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08 18:49
수정 : 2019.05.08 19:15
|
‘광릉요강꽃 지킴이’로 불리는 장윤일씨가 강원도 화천군 비수구미 마을의 자택 뒷산에 복원해 놓은 군락지에 지난 7일 광릉요강꽃이 만개했다. 사진 박수혁 기자
|
[짬] 화천 비수구미 마을 장윤일씨
|
‘광릉요강꽃 지킴이’로 불리는 장윤일씨가 강원도 화천군 비수구미 마을의 자택 뒷산에 복원해 놓은 군락지에 지난 7일 광릉요강꽃이 만개했다. 사진 박수혁 기자
|
“30여년 동안 남몰래 키워온 짝사랑, 광릉요강꽃 잔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지난 7일 산천어축제로 유명한 최전방 산골 마을인 강원도 화천군을 지나 평화의댐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20여분 동안 힘겹게 해산령을 오르면 ‘해산터널’이 나온다. 터널 왼쪽에 ‘최북단 최고봉 최장터널’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해산터널을 지나 ‘평화의 댐까지 아흔아홉 굽잇길’을 다시 20여분 내려갔다. 길 끝에 낙석·산사태, 추락 위험 등을 경고하는 ‘위험도로 통행제한’이라는 안내문이 나타났다. 안내문을 지나 먼지를 내며 20여분 비포장길을 달리자 국내 최대 광릉요강꽃 군락지인 동촌2리 비수구미 마을이 나왔다.
오지 중의 오지인 이곳에서 ‘광릉요강꽃 지킴이’로 불리는 장윤일(76)씨를 만났다.
1988년 평화의댐 현장에서 첫 발견
“훼손 아까워 20포기 옮겨와 가꿔”
전국 500개체 자생하는 멸종위기종
노하우 쌓아 1500여개체 복원 성공
복주머니란식물원 설립추진위 결성
11일 ‘광릉요강꽃 잔치’ 군락지 공개
|
꽃모양이 독특해 관상용으로 남벌당하는 광릉요강꽃은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1급 희귀식물이다.
|
장씨가 사는 집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그 귀하다는 광릉요강꽃 몇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장씨는 “여긴 인큐베이터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어린 꽃을 키워 뒷산에 옮겨 심는다. 지붕에는 넝쿨을 심어 적당히 빛을 차단하고, 바닥 흙 밑에는 돌멩이들을 배치해 뿌리를 시원하게 해 줬다. 다른 곳에서 키우면 다 죽는다. 30년 동안 광릉요강꽃을 키워온 나만의 노하우”라고 설명하며 활짝 웃었다.
“여기는 맛보기에 불과해. 빨리 와~!” 장씨의 재촉을 따라 제법 경사진 뒷산에 올랐다. 휴전선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가시 박힌 철책 문을 3개나 지나자 1322㎡ 면적의 울타리 안에 광릉요강꽃 군락이 모습을 드러냈다.
“복주머니난(개불알꽃) 1500여 개체까지 더하면 여기에만 3000여 개체가 살고 있다. 이런 귀한 구경은 어디 가도 할 수 없다”며 옆에 있던 노영대 광릉요강꽃보존회장이 거들었다.
노 회장은 “여기선 흔히 볼 수 있지만 광릉요강꽃은 사실 멸종위기종 1급 식물이다. 2015년 국립생물자원관의 조사 결과를 보면, 광릉요강꽃은 덕유산 등 일부에 자생할 뿐 전국적으로 500여개 개체에 불과하다. 비수구미가 국내 최대 군락지로 불리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1931년 경기도 광릉에서 처음 발견된 광릉요강꽃은 주머니처럼 생긴 입술 모양의 꽃부리가 요강을 닮아서 이름을 얻었다. 멸종 위기를 맞을 정도로 희귀한 광릉요강꽃이 장씨의 집 뒷산에서 이처럼 만개한 이유가 궁금했다. “1988년 평화의댐 공사 현장에서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 자생지가 훼손되는 것을 우연히 목격했어. 그냥 두면 죽을 것 같아서 20여 개체를 갖고 와 뒷산에 옮겨 심었지. 그땐 꽃 이름도 몰랐어.”
장씨가 광릉요강꽃과 첫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을 이어갔다. 그러다 우연히 2001년 화천을 방문한 노영대 회장을 만났다. 그런데 그는 장씨를 만류했다. 노 회장은 “국내의 유력 생태 전문기관에서도 광릉요강꽃 복원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해도 되지 않을 테니 괜히 건들지 말라고 충고했다. 나중에 개체수 증식에 성공했다는 장씨의 연락을 받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왔다가 깜짝 놀랐다”고 회상했다.
그뒤 두 사람은 더는 개인적으로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환경부와 산림청 등에 도움을 청했다. 지금은 울타리 등 군락지 관리 비용 일부를 보전받고 있다.
|
장윤일(오른쪽)씨와 언론인 출신 노영대(왼쪽) 광릉요강꽃보존회장은 최근 복주머니란식물원 설립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아 희귀식물 복원운동에 나서고 있다.
|
노 회장은 장씨가 광릉요강꽃 복원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순수한 애정 덕분이라고 평가한다. “장씨는 비록 식물학자도 아니고 전문적인 지식도 없는 농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애정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다. 꽃이 잘 자랄 수 있는 적절한 빛과 습도 등을 맞추기 위해 나무를 심고 또 자르고, 물지게를 지고 하루에도 몇번씩 오르내렸다”고 귀뜸했다. 장씨의 아들 복동(52)씨도 “‘맹모삼천지교’에 나오는 맹자의 어머니처럼, 광릉요강꽃이 잘 자랄 수 있는 터를 찾아 새벽같이 일어나 수십 수백 번이나 옮겨심기를 했다”라며 웃었다.
혼자 힘으로 멸종위기종 1급 식물 복원에 성공해 국내 최대 군락지를 만든 장씨의 소원은 광릉요강꽃과 털복주머니란 등 같은 부류인 복주머니란으로 특화된 ‘복주머니란 식물원’을 만드는 것이다. 장씨와 노 회장은 복주머니란식물원 설립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이를 위한 첫 디딤돌로 ‘광릉요강꽃 잔치’가 오는 11일 열린다. 잔치에선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 군락지를 일반에 공개하고 관련 사진과 동영상 전시회, 세미나 등도 진행한다.
장씨는 “비수구미에 복주머니란식물원을 설립하면 정부와 학계가 공동으로 광릉요강꽃을 포함한 복주머니란 식물을 제대로 연구하고 증식·복원·자원화하는 기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천/박수혁 기자
psh@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