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메인소사이어티, 18일부터 충남 예산 개농장서 140여마리 구조
털과 오물 뒤엉긴 뜬장, 음식물쓰레기 밥에는 수십 마리 파리떼
다리 휜 개도 발견…강형욱 훈련사 “개들의 감정 표현 매우 낮다”
눈 주변 살이 처져 ‘체리 아이' 증상을 가지게 된 ‘엔젤'이 18일 아침 충남 예산군에 있는 한 개농장 우리 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 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동물 냄새와 오물 냄새가 뒤섞인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밥그릇에 담긴 음식물 찌꺼기와 그 곁에 쇠사슬로 된 목줄을 단 개들 몸 위에는 수십 마리의 검은 파리가 앉았다 날기를 반복했다. 밥그릇 주변으로 썩은 내도 나고, 비가 왔다 안 왔다 해서 그런지 진흙인지 흘러내린 오물인지를 밟을 때마다 숙숙 발이 들어갔다. 백여 마리의 개들이 녹슨 철창을 흔들면서 몸으로 짖는 소리는 너무 커서 옆 사람과의 대화가 어려울 정도였다.
18일 아침 7시30분 충청남도 예산의 한 식용견 농장, 사자만큼 큰 도사견부터 백구가 낳은 새끼 여러 마리까지 식용견으로 키워지고 있던 개들이 보였다. 투견용 개를 훈련하는 둥그런 케이지에는 덩치 큰 도사 믹스 1~3마리가 목에 쇠사슬을 차고 구석에 앉아있었다. 60살이라고 밝힌 농장 주인은 “큰 종이 있다. 강아지들도 다 자라면 커질 것”이라고 했다. 함께 간 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SI)의 김나라 캠페인 매니저는 “부업으로 투견하는 농장주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식용개들이 개농장 우리 안에 갇혀있다. 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700여평 되는 농장 안에는 갈라진 벽돌집 말고는 구석구석 녹슨 ‘뜬장’(공중에 떠 있는 철창)이 숨겨져 있었다. 사람들은 이미 모든 개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민수’라고 이름 붙여진 개는 몸이 크게 자라는 도사믹스지만 뜬장 안에서 크느라 다리가 휘었다. 같은 철창 안에서 다른 개에게 물려 온몸에 빨간 이빨 자국이 난 개는 눈꺼풀이 쳐졌는데 제대로 치료를 못 해 ‘체리아이’(빨간 눈)로 불렸다. 이 개의 이름은 ‘엔젤’이었다. 추운 나라에서 살았을 흰 털이 북슬북슬한 ‘시나트라’는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목줄 근처로 털이 손바닥만큼 빠져있었다. 마당 한가운데에 묶여있던 ‘맥스웰’이라는 도사견은 잘록한 허리 위로 등뼈 모양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마른 모습이었다.
뜬장은 안전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오갈 때마다 시끄럽게 짖는 개들이 들썩거리자 뜬장을 덮고 있던 슬레이트 지붕이 떨어질 정도였다. 뜬장 이곳저곳에 거미줄이 처져 있고 뜬장 아래로는 개털 뭉치와 오물이 엉겨 붙어있었다. 발이 빠지거나 균형을 잃지 않도록 뜬장 안에 있는 개들은 계속 균형을 잡고 있어야 했다. 농장 주인이 다가가자 개들은 한순간에 짖는 것을 멈췄고 몸동작이 작아졌다. 여름에 개들은 슬레이트 지붕이 흡수한 열기를 그대로 견뎌야 하고, 겨울에는 외풍을 그대로 맞아야 했다.
개농장 안 우리 바닥에 식용개 배설물과 개털이 뒤엉켜 있다. 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맥스웰'이 개농장 우리에서 풀려나와 켄넬 안에 들어가 있다. 이날 구조된 개 9마리는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SI) 활동가들의 도움을 받아 화물차로 인천공항 농림축산검역검사본부 화물검역소로 이동해 검역을 받은 뒤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이날은 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의 정기적인 개농장 전업 지원 후 사육 중인 개 구조활동의 첫날이었다. 휴메인소사이어티는 전업하길 원하는 개농장 주인에게 동물 관련한 사업을 제외하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비용을 지불하고, 개를 구조하고 있다. 미국 본부에서 온 4~5명의 구조팀은 이날부터 이 농장에 있는 개 140여 마리를 구조해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보낼 계획이다. 교육방송(EBS) ‘세상의 나쁜 개는 없다’에 출연 중인 강형욱 훈련사도 구조활동에 참여했다.
강씨는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함께하면서 “보이는 그대로 말도 안 되는 상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개들 감정 상태나 표현 정도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배만 부르면 행복한 상태로 비와 눈을 피할 수 있고 깨끗한 곳에서 잘 자랄 수 있는 걸 모른다. 아파트에서 키우는 반려견보다 헛짖음도 덜한 편인데 그건 지킬 가족이 없고, 바라는 게 없어서다. 마치 다 커서 컴퓨터를 가진 것처럼, 미국 가서 새 가족을 만나 사랑받는다면 그렇게 기뻐할 거다”라고 말했다.
이날 하루에만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이 구조한 개는 9마리다. 비행기 화물칸에 탈 수 있는 개들이 한정돼있기 때문에 나눠서 보낸다. 한 달 전부터 검역 준비를 마친 개들은 곧바로 인천공항 농림축산검역검사본부 화물검역소에서 검역을 바친 후 미국으로 간다. 휴메인소사이어티는 2015년부터 2년 반 동안 850여 마리의 식용견을 구조해 미국이나 영국으로 보냈다. 개들은 새 가족을 만났거나 만날 예정이다.
2015년 9월 환경부가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전국 개농장은 1만7059개, 사육되는 개 숫자는 약 200만 마리였다. 농장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은 충북(1만593개)이었고 이어 전남(3261개), 경기(988개), 경북(727개), 충남(484개), 전북(339개) 등 순이었다. 특별시와 광역시는 인천이 190개로 가장 많았고, 울산(34개), 세종(17개), 대전(16개), 광주(13개), 대구(12개), 부산(9개), 서울(2개) 등 순이었다.
글·영상/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