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울창한 숲.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감에 따라 식물들이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줄 것이라는 가정이 틀릴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가 보고돼 주목된다.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식물은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많을수록 잘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미래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기후 모델들은 식물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최근 식물이 예상하는 만큼 온실가스를 많이 제거해주지 못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가 보고돼 관심을 끈다. 인간이 대기 속으로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3분의1 가량은 식물에 의해 제거된다고 알려져 있다. 만약 연구 결과대로라면 온난화가 지금까지 예상보다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미국 미네소타대학 연구팀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데 따른 식물의 변화를 1998년부터 장기간 추적해 이런 결론을 얻었다. 연구팀이 88개 식물 실험구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보다 180ppm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 환경을 20년 동안 유지하면서 변화를 조사해봤더니, 식물이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흡수하면서 빨리 성장하는 매커니즘이 대부분의 식물에서 12년이 지나면 한계에 도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 20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렸다.
식물은 광합성 경로에 따라 크게 C3 식물과 C4 식물로 구분할 수 있다. C3는 광합성 초기 단계에 탄소원자 3개짜리 화합물을 만드는 식물이고, C4는 광합성 초기 단계에 탄소원자 4개로 구성된 화합물을 만드는 식물이다. 나무를 포함해 지구 식물의 90%를 차지하는 C3 식물은 건조지대에서 잘 자라는 옥수수나 사탕수수 등의 C4 식물에 비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에 더 민감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에 따라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계속 증가하게 되면 C3 식물이 이런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흡수할 것으로 예상됐다.
미네소타대 연구팀의 장기 실험 결과,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을 때 C3 식물이 C4 식물보다 잘 자라는 것은 예상대로였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실제 대기 상태보다 50% 높은 조건에서 C3 식물들은 대조군의 C3 식물보다 20% 가량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반면 이산화탄소 농도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C4 식물의 성장률은 이런 농도 변화에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12년이 경과하자 그 패턴은 반대로 뒤집어졌다. 실험 후반부 8년 동안에는 C4 식물이 24% 빠른 성장률을 보인 반면, 지구 식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C3 식물은 오히려 성장률이 2% 떨어진 것이다. 연구팀은 예상치 못했던 이런 결과가 토양 속 미생물에 의한 질소 공급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으나 아직 확실치는 않다. 확실한 것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올라갈수록 식물이 더욱 번성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더 많이 흡수해 줄 것이라는 가정도 이제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를 이끈 미네소타대학 산림자원학과의 피터 라이시 박사는 사이언스 매거진과 인터뷰에서 “우리 연구 결과는 증가하는 이산화탄소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생태계의 능력에 대해 우리가 지금 아는 것이 옳다고 확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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