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부산 기장 앞바다에서 탈진한 채 발견돼 부산아쿠아리움에서 치료와 야생적응 훈련을 받아온 상괭이 ‘오월이’. 한강에서 숨진 상괭이들과 달리 한달여 뒤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사진 부산아쿠아리움 제공
[토요판] 커버스토리 / 한강 고래와 신곡 수중보
4월과 5월에 사체로 발견된 상괭이
그 수수께끼 중심에 선 신곡수중보
4월과 5월에 사체로 발견된 상괭이
그 수수께끼 중심에 선 신곡수중보
수도 서울을 양분하는,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신화를 표상하는 한강은 고인 물입니다. 신곡보와 잠실보가 한강을 콘크리트 어항처럼 가둬 사계절 내내 일정한 수심을 유지합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입니다. 올해 한강에 ‘경보’ 수준으로 나타난 녹조는 앞으로도 해마다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한강을 다시 흐르는 강으로, 자연성을 회복한 강으로 만드는 일은 우리에게 불가피한 선택인지도 모릅니다. 신곡보를 철거하면, 한강에서 상괭이와 만날 수 있을까요?
지난 14일 오후 서울 한강 김포대교 북단 진입로에서 바라본 신곡수중보 고정보의 모습. 신곡보 하류의 수위가 가장 낮은 시점인 간조 때의 모습으로, 보 상류에서 하류로 떨어져 내린 물들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고 있다. 상괭이들은 하루 두번 신곡보가 물에 잠기는 밀물 때 보를 넘어 한강 상류까지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상괭이’가 잇따라 발견됐다
바다 오염, 먹이 오염 추측 나오고
노량진수산시장 투기설까지
원인 분석 위해 해부가 시작됐다 조선시대부터 ‘한강 고래’ 등장
1922년 대형고래 출현해 서울 들썩
상괭이 해부 결과 “질식사 아니다”
건강하게 서울까지 헤엄쳐왔다가
신곡보 막혀서 못 돌아간 건가? 경성에서 개성까지 간 고래 한강에 나타난 고래에 관한 기록은 한양에 도성을 정한 조선시대부터 등장한다. 상괭이 같은 작은 돌고래부터 대형 고래까지 여러 번 나타났다. 태종실록은 조선 태종 5년인 1405년에 “비늘이 없고 색깔이 까맣고 코는 목 위에 있는 괴이한 물고기가 나타났다”고 전한다. 조선 광해군 때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에는 “가정 갑자년(1564년) 연간에 한강에 큰 물고기가 나타났다. 크기는 돼지만 하고 색상은 희며, 길이가 한 길이 넘는데 머리 뒤에 구멍이 있었다”고 돼 있다. 성체의 크기가 2m가량인, 정수리에 숨구멍이 있는 상괭이일 가능성이 높다. 1636년에는 고래 두마리가 한강에서 싸움을 벌였다. 조선의 선비 조경남(1570~1641)이 쓴 <속잡록> 4권을 보면 “고래 두마리가 서해로부터 고양의 압도(지금의 난지도)로 들어와 서로 싸웠는데, 한마리는 그 크기가 한량이 없었다. 그래서 서울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도살하여 들여와 기름을 짰다”고 쓰여 있다. 일제 때인 1922년 <동아일보>는 한강에 나타난 고래 기사를 연이어 실었다. 그해 9월18일 오전 한강철교 밑에서 발견된 고래는 길이 약 5.4m, 무게 7.5t의 대형 고래였다. 경성(서울)은 고래의 출현으로 들썩였다. 명동 등 두곳에서 돈을 받고 구경꾼을 불러모은 뒤 개성까지 옮겨가 순회 전시됐다. 고래 구경은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신기한 체험이었고, 기발한 돈벌이를 성공시킨 수산회사에는 돈이 되었다. 이런 풍경이 편치 않은 이들도 있었다. 이 신문은 10월8일 “돈 버는 것도 좋기는 하지만 다 썩은 고래의 배에 소금을 섬으로 털어넣고는 길거리에 놓아 코를 찌르는 냄새는 지나가는 사람의 골칫거리”라며 일침을 가했다. 일본인 생선장사조합은 고래에 대해 ‘영혼 위령제’를 열었고 서울시장 격인 경성부윤의 대리가 참석했다. 한강의 고래는 비일상적 사건이었고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9년 전 한강 반포지구 서래섬 인근에서 상괭이의 사체가 발견된 것이 가장 최근의 일이다. 이 상괭이는 모형의 형태로 선유도 공원에 전시돼 있다. 상괭이는 어떻게 한강에 올라왔을까. 왜 바다에 돌아가지 않은 걸까. 상괭이는 전세계에서도 한국 연안에 많이 사는 토종 돌고래다. 서해와 남해에만 3만6000마리가량이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상괭이 전문가인 박겸준 고래연구소 연구원은 18일 “상괭이는 특히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 먹이를 얻기 좋은 기수역을 좋아한다”며 “다른 강에선 이렇게 깊이 들어올 수가 없다. 한강이니까 서울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강 하구는 상괭이들이 선호할 만한 지역이다. 남한의 다른 강들과 달리 하굿둑이 없어 바닷물이 들어오는 유일한 강이다. 강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가 북한과의 접경 지역이기 때문에 하굿둑 건설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88년부터는 경기 고양, 김포 부근에 신곡보(신곡수중보)가 한강을 막고 있다. 즉, 한강으로 거슬러 오르는 고래는 서울의 마천루를 앞두고 나타난 거대한 ‘콘트리트 장벽’에 머리를 부딪힐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대형 고래 출현 소식이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상괭이는 어떻게 서울 시내까지 올라왔을까. 왜 낯선 도심의 강 한가운데에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숨진 걸까.
지난 4월 한강에서 발견된 상괭이. 4월의 상괭이는 지난 17일 울산 고래연구소에서 해부됐다. 와이티엔(YTN) 화면 갈무리
지난 5월 한강에서 발견된 상괭이. 5월의 상괭이는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 냉동 보관 중이다. 박기용 기자
신곡수중보의 위치와 기능
상하류 단절된 ‘콘크리트 어항’에
백사장·모래톱·하중도 사라져
오염된 강물엔 유람선만 ‘덜렁’
한강은 시멘트 장벽으로 단절됐다 신곡보 철거하면 어떻게 될까
모래톱이 생기고 녹조 줄어들고
서울에도 바닷물이 들어온다
런던 템스강 출현한 고래처럼
상괭이도 우리도 즐거웠으면… 1980년대 한강종합개발 사업이 남긴 것 보 건설은 오늘날 한강의 모습을 만든 한강종합개발사업의 핵심이었다. ‘보를 세워 물그릇을 만든다’는 기본이념을 가진 4대강 사업의 전신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장이었을 때 현대건설이 한강종합개발 3공구(서강대교~원효대교) 공사에 참여했다. 한강종합개발은 88올림픽 개최 확정 1년 뒤인 1982년 9월에 시작돼 아시안게임 개최 직전인 1986년 9월 마무리됐다. 이어 1986년 10월 잠실대교 바로 아래 잠실보(잠실수중보)가, 1988년 6월 신곡보가 준공됐다. 정부와 서울시는 두 개의 보를 세우면서 강바닥을 파내고 강 양안에 콘크리트를 발라 한강의 시내 구간을 상하류와 단절된 거대한 콘크리트 어항의 형상으로 만들었다. 사계절 내내 수심을 2.5m로 유지해 유람선을 띄우고 농업용수와 취수를 확보한다는 목적이었다. 덕분에 강변은 강물과 완전히 분리돼 생태적 연계성이 없는 배수로가 됐다. 잠실, 뚝섬, 신사·반포, 난지도 같은 하중도들은 모두 육지화되거나 골채 채취로 사라졌다. 물고기가 알을 낳는 모래톱과 물살이 빨라지는 여울, 시민들이 강수욕을 하던 백사장도 없어졌다. 강을 메워 만든 땅에 아파트를 지었고 강변에 쌓은 제방 위에는 올림픽대로를 놓았다. 한강종합개발사업에 9560억원이 쓰였다. 요즘 화폐 가치로 따지면 3조원이다. 예산의 3분의 2가량이 하수처리시설 건설에 쓰였지만, 모습이 바뀐 한강의 강물은 여전히 오염돼 있다. 시민들은 강변도로 밑으로 띄엄띄엄 뚫어놓은 ‘토끼굴’을 통해 강변 둔치의 공원을 드나든다. 한강의 접근성이 떨어졌다. 강수욕을 즐기던 시민들은 공원에서 강을 바라만 볼 뿐, 아무도 강물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강물엔 유람선만 떠다닌다. 한강은 두개의 수중보로 단절된 강이 됐다. 과거의 한강은 다채로운 모습이었다. 부산 해운대 해변에나 있는 드넓은 백사장이 있었고, 크고 작은 섬들 중에는 잠실섬, 밤섬처럼 사람이 사는 섬도 있었다. 한강 백사장은 지금의 동부이촌동에 있었는데, 30만명의 군중이 모일 정도로 광활했다. 당시엔 용산~성북 전철이 다니는 경원선 철길에서부터 한강 이남의 흑석동까지가 전부 백사장이었다. 강물은 흑석동과 노량진 쪽의 언덕에 붙어 가늘게 흘렀다. 1970~80년대 서울 도시계획에 관여했던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를 보면 1956년 5월3일 한강 백사장에서 열린 야당의 정·부통령 후보 정견 발표에 청중이 30만명이 모였다고 쓰여 있다. 당시 서울 인구가 160만명이었고 유권자는 70만3000명이었으니, 전체 유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인파가 모여든 것이다. 옛날 한강은 강폭도 들쭉날쭉했다. 한강 제방도로가 축조되기 전 한강은 홍수 때 강 너비가 1800~2000m에 이르렀다. 잠실은 섬이었고 석촌호수가 한강이었다. 이곳의 한강 너비는 3500m가 넘었다. 반면 갈수기엔 강폭이 50~100m 정도로 좁아졌다. 한강의 자연적인 모습은 원래 이런 형상이었다. 과거 한강엔 지금보다 더 많은 섬이 있었다. 뚝섬과 잠실도, 여의도, 난지도 같은 큰 섬을 비롯해 석도, 부리도, 저자도, 선유도 같은 10여개의 섬들이 있었다. 밤섬엔 60가구가 넘는 이들이 배 만드는 마을을 형성해 살고 있었다. 1968년 여의도 매립을 위한 자갈과 모래 등을 얻기 위해 폭파돼 해체됐지만 한때 한강의 해금강이라 불릴 만큼 백사장과 기암괴석의 절경이 아름다웠다. 지금의 밤섬은 시간이 지나며 스스로 복원된 것이다. 사람이 살던 밤섬의 마을이 지금도 남아 관광지가 됐더라면 어땠을까. 한강개발사업으로 셀 수 없는 경제적 가치가 사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물은 줄어들고 뻘은 쌓이고 신곡보와 잠실보는 한강 하구 모습도 바꿔 놓았다. 강은 하류로 갈수록 수위가 깊고 강물이 많아야 한다. 조석간만의 운동 속에서 바닷물과 강물이 원활히 섞여야 한다. 한강 하구인 김포시 하성면 전류리포구에서 어업을 하는 백성덕(55) 김포어촌계장은 “신곡보가 없을 땐 여름 홍수 때 쌓인 뻘들이 다 쓸려가곤 했다. 신곡보가 생긴 이후로는 보 바로 아래부터 차례로 뻘이 메워져서 지금은 강화도 앞바다까지 온통 뻘이다. 하구는 사실상 강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라고 했다. 신곡보가 상류의 물만 가둔 게 아니라 밀물의 흐름도 끊어놔 강물과 바닷물이 모두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이런 한강의 다양한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신곡보 철거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의 단절은 오염을 불러왔다. 지난 6월30일 잠실보 하류인 잠실대교~행주대교 구간에 조류경보가 발령됐다. 한강 서울 구간에 조류경보제가 시행된 2000년 이후 녹조경보가 발령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녹조경보가 발령되면서 한강의 지천 중 하나인 굴포천 인근 물고기들이 집단 폐사했다. 이달 18일엔 한강 전 구간에 녹조주의보가 발령됐다. 녹조가 발생한 데에는 여러 오염원과 적은 강수량 등의 원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수중보가 한강 유속을 느리게 한 것이 중요한 원인으로 제기된다. 실제 잠실보 하류에 녹조경보가 발령됐던 지난 6월말 신곡보 하류엔 녹조가 발생하지 않았다. 신곡보가 서울시내에서 강으로 유입된 오염물질을 서해로 흘러가는 것을 막아 녹조에 영양분을 제공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신곡보 하류로는 녹조가 번지지 않지만 상류로 거슬러 번지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물이 흐르면 녹조가 생길 수 없지만 흐르지 않는 물에 한번 자리잡은 녹조는 해마다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지난해 이후 한강의 유량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식수 등을 공급하기 위해 초당 124t의 물을 하류로 내려보내게 돼 있는 팔당댐은 지난 6월 중순 이후 방류량이 80t 안팎으로 떨어져 있다. 가뭄의 영향도 있고 팽창한 수도권에서 끌어쓰는 용수가 늘어난 탓도 있다. 상류에서 충분한 양의 물이 공급되지 못하면 한강에선 앞으로 여름마다 녹조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 잠실보의 상류와 하류 구간의 수질은 큰 차이가 있다. 대한하천학회의 ‘신곡수중보 철거 영향분석’ 보고서를 보면, 잠실보 상류의 구의(광진교) 지점과 잠실(잠실대교) 지점, 잠실보 하류인 뚝도(성수대교) 지점의 최근 20년간 연평균 수질을 비교한 결과 잠실보 하류지역이 상류보다 전 항목에서 수질이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 역시 잠실보 상류가 하류에 견줘 기준 등급이 높게 나타나며 대부분 좋은 등급 이상을 보였다. 템스강에 나타난 북방병코고래 신곡보를 철거하면 한강으로 거슬러 온 상괭이가 건강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한강에 대형 고래가 헤엄쳐 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06년 1월 영국 런던 템스강에 고래가 출현한 사건이 있었다. 길이 약 5.8m에 무게 7t가량인 ‘북방병코고래’였다. 1913년 이후 처음으로 템스강에 나타난 고래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과 런던교 등 런던의 명소를 배경으로 헤엄쳐 다녔다. 썰물이 되자 수위가 낮아졌고 길을 잃은 고래는 강가에 여러번 좌초됐다. 정부는 결국 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고 집과 일터를 빠져나온 런던 시민 수천명이 템스강가로 몰려들었다.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고래는 바지선에 실려 바다를 향해 나아갔지만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고래는 런던 시민들에게 템스강과 자신들이 자연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결국 배 위에서 세상을 떠났다. 현재 이 고래의 골격은 영국 자연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한강은 과거의 한강이 아니다. 고래가 올라오고 백사장이 펼쳐지고 강수욕을 하던 곳이었다. 한강은 지금 신곡보와 잠실보 장벽에 둘러싸여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 한강 하구에서 어업을 하는 한 어부는 “이곳에선 철갑상어나 황복어 같은 물고기들이 잡힌다. 몸길이 1m가 넘는 고래도 종종 나타난다”고 했다. 상괭이들은 지금도 신곡보 하류까지 헤엄쳐 들어왔다 다시 바다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를 없애고 한강의 자연성을 회복하는 일은 서울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템스강에서 고래를 만난 런던 시민들이 기뻐하고 흥분하고 안타까워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즐거울 수 있을까. 박기용 남종영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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