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미국의 비교심리학자 고든 갤럽 박사의 침팬지 연구실. 침팬지 네 마리에게 거울을 가져다주었다. 실험 이틀째가 되자 침팬지들은 거울 속 낯선 이가 자신임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이빨에 낀 먹이찌꺼기를 찾아보고, 입으로 거품을 만들며 장난쳤다. 생전 거울을 접한 적도, 자신의 모습을 본 적도 없는 동물들이었다.
동물의 마음을 알아보는 오랑우탄 거울실험이 다음달 열린다. 동물보호운동의 확산과 이른바 ‘비인간인격체’ 담론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거울실험은 세계적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으며, 과학적 조건을 맞추어 정식 실험을 벌이는 것은 국내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약 2~4주 동안 진행되는 거울실험은 한겨레신문사의 주도로 국립생태원, 서울대공원이 함께하고,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자유연대’가 실험 과정을 모니터링한다. 또한 거울실험 과정을 다룬 단편 다큐멘터리도 제작된다. 시민들은
‘펀딩21’(funding21.com)에서 후원금을 통해 실험에 참여할 수 있으며, 다큐멘터리 제작자의 일원으로 엔딩크레딧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비인간인격체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아니지만(비인간), 인간이 독보적으로 가져왔던 자의식, 성격, 태도 등의 내면세계(인격체·personhood)를 가졌다는 주장이다. 최근 사회운동과 일부 학계를 중심으로 이 개념에 주목하면서 거울실험을 통해 자의식이 증명된 동물만큼은 동물실험이나 동물쇼 동원 등의 착취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다음달 11일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오랑우탄 보람, 보석, 보라가 거울 앞에 서게 되며, 코끼리에 대한 거울실험도 동물 안전 등 실험 조건이 충족되면 뒤이어 진행될 예정이다. 실험 준비 및 진행 과정은 <한겨레> 토요판과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인 ‘펀딩21’을 통해 게재된다. 실험에 참여하는 영장류학자 김예나 국립생태원 연구원은 14일 “동물권이라는 주제가 과학이라는 틀을 통해 좀더 심층적으로 논의될 수 있도록 연구를 하겠다”고 밝혔다.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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