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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경

뉴트리아, 넌 누구쥐?…‘괴물 쥐’ 오명부터 ‘웅담 성분’ 발견까지

등록 2017-02-02 11:06수정 2017-02-02 11:48

[뉴스AS] 뉴트리아의 모든 것
2014년 10월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 한쪽에 출석한 뉴트리아.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의 보좌관이 넣어준 포도 몇 개가 놓여 있다. 국회 환노위 제공
2014년 10월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 한쪽에 출석한 뉴트리아.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의 보좌관이 넣어준 포도 몇 개가 놓여 있다. 국회 환노위 제공

생태계에 천적이 없었던 뉴트리아가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31일 종합편성채널 〈티브이조선〉(TV조선)은 큰 몸집과 강한 번식력으로 ‘괴물 쥐’라 불려왔던 뉴트리아의 담즙에서 웅담의 주성분인 우르데옥시콜산(UDCA)이 다량 함유됐다고 보도했다. 보도를 보면, “경상대 수의대 연성찬 교수팀이 뉴트리아 20마리의 담즙을 분석한 결과 곰보다 더 많은 UDCA 성분을 발견했다. 뉴트리아의 지방조직에서는 기능성 화장품 원료로 쓰일 수 있는 팔미틴산 등 지방산이 검출됐다”고 전했다.

그동안 뉴트리아는 낙동강 유역의 야생 최상위 포식자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대표적인 생태교란 종으로 꼽혀왔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은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뉴트리아를 잡아오면 한 마리당 2만원을 지급하는 ‘뉴트리아 광역수매제’를 시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뉴트리아가 ‘괴물 쥐’가 아닌 ‘웅담 쥐’로 밝혀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 땅에 들어온 지 벌써 30여년, 모피용·육용 가축으로 들어와 낙동강 유역의 무법자가 되기까지 뉴트리아에 대해 살펴봤다.

국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뉴트리아

뉴트리아의 원래 고향은 남아메리카다. 국내엔 1987년 육용·모피용으로 들어와 2011년엔 축산법상 가축에 포함됐다. 하지만 수요 부족으로 생산 농가들이 사육을 포기하면서 많은 수가 자연에 유출됐다. 최대 1m까지 성장하며 1년에 10마리 이상의 새끼를 낳는 뉴트리아는, 식욕까지 왕성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뉴트리아에 의한 농가 피해가 보도되기 시작했고, 2009년 6월 포유류 가운데 유일하게 생태교란종으로 지정됐다. 특히 가장 많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낙동강 일대에서 피해가 심해 경남 밀양시, 경남 김해시 등에선 마리당 포상금을 지급하는 ‘수매제도’를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본격적으로 뉴트리아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3년이다. 당시 한 종합편성채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뉴트리아를 두고 ‘사람의 손가락까지 절단될 정도의 강력한 앞니를 가졌다’며 주황색의 큰 앞니를 부각해 보도하며 화제가 됐었다. 그 뒤로 뉴트리아는 ‘괴물 쥐’로 불리며 포획의 대상이 되어 왔다.

2014년 10월엔 급기야 국회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당시 김용남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수상 생태계 파괴 실태와 뉴트리아의 확산 추세를 설명하며 뉴트리아 한 마리를 국감장으로 데려온 것이다. 이날 환노위 국감은 여야의 증인 협의 문제로 여러 차례 파행을 거듭해, 뉴트리아가 기다리는 동안 죽을까 봐 김 의원의 보좌관은 케이지에 포도를 넣어주며 전전긍긍하기도 했다. 이를 은수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새누리당의 기업 증인 거부로 환노위의 유일한 증인이 된 왕쥐”라며 이날의 상황을 자신의 트위터에 소개했다.

‘늪너구리’ ‘민물 물개’라 불리던 때도 있었다

최근엔 ‘괴물 쥐’라고 부르지만 처음에는 ‘물쥐’, ‘민물 물개’, ‘늪너구리’ 같은 귀여운 애칭으로도 불렸다. 뉴트리아(Nutria)는 원래 스페인어로 수달 또는 수달의 가죽을 뜻한다. 뉴트리아가 따뜻한 남쪽 고향을 떠나 한국에 오게 된 사연은 ‘모피코트의 인기’와 관련이 있다. 1980년대 초는 ‘큰손’ 장영자 씨의 3000만 원짜리 여우 모피코트가 화제가 되는 등 모피 옷이 한창 인기를 끌던 시기였다. 여우·밍크보다 저렴한 뉴트리아·너구리·사향쥐 등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1년 경향신문에 실린 뉴트리아 사육 광고.
1991년 경향신문에 실린 뉴트리아 사육 광고.
1990년대 초반 신문에는 ‘최고소득 뉴트리아 계약 사육’이란 제목의 사육 광고가 실리기도 했다. 광고는 뉴트리아가 “남미 원산 설치류에 속하는 최상급의 모피 동물(프랑스, 영국, 캐나다 등)로 각광을 받았고 고기와 꼬리, 이빨 모두 다양하게 이용되어 1석 2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00년대 최고의 힛트모피’라고 소개하며 뉴트리아 모피의 우수성을 선전하기도 했다.

열대동물인 뉴트리아는 이주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1985년 7월 프랑스를 통해 우리나라로 처음 건너온 ‘뉴트리아 선발대’ 100마리는 한반도에서 겨울을 두 차례 겪고 모두 죽었다. 당시 뉴트리아는 기온이 영상 5℃ 이하로 떨어지면 몸에 이상이 올 정도로 민감한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뉴트리아 선발대’가 폐사하고 2년이 지나서야 불가리아에서 60마리가 다시 들어왔다. 충남 서산의 한 농장에서 적응을 거친 뉴트리아는 번식에 성공해 1990년대 중반까지 2400마리로 늘어났다.

- 〈한겨레21〉 967호, ‘불쌍타 낙동강 괴물쥐의 운명’

뉴트리아가 현재도 남부에 주로 서식하는 것은 어린 새끼들이 낮은 기온을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정착했지만 그 뒤엔 ‘불청객’으로 전락했다. 사람 탓이 크다.

외래종을 들여오면서 활용 가능성을 꼼꼼히 살피지 못한 것이다. 뉴트리아 계약 사육이 전국적으로 유행하면서 2001년에는 15만 마리까지 늘었지만 사업 수익성은 좋지 못했다. 1마리당 20만~30만원이 넘었지만, 뉴트리아 고기를 합법적으로 유통할 법체계는 마땅히 없었다. 건강원 등에 건강식품 원료로 유통되기도 했지만 대중화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뉴트리아는 축산법에 따라 가축으로 분류됐지만, 축산물공처리법에는 가축으로 포함되지 않는 등 법체계도 엉망이었다. 뉴트리아를 합법적인 식품 원료로 쓰도록 한 건, 2003년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위생적인 도살 처리를 한 뒤 검사받는 대상을 정하는 ‘식품의 기준 및 규격’에 뉴트리아를 포함하면서부터였다.

- 〈한겨레21〉 967호, ‘불쌍타 낙동강 괴물쥐의 운명’

뉴트리아, 곰의 ‘슬픈 운명’ 따를까

뉴트리아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이제 ‘웅담 쥐’로 불리며 천덕꾸러기 신세에서는 벗어났지만, 웅담 채취를 위해 사육되었던 곰들의 운명을 되돌아보면 과연 뉴트리아들이 이를 기뻐할지는 의문이다.

31일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뉴트리아는 괴물 쥐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애초에 식용으로 데려왔다. 먹어봐서 아는데 고기가 맛있다. 육색은 돼지고기와 비슷한 연한 분홍이며 거의 모든 부위에 지방이 가늘고 촘촘하게 박혀있다. 육향은 아주 여리며 질감은 마냥 부드럽다”고 뉴트리아의 식감을 호평했다. 이어 “담즙만 쪽 빼먹고 고기는 버릴듯해 한마디 붙인다”고 덧붙였다. 그는 “야생 생태에서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사육장에서 본 뉴트리아는 전혀 공격적이지 않았다. 애완용으로 키워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순하였다. 하여간, 괴물 쥐라는 이름은 오명이다. 순하고 맛있는 쥐다”라고 강조했다.

곰, 뱀, 개구리, 거북이, 오소리, 밍크까지. 그동안 인간의 몸보신(補身)을 위해 희생된 야생동물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벌써 뉴트리아의 운명이 이들 야생동물의 뒤를 이을 거라 예상하는 글들이 넘쳐나고 있다. 누리꾼들은 “유해 종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학대를 당할지 걱정이다”, “동물의 입장에선 안 된 얘기지만, 한국이다 보니 이제 길러질 판”, “곰보다 많은 웅담 성분 검출, 뉴트리아 멸종이 예고되었다”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생태교란종으로 지정돼 ‘괴물 쥐’라 불려왔던 뉴트리아의 담즙에서 웅담의 주성분인 우르데옥시콜산(UDCA)이 다량 함유된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생태교란종으로 지정돼 ‘괴물 쥐’라 불려왔던 뉴트리아의 담즙에서 웅담의 주성분인 우르데옥시콜산(UDCA)이 다량 함유된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전진경 상임이사는 뉴트리아의 사육·무분별 포획 가능성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애초에 인간이 모피와 고기를 얻기 위해 뉴트리아를 들여왔다가 졸속행정으로 유기하며 생물유해종이 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며 “동물을 특정 성분을 위해 사육하는 것은 반드시 착취로 이어진다. 생태교란종이라고 해서 학대를 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쓰임새가 발견됐다고 동물을 착취하는 산업으로 이어지는 비극으로 이어져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루왁커피 생산을 위해 학대당하는 사향고양이와 모피·필수지방산을 채취당하는 밍크, 오소리 등에 대한 학대를 예로 들었다.

또 현재 시행중인 ‘뉴트리아 수매제’는 정부의 편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동물 포획과 보상금을 연결시키는 것은 국민 정서를 해치는 일이다. 뉴트리아는 인도적 포획하고 안락사를 시켜 점차 소멸시키는 것이 맞다. 전문인을 채용해 정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낙동강유역환경청 자연환경과 관계자는 보도가 나간 뒤 뉴트리아 판매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뉴트리아 사육과 포획·유통에 대해서 “사육은 허가를 받아야 한다. 현재까지 환경부에서 사육이나 유통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살아있는 상태로 뉴트리아를 거래하거나 보관 또는 사육하는 건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이 관계자는 또 “야생 뉴트리아 담즙을 그대로 복용해서는 안 된다. 식품이나 의약품으로 사용하려면 독성실험 등 임상시험이 필요하다. 아직 검증이 안 된 상태이므로 어떤 위해요소가 있을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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