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미래팀 김정수 선임기자가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회의실에서 열린 '한겨레-자연드림 공동 바디버든 줄이기 캠페인' 체험단 사례 발표회에 참석해 다른 체험 참가자의 체험 사례를 들으며 물을 마시고 있다. 텀블러에 물 마신 횟수를 표시하려고 끼운 고무줄이 보인다. 물을 많이 마실수록 몸속 유해물질이 잘 배출된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달 13일 오후, 은박지로 싸여 반짝거리는 보랭가방을 들고 서울 신길동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 회의실로 들어섰다. 회의실에선 <한겨레>와 아이쿱생협 자연드림이 기획한 ‘바디버든 줄이기 체험 프로젝트’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회가 막 시작되고 있었다.
바디버든은 우리 몸속에 있는 유해물질의 총량을 말한다. 전국에서 자원한 500명의 참가자들이 개인의 노력으로 2주 동안 이것을 어디까지 줄일 수 있는지 체험하게 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적이다. 나를 포함한 참가자들이 제출한 보랭가방 속에는 아침에 눈 소변을 담은 병이 들어 있었다. 평소 우리 몸이 얼마나 유해물질에 절어 있는지 알려줄 분석시료다.
프로젝트를 설계한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참가자들에게 바디버든을 줄이기 위해 2주 동안 햄과 소시지 등의 가공식품류와 육류, 포장·배달 음식, 통조림과 캔음료 등을 피하라고 했다. 처리·유통 과정에서 환경호르몬인 비스페놀 화합물이나 프탈레이트에 오염됐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식도 가급적 삼가라고 주문했다.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하는 것은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겨우 2주 동안이 아닌가. 문제는 외식이었다. 저녁은 집에 일찍 들어가 먹는다 해도 점심은 밖에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아내한테 도시락을 싸달라고 부탁할까 생각했지만, 싸준다 해도 남들 앞에서 혼자 도시락을 꺼내 놓고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불가피한 외식은 계속하는 대신 물을 많이 마시고 운동을 열심히 하기로 했다. 외식으로 몸속에 들어올지 모를 유해물질이 잘 배출되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음식과 관련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체험기간 종료 나흘 전 일요일 아내가 시골집에서 보내온 두릅을 초고추장과 함께 저녁상에 올렸을 때다. 체험기간에는 된장, 고추장 등 장류도 먹지 않기로 했었다. 어떤 경로로 들어갔는지 알 수 없으나 프탈레이트가 검출된 사례가 있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두릅과 초고추장의 향긋하고 새콤한 유혹에 넘어가 ‘장류 섭취 금지 계율’을 파계할 뻔했다. 외식을 피하려 저녁 약속은 잡지 않았지만 선약은 어쩔 수 없었다. 서울 마포의 유명 맛집에서 좋아하는 바싹불고기와 육회가 앞에 놓였을 때도 갈등을 겪었다.
생활화학제품 사용에 의한 바디버든 물질 노출을 막기 위해 체험 참가자들에게는 유해화학물질이 안 들어간 치약, 비누, 샴푸, 로션, 주방·세탁용 세제 등의 ‘바디버든 키트’가 무료로 제공됐다. 체험 3일차 밤 집 근처 자연드림 매장에서 키트를 받아 오며 체험기간 키트 속 제품 이외의 다른 생활화학제품은 쓰지 않고 지내기로 했다. 욕실 청소를 하면서 세정제를 한 번 뿌린 것과 아내가 세탁기에 평소 쓰던 세제를 몇번 넣은 것 말고는 이 목표는 거의 달성했다.
플라스틱과 일회용 용기 사용도 바디버든을 증가시킬 수 있다. 노동건강환경연구소는 참가자들에게 제품 표면의 7가지 재질 분류 표시를 잘 살펴, 3(PVC)·6(PS)으로 표시된 플라스틱 용기는 절대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제조 과정에 들어간 프탈레이트 등이 유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집 냉장고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플라스틱 용기는 다 괜찮은 것들인지 걱정됐다. 체험 4일차 일요일 저녁 냉장고를 수색하기로 했다. 평소 냉장고를 자신의 성역으로 주장해온 아내는 냉장고 속 청소를 겸해 하겠다는 제안에 마지못해 동의했다. 냉장고 칸칸마다 가득 차 있는 플라스틱 용기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동안 아내의 얼굴이 붉어진 순간이 여러 번 지나갔다. 하지만 다행히 사용하면 안 되는 소재는 없었다.
지난달 13일 서울 신길동 아이쿱소비자활동연합회에서 바디버든 줄이기 캠페인 담당 직원들이 체험 참가자들이 제출한 소변 시료를 분석기관에 보내기 위해 시험관에 옮기고 있다. 아이쿱생협 제공
나는 식사 뒤 입가심 말고는 맹물을 하루에 한 잔도 안 마시고도 갈증을 모르는 체질이다. 바디버든 물질을 잘 배출시키기 위해 350㎖ 텀블러에 물을 담아 다니며 하루에 6통씩 비운다는 목표를 세웠다. 몇병째인지 잊지 않으려고 노란 고무줄 6개를 텀블러에 감아놓고 한 통 비울 때마다 위쪽으로 밀어올려 표시하며 마셨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날도 많았지만, 그런 날에 마신 양도 내가 평소 마시던 양보다는 5~6배 많았다. 화장실을 자주 찾아야 하는 당연한 불편은 문제가 안 됐다. 소변이 묽어지면서 몸속 노폐물이 더 잘 배출되는 상쾌한 느낌으로 상쇄되고 남았기 때문이다. 체험기간이 끝난 뒤에도 고무줄 감긴 텀블러가 내 휴대품이 된 이유다.
유해물질이 잘 배출되도록 일주일에 세번 이상 땀이 날 정도의 운동을 하는 것은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권장사항일지 몰라도 외식을 계속하는 나에게는 필수사항이었다. 체험 6일차 되는 날 마침내 집 근처 헬스클럽에서 3개월 이용권을 끊었다. 그때부터 체험기간이 끝날 때까지 일요일 하루 빼고 매일 아침 러닝머신에 올라 땀을 흘렸다. 미루던 운동을 시작해 체험기간이 끝난 뒤에도 계속하는 것은 바디버든 줄이기 체험 참가로 얻은 가장 큰 소득일 듯하다.
감열지에 묻어 있을 비스페놀 화합물 노출을 피하기 위해 체험기간 중 편의점과 미용실에 갔을 때는 계산한 뒤 영수증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 부탁으로 퇴근길 들른 대형마트에서는 안 받을 도리가 없었다. 여러가지 물건이 제대로 계산됐는지 확인하고, 산 물건 가운데 교환이 필요할 경우를 고려해 챙겨야 했기 때문이다. 산업계의 도움과 제도적 개선 없이 개인 노력만으로는 바디버든 줄이기에 한계가 있음을 느껴야 했다.
지난 19일 마침내 2주간의 바디버든 줄이기 성적표가 나왔다. 노동건강환경연구소 분석팀이 체험 시작 직전과 직후 내가 제출한 소변 속의 환경성 페놀류 15종을 분석한 결과다. 성적은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다소 실망스러웠다. 계면활성제에 많이 사용되는 알킬페놀류 가운데 t-옥틸페놀이 92%, 감열지나 캔음료 등에 많이 사용되는 비스페놀류가 44~56% 감소하는 등 모두 8종이 줄어들고 4종은 아예 검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3종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방부제에 많이 쓰이는 파라벤류 가운데 프로필파라벤은 심지어 체험 전에는 검출한계 미만이어서 검출되지 않았는데 체험 후에 새로 검출됐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언제 어떻게 내 몸속에 들어간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의심 갈 만한 노출 경로는 떠오르지 않는다.
2주 동안 내 행동을 지켜보면서 나 못지 않게 분석 결과를 궁금해하게 된 아내에게 결과를 알리니 “당신, 집에서는 냉장고까지 뒤집으면서 남 귀찮게 하고는 밖에서 뭐 이상한 걸 먹은 게 아니냐”고 눈을 흘긴다. 그게 아닌데... 억울하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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