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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어두운 새벽 텐트를 흔들던 침입자의 정체는…

등록 2016-07-11 09:35수정 2016-07-11 09:53

세실의 전설

하루 70㎞ 달려도 아무도 없는
사자 관찰은 권태로운 일
그때 좁은 텐트가 흔들렸다

“개코원숭이… 아니면 하이에나?”
텐트 문 열고 나간 뒤 깨달음
새끼 사자들의 눈이 반짝
죽은 얼룩말의 사체가 사자들을 끌어모았다. 사자가 고개를 돌렸을 때, 방아쇠를 당겨 마취제 묻힌 화살을 명중시켜야 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죽은 얼룩말의 사체가 사자들을 끌어모았다. 사자가 고개를 돌렸을 때, 방아쇠를 당겨 마취제 묻힌 화살을 명중시켜야 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짐바브웨의 야생 전문가들은 길고도 자랑스러운 야생보전의 역사를 가졌다. 토를 달 사람도 있겠지만 1960년대와 70년대 ‘사냥감’(game)을 관리하는 노하우만은 세계 최고였다. 사냥감이라는 뜻의 ‘게임’은 식민지 시대 사냥꾼의 시각이 짙게 밴 단어다. 우리가 ‘야생’이라고 부르는 것도 1960년대 이후 많은 게 바뀌었다. 그리고 오늘날 짐바브웨는 토지와 자원의 소유권을 두고 충돌하는 땅이 되었다.

1999년 황게국립공원에서 ‘황게 사자 연구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도 국립공원 경계 밖의 사유지에서 이뤄지는 사자 사냥 때문이었다. 당시 사자 개체수는 성체만 270마리로 추정됐는데, 동시에 과도한 사냥을 보여주는 정황도 있었다. 새끼들의 성별을 살펴보면 수컷이 지나치게 많았다. 건강하게 성체로 자라나는 사자는 아주 적었다. 또한 전체 사자 개체수는 조금씩 줄어갔다. 이런 현상은 국립공원 경계 근처에서 이뤄지는 사자 사냥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체계적인 관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야생보전연구팀(와일드크루)이 황게국립공원에 와서 사자 목에 지피에스(GPS) 목걸이를 달기 시작한 이유다.

“무슨 동물의 코 같은데”

황게 사자 연구 프로젝트에 몸담은 지 6년이 지났다. 덕분에 나는 매서운 눈과 예민한 몸을 갖추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초원의 한가운데 허술한 텐트에서 잠을 청하고 야생 사자를 쫓아다니며 고장난 지피에스 목걸이를 교체하는 일은 권태로움과 단순함으로 가득 찬 삶의 정반대에 있었다. 지금도 ‘동물 탐사’ 얘기만 들어도 오싹한 기운이 내 몸을 통과한다.

사자는 야행성이고 위장을 잘해서 발견하기 매우 힘든 동물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옛날에도 그랬듯 지금도 사자를 찾아 개체수를 파악한다. 랜드로버를 타고 운전사가 미리 정해진 경로를 따라 운전하면, 앞자리에 앉은 연구원은 땅바닥에 눈을 대고 혹시 사자 흔적이 있는지 살핀다. 사자 추적은 보통 해 뜰 녘에 한다. 왜냐하면 태양광의 입사각 때문에 도로에 찍힌 사자의 발자국이 이 시간에 가장 잘 보이기 때문이다. 뒷자리의 연구원은 이때 나오는 모든 데이터를 기록한다. 사자는 물론 다른 동물(사자의 사냥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종을 기록한다)과 지피에스 좌표, 차량의 이동 거리와 경로를 그려 나중에 지도화할 수 있도록 한다. 어떤 탐사는 이동거리가 70㎞에 이르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시속 40㎞로 지루한 여행을 할 때도 있다. 일반인들은 오지의 야생을 탐험하는 값진 기회라고 생각하겠지만, 하루 종일 지루하게 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바로 옆에 사자가 지나갔는지 모를 때도 많다.

재미있었던 일 하나가 기억난다. 짐바브웨에 온 새 여자친구 로리와 나는 황게국립공원에서 조그만 2인용 텐트에서 캠핑을 하며 사자를 관찰하고 있었다. 매일 밤 텐트에서 밤을 보내고 아침에는 랜드로버를 몰고 발자국을 추적했다. 아프리카의 야생 상식을 잘 몰랐던 로리는 어느 날 밤 가죽신발을 밖에 두고 잠을 자러 텐트에 기어들어왔다. 나는 굶주린 하이에나가 밤중에 가져갈 수도 있으니 신발을 가져오라고 했지만, 로리는 피곤했던 것 같다. “괜찮을 거야.” 로리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들어와 쓰러졌고, 얼마 안 돼 잠에 빠져들었다.

텐트 바깥은 사자 발자국으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텐트 바깥은 사자 발자국으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새벽 두 시가 지났을까. 로리가 큰 소리를 치는 바람에 놀라 깨어났다. 로리는 앉아서 텐트 한구석을 주먹으로 치고 있었다. 놀라 일어난 나의 귀에 ‘두드득’ 하고 흙을 헤치며 지나가는 무거운 발자국 소리가 꽂혔다. 멍한 순간이 이어졌다.

“그게 뭐였어?”

“무슨 동물의 코 같은데. 개코원숭이 아니면… 하이에나?”

개코원숭이라면 이렇게 어두운 새벽 시간에는 자고 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하이에나라고 하기엔 발자국 소리가 너무 무거웠다. 늦었지만 텐트의 문을 열고 나가고 나서야 개코원숭이도 하이에나도 아니라는 생각이 났다. 하이에나가 침입한 흔적이 있는지 살펴보는데, 저만치 어둠 속에서 수컷 새끼 사자 두 마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 텐트에서 불과 몇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리고 저쪽에는 새끼 사자 한 마리가 더 보였고, 이윽고 훨씬 큰 어른 사자가 (새끼들을 데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날 우리가 새로운 ‘사자 에티켓’을 배웠음은 물론이다.

사자를 향하던 화살은…

사자 발자국을 쫓고 사자 코를 때리는 ‘지루한 작업’을 참을성 있게 수행한 끝에 나는 결국 동물 약품 사용 자격을 부여하는 코스에 등록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아는 한 짐바브웨는 나처럼 수의사가 아닌 사람에게도 야생동물에 마취제를 쏴서 쓰러뜨릴 수 있도록 허가하는 유일한 나라다. 이러한 자격은 짐바브웨 남동부에서 열리는 열흘간의 집중교육과정을 이수하면 딸 수 있었다. 이 교육에서 나는 헬리콥터에서 총으로 다트(가늘고 짧은 화살) 쏘는 법을 배웠다. 코뿔소와 버펄로를 추적해 다트로 쓰러뜨리고 임팔라를 그물로 잡았다. 구두시험과 필기시험 두 번의 시험을 통과해야 마취제를 소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말하자면 코끼리를 쓰러뜨릴 수 있는 마취제는 일반적인 마취제보다 훨씬 더 위험하기 때문에 특별 자격이 필요한 것이다. 황게 사자를 연구하려면 나는 이 자격을 취득해야 했고, 2008년 과정에 들어간 나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헬리콥터를 타고 야생동물에게 마취제를 쏘는 연습을 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헬리콥터를 타고 야생동물에게 마취제를 쏘는 연습을 했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처음에는 정말로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남들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아내의 뱃속에는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내 얼굴은 활기로 가득 찼고 내딛는 발자국마다 봄을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아침, 처음으로 사자에게 다트를 쏠 기회가 생겼다. 그날 저녁 암사자 한 마리를 잡는 것이었다. 나무 밑에 죽은 얼룩말 한 마리가 사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했다. 나는 자신이 있었다. 황게에서 열번도 넘게 이런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학생들이 탄 8대의 차량이 나를 둘러싸고 지켜보고 있었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았다. 마취제를 묻힌 화살(다트)은 직선을 그리며 암사자의 목표 부위에 꽂혔다. 예상대로 화살을 맞은 사자는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통 마취제가 온몸에 퍼지려면 대략 20분 정도 걸렸다. 우리는 암사자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고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10분 정도 돌아다니던 암사자가 다시 저벅저벅 얼룩말 사체로 돌아오는 것 아닌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이쯤이면 마취제의 마술이 암사자를 사로잡아야 했다. 숨을 죽이고 망원경으로 바라보는데, 화살 마취제가 제 기능을 못한 것 같았다. 사자는 생생했다!

나는 당황했다!

나는 새 화살을 총에 장전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손이 덜덜덜 떨렸다. 얼룩말을 다 먹어치우고 떠나기 전까지 사자가 마취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이번엔 암사자의 어깨를 조준했다. 그러나 너무 초조했던 나머지 가장 중요한 규칙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 세계의 제일 법칙은 나를 바라보던 사자가 고개를 돌리기 전까지 절대 총을 쏴서는 안 됐다. 사자의 반사신경은 매우 빨라서 화살이 오는 걸 보고 슬쩍 피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마취제 화살을 맞은 암사자(아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죽은 얼룩말을 먹으러 돌아왔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마취제 화살을 맞은 암사자(아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죽은 얼룩말을 먹으러 돌아왔다. 브렌트 스타펠캄프 제공
어쨌든 나는 너무 일찍 방아쇠를 당겼고 사자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밝은 핑크빛 화살을 목격하고 말았다. 암사자를 향해 날아가는 화살의 궤적과 사자가 슬쩍 몸을 숙이는 장면을 80개의 눈(그 암사자만 제외하고!)이 지켜봤다. 사자를 쑥 넘어간 화살은 죽은 얼룩말의 엉덩이에 꽂혔다. 얼룩말이 표적이었다면 ‘나이스 샷’이었겠지만, 나는 지금도 내 뒤에서 수군거리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시험을 마치고 과정을 무사히 통과했다. 이제 세실과 제리코 등 황게국립공원의 사자를 쫓기만 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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