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 황게국립공원에서 사자 연구를 하는 브렌트 스타펠캄프가 6일 사자 ‘세실’(사진 아래)의 사진을 보내주었다. 제리코(위)는 세실과 협력해 각각의 프라이드(사자의 무리 단위)를 다스렸다. 세실이 사냥으로 희생되기 약 한달 전 스타펠캄프가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토요판] 생명
참수된 ‘세실’ 지켜본 스타펠캄프 인터뷰
참수된 ‘세실’ 지켜본 스타펠캄프 인터뷰
▶ 짐바브웨는 세실 로즈 경의 남아프리카회사가 통치하는 영국 식민지였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로디지아’ 공화국이 1980년 독립하기 전까지 존재했습니다. 역시 그의 이름을 딴 사자 ‘세실’이 지난달 미국인 사냥꾼에 의해 참수되면서 유엔이 야생동물 밀렵과의 전쟁 결의안을 내는 등 전세계가 흥분했습니다. 사자의 몸에도 인간의 역사와 문화, 신자유주의 같은 이데올로기가 흐릅니다. 백인이 지배하던 로디지아 시절이나 흑인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30년 가까이 철권 통치하는 지금이나 야생동물은 착취되어 왔습니다.
피묻은 야생보전기금이 사자를 학살하네
아프리카의 세렝게티는 에덴이 아니다. 원래 이곳에선 마사이 유목민들이 가축을 기르며 살고 있었다. 야생과 문명은 칼에 잘린 두부처럼 분리돼 있지 않았다. 맹수가 가축을 습격하듯 둘은 뒤엉켜 있었다. 세렝게티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마사이 부족은 강제 퇴거됐다.
사실 아프리카 대부분의 사파리들이 그러하다. 야생동물을 보전하기 위해 (혹은 관광객들을 받아 돈을 벌기 위해) 가난한 주민들이 강제 퇴거되는데, 이를 저명한 환경지리학자 대니얼 브로킹턴은 ‘요새형 야생보전’(fortress conservation)이라고 불렀다. 요새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일컫는 ‘보전 난민’(conservation refugee)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역설이 있다. 야생동물은 ‘요새 안에서만’ 안전하다. 밖에서는 ‘합법적인’ 스포츠 사냥과 ‘불법적인’ 밀렵에 희생된다. 짐바브웨 황게국립공원의 사자 ‘세실’도 마찬가지였다. 이 공원에서 사진 잘 받기로 유명한 세실은 국립공원 밖으로 유인돼 사냥꾼의 화살과 총탄에 숨졌다.
요새 밖에서 당한 세실
황게에서 세실을 가장 가까이 봐온 브렌트 스타펠캄프(38)와 4~6일 몇 차례 전자우편을 주고받으며 인터뷰를 했다. 짐바브웨 사람인 그는 영국에서 야생동물 보전·관리를 공부했고 최근에는 옥스퍼드대 야생보전연구팀(WILDCRU)의 현장연구원으로 사자들에게 위성위치추적장치(GPS)를 달고 생태 관찰을 해왔다. 가장 마지막으로 세실을 가까이서 본 사람이 그다. 지피에스를 교체할 때만 해도 세실은 백수의 왕이었다.
-세실을 언제 처음 봤나?
“사자를 쫓아다닌 지 16년 됐고, 이곳 황게국립공원에서 9년을 일했다. 세실을 처음 본 건 2008년이다. 기존 무리에서 (독립해) 떨어져 나온 세실과 그의 형제인 ‘리앤더’를 발견했다. 연구팀은 세실 로즈 경을 따라 이름을 세실이라고 짓고 지피에스를 달았다. 그 뒤 세실이 합류한 무리와 다른 사자들이 먹고 교미하고 여행하는 것을 수백시간 동안 지켜봤다. 세실이 사냥한 코끼리를 20여마리를 데리고 잡아먹던 장면이 기억난다. 배가 부른 세실은 코끼리 위에서 낮잠에 빠졌고, 나머지 사자들이 둘러싸고 정신없이 먹어대던….”
사자는 가장 힘센 ‘알파 수컷’과 그를 보좌하는 소수의 수컷 그리고 다수의 암컷과 새끼들로 한 무리를 구성한다. 이를 ‘프라이드’라고 부른다. 프라이드 사이에는 끊임없는 외침과 방어, 연대와 인수, 합병이 있다. 스타펠캄프의 관찰에 따르면, 세실은 산전수전을 겪고 프라이드의 우두머리로 우뚝 선 사자였다.
짐바브웨 사람인 스타펠캄프는
옥스퍼드대 야생보전연구팀으로
황게국립공원 사자들 GPS로 관찰
7년간 가장 가까이서 ‘세실’ 봐왔다 영국 식민 통치자 이름 딴 ‘세실’
산전수전 겪은 용맹한 리더의 비극
‘영아살해’로 이어지는 스포츠 사냥
야생기금 위해 허락한 합법적 살육
-세실의 역사가 궁금하다.
“세실이 리앤더와 함께 국립공원을 돌아다니던 중 2009년 ‘음포수’ 프라이드와 큰 싸움이 벌어졌다. 리앤더는 죽고 음포수도 심하게 다쳐 숨졌다. 음포수는 나중에 세실과 협력해 연합전선을 편 ‘제리코’의 아빠였다. 아빠가 죽자 아들인 제리코와 그의 형제가 거느리는 프라이드가 이 땅을 점령했고, 세실은 국립공원의 동남쪽 변두리인 링크와샤로 밀려났다. 세실은 거기서 정착해 착실히 자신의 프라이드를 키워간다. 암컷과 새끼들이 20마리가 넘을 정도였다. 그러다 조금 어린 두 마리의 공격을 받아 프라이드를 빼앗기고 도망친다. 제리코도 마침 비슷한 상황으로 내몰린 터였다. 몇 년 뒤 세실과 제리코는 파트너가 되어 나타났다.”
-세실과 제리코가 하나의 프라이드를 만든 건가?
“아니. 별개의 두 프라이드다. 각각 암컷 세 마리를 거느렸고, 세실의 프라이드에만 새끼 7마리가 있었다. 제리코는 자신과 관련이 없지만 새끼들을 해치지 않고 받아들였다.”
7월1일 세실은 참수된 채 발견된다. 머리는 정교하게 잘려 사라졌고, 몸통은 하이에나가 뜯어먹어 뼈만 남아 있었다. 고가의 사냥여행을 떠난 미국인 치과의사 월터 파머의 소행으로 밝혀졌고, 전세계 미디어는 이 사건에 집중하면서 제리코도 죽은 거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다. 스타펠캄프는 지난 2일 제리코를 찾아내어 다시 한번 뉴스의 중심에 선다.
-세실의 새끼들은 안전할까?
“당분간은 어미와 제리코가 주변에 있기 때문에 안전할 것이다.”
사실 이번 세실의 죽음은 예견된 사건이었다. 옥스퍼드대 야생보전연구팀은 2006년 학술지 <바이올로지컬 컨서베이션>에 황게국립공원 사자에 대한 연구 결과를 싣는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사자 62마리에 지피에스를 달았는데, 24마리(39%)나 사냥되어 죽은 채 발견됐다. 주목할 만한 것은 대부분 수컷이었다는 점, 그리고 공원 경계 바깥에서 발견됐다는 점이었다. 국립공원 안에서 사냥하면 불법이지만, 밖에서의 사냥은 합법이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가 그렇듯이 짐바브웨 정부는 매년 사냥쿼터를 정하고 민간 소유의 사파리나 업자에게 사냥허가권을 경매에 부친다. 스타펠캄프에 따르면, 사냥허가권은 사자 한 마리에 2만달러(2340만원), 코끼리 한 마리에 1만달러(1270만원) 정도다. 대개 이런 민간 사파리는 야생동물이 많이 사는 국립공원에 인접해 있다. 사냥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가이드들은 미끼를 사용한다. 상대적으로 사냥허가권이 저렴한 기린 같은 사체를 나무에 걸어놓거나 동물의 내장을 차에 달고 사자를 국립공원 밖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주 고객은 미국과 유럽의 부자 사냥꾼들이다. 세실 사건에 연루된 월터 파머도 3만5000달러(4100만원)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왜 수컷이 사냥감이 되는가?
“힘센 수컷일수록 갈기가 멋지고 덩치가 크다. 머리를 잘라 박제를 만들기 좋다. 가끔 어린 수컷을 잡기도 하는데, 어디까지나 (갈기가 좋은) 어른 수컷이 안 보일 때다.”
-사냥이 사자의 생태에도 영향을 끼치나?
“사자에게는 ‘영아살해’가 있다. 수컷 리더가 영역싸움으로 죽거나 쫓겨나면 새로운 수컷이 프라이드를 점령한다. 그리고 새끼들을 다 죽여버린다. 그러면 암컷은 발정기가 되고 새 수컷 지도자는 번식을 시작하지. 인간이 사냥으로 수컷을 죽였을 때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다른 수컷이 새끼들을 죽이고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린다. 암컷 사자는 전형적인 엄마다.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죽기도 하고, 아예 새끼들을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기도 한다.”
마을을 위해 처녀를 바치는 것 같은…
세실의 죽음에 흥분한 건 정작 짐바브웨가 아니라 서구의 언론이다. 사실 짐바브웨 사자를 멸종위기에 빠뜨린 건 영국 제국주의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영국의 연구기관이 사자에 지피에스를 달고 서구의 언론이 앞장서 야생동물 보전을 설파한다. 사자 세실도 영국 식민주의자 세실 로즈 경의 이름을 따왔다. 그는 남아프리카를 통치하던 식민지 관료였으며, 짐바브웨에서 다이아몬드를 채광하는 사업가였다. 만약 일본인 연구자들이 지리산 반달곰에 ‘이토 히로부미’라는 이름과 지피에스를 달고 실시간으로 관찰한다면? 민족의식 투철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분개할지도 모르겠다.
아프리카 야생에 대한 지배는 식민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바뀌었다고 브로킹턴은 말한다. 식민지 시절 닥치는 대로 사자를 잡아들였다면 지금은 쿼터를 주고 사냥허가권을 판다. 보전의 외피를 둘러쓰고 이윤을 창출한다. 놀라지 마시라. 주류학자들은 스포츠 사냥이 야생보전에 기여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기준에서는 진보적으로 보이는 세계야생보전기금(WWF)도 스포츠 사냥을 반대하지 않는다. 옥스퍼드대 야생보전팀조차도 ‘지속가능한’ 스포츠 사냥을 주장하는 미국의 이익단체 ‘달라스사파리클럽’에서 일부 후원을 받고 있다.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외국인 갑부에게 사냥허가권을 주고 번 돈은 가난한 아프리카 경제에 기여한다. 정부는 토지 소유주에게 자신의 땅을 민간 사파리로 바꾸도록 권장한다. 짐바브웨에서는 야생동물의 경쟁자인 가축의 방목지 27만㎢가 민간 사파리로 바뀌었다. 귀족 사냥여행의 주 고객은 미국과 유럽 등 옛 제국주의 나라의 갑부들이다. 짐바브웨는 독립했지만 잡혀가는 동물, 잡아가는 인간은 달라지지 않았다.
-과거 제국주의 나라 사람들이 와서 사냥을 하는데?
“예전엔 그런 나라가 대부분이었겠지만, 지금은 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요즈음은 브라질과 러시아도 주요 고객이다.”
-합법적인 사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과학적 방법과 지속가능성, 투명성을 바탕으로 매우 엄격하게 사냥을 통제해야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굵은 이탤릭체로 썼다) 사자 사냥이 계속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사냥을 통해 쌓은 기금이 보전사업에 도움이 된다면, 좀더 강력한 법과 윤리로 통제해야 서식지와 종을 보호할 수 있다.”
야생보전 담론은 사자라는 집단적 ‘종’의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둔다. 개별 개체의 ‘생명’이 아니다. 또한 실용주의와 사실에 기반한다(고 주장한다). 항상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이를테면, 여의도만한 면적에 사자가 ‘지속가능’하려면, 최소 몇 마리가 있어야 되는지를 계산한다. 나머지는 돈을 버는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개개 생명의 가치는 교환가치로 환원될 수 없다. 마을의 번영을 위해 매년 처녀 한명을 괴물에게 바치는 게 괜찮다고 여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매년 쿼터를 정해놓고 사자를 죽이는 게 동물의 왕국을 위해서 불가피한 일이라고? 이런 방식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게 동물권·동물복지의 사유 방식이다. 스포츠 사냥을 어떻게 볼 것인가. 동물에 관한 철학적 논쟁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대략 이 지점에서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옥스퍼드대 야생보전연구팀으로
황게국립공원 사자들 GPS로 관찰
7년간 가장 가까이서 ‘세실’ 봐왔다 영국 식민 통치자 이름 딴 ‘세실’
산전수전 겪은 용맹한 리더의 비극
‘영아살해’로 이어지는 스포츠 사냥
야생기금 위해 허락한 합법적 살육
사자 ‘세실’을 7년 동안 지켜본 브렌트 스타펠캄프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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