련된 듯
한국 정부 감추고 있는 것 같다”

학계 보고된 404명 중 109명 사망
동물실험 결과는 빗나갔고
새 쥐약은 당뇨병을 일으켰다
군사정부 총력전의 희생양은
쥐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경제발전을 위해 ‘쥐잡기’

1960~1970년대 쥐잡기운동은 대통령부터 초등학생까지 나선 국민총동원 체제의 연습장이었다. 그러나 쥐의 높은 기피성과 서식지 이동 성향에 따라 매년 3000만~4000만마리를 포획해도 쥐 박멸은 허사였다. 오히려 미국 시장에 출시되기 전의 쥐약을 섣부르게 수입해 국민에게 무료 배포함으로써 수백명의 피해자를 양산했다. 사진은 당시 정부가 배포한 쥐잡기운동 포스터. <한겨레> 자료사진
1960~1970년대 쥐잡기운동은 대통령부터 초등학생까지 나선 국민총동원 체제의 연습장이었다. 그러나 쥐의 높은 기피성과 서식지 이동 성향에 따라 매년 3000만~4000만마리를 포획해도 쥐 박멸은 허사였다. 오히려 미국 시장에 출시되기 전의 쥐약을 섣부르게 수입해 국민에게 무료 배포함으로써 수백명의 피해자를 양산했다. 사진은 당시 정부가 배포한 쥐잡기운동 포스터. <한겨레> 자료사진
쥐잡기운동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1960~70년대 연례행사로 열렸다. 과거 전염병을 옮기는 동물로 여겨진 쥐는 경제개발을 좀먹는 훼방꾼으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쥐가 얼마나 많이 살고 있는지 그리고 쥐가 얼마나 양곡을 훔쳐 먹는지를 정부는 매년 발표했다. “쥐가 훔쳐 먹는 양곡은 1년에 180만섬… 650만 서울시민이 두달간 먹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경향신문> 1975년 12월13일)이라거나 “우리나라에 1억여마리의 쥐가 있는 것으로 집계… 이 쥐들이 먹어치우는 양은 대구시민 120만명이 소비하는 1년 식량”이라는 등의 통계가 양산됐다. 일년에 한두 번 ‘쥐 잡는 날’을 정해 전국민에게 쥐약을 무료로 나눠주고 쥐 박멸에 나섰다. 농림부 차관을 본부장으로 각 부처와 학교, 농협, 반상회 등의 조직을 타고 내려가는 쥐잡기운동본부는 국민 개개인과 연결됐다.

쥐잡기운동의 성과는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됐다. ‘1970년도 제2차 쥐잡기 사업 실시계획 보고-제1차로(1970. 1. 26. 18:00) 전국에서 일제히 쥐잡기 사업을 실시한 결과, 총 4200만마리의 쥐를 잡아 1066천석의 양곡 손실을 방지하는 좋은 성과를 올렸음.’(1970년 3월28일 대통령비서실 작성)

쥐 잡는 날이 지나면 3000만~4000만마리를 포획했다는 발표가 이어졌지만, 쥐는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정부는 신약을 투입하는 데 골몰했다. 1964년 정부는 그동안 써오던 사람과 가축에 해가 거의 없는 ‘와파린’ 대신 강력한 효능의 ‘인화아연제’를 나눠줬다. 인화아연제는 1970년대까지 대표 쥐약이 되었다. 그러나 개, 고양이, 닭 등 가축 피해가 끊이지 않았고, 사람들도 자살 목적으로 인화아연제를 먹기 시작했다. 쥐들은 주변의 쥐들이 피해 입는 것을 보면 쥐약을 꺼리기 시작한다. 이를 ‘기피성’(poison shyness)이라고 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기피성이 높아지면서 쥐약의 효과는 떨어진다. 이 때문에 정부는 다시 새 약이 필요했다. 이렇게 RH-787이 미국 시장이 유통되기도 전에 백호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것이다.

맨 처음 백호는 인체에 해가 없는 신약으로 홍보됐다. 미국에서 이뤄진 동물실험 결과도 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쥐의 치사량은 몸무게 1㎏당 50㎎, 닭 710㎎/㎏, 개 500~1000㎎/㎏, 원숭이 2000~4000㎎/㎏이었다. 70㎏짜리 원숭이라면 140~280g의 약을 먹어야만 죽었다. 그렇게 많은 양을 먹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인간에게도 안전할 것이라고 추정됐다. 주한미국대사관 보고서를 보면, 미국 환경청도 인간을 대상으로 한 소량의 임상실험은 생략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 정부도 서둘러 허가를 내줬고, 4월30일 쥐잡기운동에 맞춰 무료로 배포했다.

쥐는 사라지지 않았다

동물실험 결과는 틀렸다. 1976년 백태일 교수(서울적십자병원 내과) 등의 연구를 보면, 인간은 단 백호 반 봉지 이하(12.5g)를 먹고도 생명을 잃을 수 있었다. 이들은 예상치 못한 ‘저혈당 쇼크’에 빠졌고, 회복되더라도 당뇨병이라는 후유증을 앓았다. 홍관식 부산대의대 교수 등은 1979년 논문에서 “사람이 쥐나 가축보다 RH-787에 더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적은 양만 먹으면 되니 자살약으로 애용됐다. 1976년 5월부터 6월까지 두달 동안 서울 적십자병원 내과에 온 RH-787 중독 환자만 27명이었다. 이 가운데 3명이 숨졌다. 김민정 가톨릭의대 내과 교수 등이 1976~1978년 3년 동안 학계에 보고된 중독환자 수만 추린 것도 404명이었다. 이 중 109명이 숨졌다. 미국 롬앤하스사는 성분을 조정해 바코를 재출시했다. 1979년엔 아예 생산을 중단했다. 한국에서는 1975년과 1976년 두차례 대량 배포된 이후 자살약으로 떠돌았다.

김근배 전북대 교수(과학사)는 2007년 ‘생태적 약자에 드리운 인간권력의 자취’라는 논문에서 박정희 정권의 쥐잡기운동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물적·인적 자원을 대대적으로 결집시킨 총력전”이었다고 말한다.

“매년 강력한 최고의 쥐약이 무수히 이용되어 수많은 쥐를 잡았음에도 쥐는 사라지기는커녕 줄어들지도 않았다. 해가 거듭되어도 정부는 매년 국가적 목표로 삼은 약 4000만마리의 쥐를 잡고 또 잡았다. 살아남은 쥐들이 교묘한 생존능력을 발휘하며 원래의 규모로 다시 늘어났기 때문이다.”

1979년 박정희 정권이 몰락하면서 전국민적인 쥐잡기운동은 사라졌다. 1980년대 들어 쥐들도 줄어들었다. 주택, 부엌, 창고, 하수도, 개천 등의 환경개선사업으로 쥐의 서식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쥐잡기운동은 쥐는 잡지 못하고 사람만 잡았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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