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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07 14:50 수정 : 2019.02.28 16:42

[조천호의 파란하늘]
먼지기상 5천년전 갑골문에 등장
신라 때 우토, 조선 때 흙비 기록
현대엔 연무 스모그로 변질 개명
한국선 최근 미세먼지로 바뀌어
재해 대하는 태도는 잃지 말아야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우주를 떠도는 먼지들이 서로 뭉쳐 태양이 되었고 지구도 만들었다. 사람도 역시 우주에서 날아온 먼지로 이루어진 존재이므로 결국 다시 먼지가 되어 우주로 돌아갈 것이다. 어두운 방 창문으로 한 줄기 햇빛이 들어올 때, 비로소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먼지가 드러난다. 이처럼 하찮은 존재로 무시되는 이 작디작은 먼지도 우리 삶과 연결되어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장 오래된 먼지기상 현상의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3700~3200년 전에 번창했던 은나라의 유적에서 출토한 거북이 등딱지에 새겨진 갑골문에 있다. ‘매’(?·흙비)라는 문자다. ‘황사’라는 단어는 당나라 시대(618~907년)에 쓰인 <남사>에 “천우황사”(天雨黃沙·하늘에서 황사가 분다)라는 문장에서 처음 등장한다.

중국삼천년기상기록총집(中國三千年氣象記錄總集), 장덕이(張?二), 2013, 강소교육출판사(江蘇敎育出版社)
우리나라에서 먼지기상 현상이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서기 174년이다. 신라 아달라 이사금 때로 삼국사기에 ‘우토’(雨土)라고 적혀 있다. 당시 사람들은 화가 난 신이 비와 눈 대신에 흙을 내렸다고 믿었다. 원래 ‘우’(雨)는 위에서 아래로 무엇인가가 떨어지는 움직임을 뜻하므로 ‘흙가루가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져 내린다’는 뜻이다. 영어로도 같은 의미인 ‘dustfall’(흙내림, 흙비)이다.

서운관지(書雲觀志), 1818
우리나라에서 ‘황사’(黃砂)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이다. 1915년에 황사라는 용어가 일본인에 의해 경성측후소의 기상관측일지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한반도에 떨어지는 황사는 ‘모래알’처럼 크지 않고 모래보다 작은 흙먼지이다. 우리 선조가 과학적으로 묘사한 ‘흙비’는 최근까지도 시골에 사시는 어르신들 사이에서 사용되었다. 최근에 흙비는 황사가 섞인 비라고 잘못 알려지기도 하였다. 원래 우리말인 ‘흙비’는 광복 이후 70여년이 지나도록 되찾지 못하고 황사란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역사기록에 남아 있는 우리나라 월별 ‘흙비’ 일수. 봄철에 집중되는 오늘날의 황사 관측과 거의 일치한다. (전영신·조희구 등, Bulletin of American Meteorology Society, 2008)
한편 <조선왕조실록>에는 산불에 의한 연무(煙霧) 현상이 기록되어 있다. 숙종 28년(1702년)에 “조금 저문 후에 연무의 기운이 갑자기 북서쪽에서 몰려오면서 천지가 어두워지더니 재가 마치 눈처럼 흩어져 내려 한 치(3cm) 남짓이나 쌓였는데 주워보니 모두 나무껍질이 타고 남은 것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연무는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보이지만, 대기 중의 수증기 때문에 생기는 안개와는 달리, 아주 작은 먼지가 원인이다. 기상청 관측 기록에 의하면, 봄철에 집중되는 황사와 달리 계절과 관계없이 연무가 발생한다.

흙비에는 칼슘, 마그네슘 등 자연 기원의 토양 성분이 더 많지만 오늘날 연무에는 황산염, 질산염 등 인간 활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물질이 많다. 연무를 나타낼 때 기상학적으로 헤이즈(haze), 그리고 환경학적으로 스모그(SMOG)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스모그는 매연(SMoke)과 안개(fOG)의 합성어로 연무(煙霧)와 같은 뜻이다.

영국은 19세기 세계 최악의 스모그 발생국이었다. 런던 스모그는 공장에서 석탄 연소로 배출된 오염물질이 축적돼 발생한다. 로스앤젤레스 스모그는 자동차 배기가스가 햇빛을 받아 만들어진 지상 오존이 원인이다.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문제가 되는 오염먼지는 국제 용어로 차이나 스모그 또는 베이징 스모그라 한다. 이는 공장 석탄 연소와 자동차 배기가스 모두가 원인으로 발생하는 스모그이다.

구글 트렌드에서 산출한 2004년 1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전 세계와 우리나라에서 ‘연무’, ‘스모그’와 ‘미세먼지’의 검색 횟수. 가운데 그림은 우리나라 2012년의 경우이다. 최대 검색 횟수를 100으로 놓아 상대적인 값을 보여준다. 전 세계 사람들은 ‘연무’ 또는 ‘스모그’로 검색하는 반면 ‘미세먼지’로 거의 검색하지 않는다. 2012년에는 우리나라도 전 세계의 경향처럼 ‘연무’, ‘스모그’, ‘미세먼지’ 순으로 검색했다 (2012년 이전도 마찬가지임). 그러나 2014년 이후 우리나라 사람은 대부분 ‘미세먼지’로 검색하며 봄철에 검색 횟수가 뚜렷하게 증가한다.
최근 들어 원래부터 사용해왔던 연무나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국제 용어인 스모그는 사용하지 않고 우리 정부는 ‘미세먼지’라고 부르고 있다. 원래 미세먼지는 학술적으로 미세한 입자성 물질(Particulate Matter)을 의미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2014년 이후 환경부에서 미세먼지를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언론에서 그대로 언급했고 시민에게 그렇게 알려졌다.

오염먼지는 배출원에서 사시사철 항상 발생한다. 그러나 그 피해 정도는 항상 다르다. 어제와 오늘 배출되는 오염먼지량은 거의 같지만, 매일매일 대기 중 오염먼지 농도는 날씨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래 연무 관측은 기상청 고유 업무이다. 조선시대 관상감에서 시작하여 기상청에서 연무 관측을 지속해왔다. 특히 황사를 분석하고 예측할 때 연무 상황도 잘 알아야 한다. 환경부는 미세먼지라는 용어로 그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업무를 하는 것처럼 출발한 것이다. 스스로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거나 그게 아니면 무시했다. 2014년 이후 언론에서 연무에 관한 언급이 거의 사라졌다.

삼국시대, 고려와 조선에서는 흙비가 발생하면, 하늘의 경고와 징벌로 받아들였다. 왕은 부덕한 까닭이라 여겨 반찬 가짓수도 줄이고 술을 삼가는 등 몸가짐을 바로 하였다. 혹시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 옥살이하고 있지나 않은지 조사하여 석방하기도 했다. 이러한 우리 전통은 일제강점기에 사라졌다.

우리의 비참한 역사나 무심함으로 스스로 잃어버린, 지속하고 축적해야 했을 역사와 가치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흙비와 연무이며 자연재해를 대하는 겸허한 마음과 진지한 태도다.

대기과학자 cch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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