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지역에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리고 강풍이 분 21일 오후 호남고속도로 곡성과 태인 구간이 통제됐다. 경찰이 광산 나들목에서 차량 진입을 막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추위·배고픔에 떤 운전자에 긴급 구호물품
광주 시간당 5.3cm 기상관측 이래 최대폭설
광주 시간당 5.3cm 기상관측 이래 최대폭설
“정말 징합니다. 징해.”
1938년 호남지역 기상관측 시작 이래 최대의 ‘눈 폭탄’을 맞은 21일 호남 등 서해안 지역은 차량 수천대가 고속도로에서 꼼짝 못하는 등 온통 눈 속에 갇혔다. 이날 광주의 경우 시간당 최고 5.3㎝, 평균 3~4㎝의 눈이 계속돼 단 12시간 동안 쌓인 눈으로는 최고를 기록했다.
?5c기름 떨어지고 휴게소는 만원=호남고속도로 하행선 장성 백양사휴게소에는 운전자 300여명이 21일 낮 12시부터 저녁 늦게까지 차를 멈춘 채 긴급대피했다. 그러나 이날 밤 10시까지 호남고속도로 하행선 장성 호남터널~백양사~못재 구간엔 1200여대가 고립됐다가 승용차는 대부분 상행선 등으로 빠져나가고 밤 11시까지 버스와 화물차 등 200여대가 남았다. 남은 버스 중에는 학생을 수송하는 관광버스 서너대도 포함됐다.
고립된 사람들은 밤이 깊어지면서 추위와 배고픔에 떨었으며, 일부 차량은 기름이 떨어지기도 했다.
백양사휴게소 임경미씨는 “낮 12시에 휴게소를 출발했던 운전자가 6시간 동안 고속도로 2㎞를 갔다가 되돌아와 저녁을 먹고 다시 출발했다”며 “일부 운전자는 아예 운전대를 잡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호고속 운전기사 최정열(43)씨는 이날 오전 9시35분 승객 15명을 태우고 서울을 출발해 광주로 가다가 폭설로 길이 막혀 오후 1시께 호남고속도로 하행선 백양사휴게소로 긴급대피해 휴게소에서 승객들과 함께 밤을 새웠다. 최씨는 “이런 눈은 평생 처음”이라며 “다행히 휴게소가 가까이 있었기 망정이지 오도가도 못하고 고속도로에 갇힐 뻔했다”고 말했다.
같은 회사 운전기사 승기주(57)씨는 “고속도로에서 갇히는 바람에 포클레인을 불러 눈을 치우고 체인을 연결해 밤 10시나 돼서야 겨우 빠져나왔다”며 “이 사이 젊은 승객들은 모두 걸어서 장성 쪽으로 갔고, 여자들은 지나가는 승용차편을 이용해 빠져나갔다”고 설명했다.
?5c빵 등 긴급구호 물품 전달=한국도로공사는 이날 저녁 8시까지 차 1200여대가 호남고속도로 백양사~장성 못재 구간에 고립되자 운전자들에게 긴급 구호 물품을 제공했다. 도로공사는 이날 빵 8000개와 음료수 6000병, 생수 3000병, 경유와 휘발유 1500ℓ, 부탄가스 160통을 마련해 급히 전달했다.
고립이 길어지자 한국도로공사 호남지역본부는 중앙분리대 여러군데를 긴급하게 터 하행선에서 갇힌 차들을 상행선으로 빼냈다. 차량 통제로 광주 요금소에서 호남터널까지 약 27㎞의 상행선 구간이 텅 빈 점을 이용해 꽉 막힌 상황을 푼 것이다.
도로공사 전주지사 등은 호남터널 주변 고립지역에 제설차 2대와 인력 40여명을 투입해 밤새 갓길 확보 작업에 나섰다.
?5c뒤늦은 고속도로 전면 통제=도로공사 호남지역본부는 21일 오후 3시부터 호남고속도로 하행선 전주~광주 구간을 전면 통제했다. 또 오후 5시20분부터 서해안고속도로 하행선 동군산 나들목을 차단했다. 하행선을 차단한 것은 전북 정읍지역에 눈이 너무 많이 내렸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구간에 있는 서전주와 내장산 등 6개 나들목의 차량 진입이 금지됐다.
그러나 이미 차 수천대가 고속도로에 진입한 상태여서 내리는 눈 속에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운전자들은 “폭설이 내릴 것이 예상됐는데도 왜 일찍 차량 통행을 막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도로공사가 뒤늦은 대응을 한 것으로 확인되면 무더기 소송 사태도 예상된다.
?5c제설작업 공무원 사고사=눈치우기 작업을 벌이던 공무원이 무너져내린 비닐하우스에 깔려 중태에 빠졌다가 숨졌다. 21일 오후 3시께 전북 부안군 상서면 농업기술센터 육묘농장의 하우스가 무너지면서 제설작업 중이던 공무원 이승희(48·6급)씨가 하우스 철제에 깔렸다. 이 사고로 다친 이씨는 인근 부안성모병원으로 긴급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밤 10시쯤 숨졌다. 이씨는 폭설로 인한 하우스 붕괴를 막기 위해 부안군 농업기술센터 직원 10여명과 함께 하우스에 구멍을 뚫고 눈을 빼내는 작업을 하던 도중 이런 변을 당했다.
또 광주·전남지역에 몰아친 초속 10m의 강풍에 이날 오전 11시께 전남 진도군 지산면 정아무개(58)씨의 43평 크기 조립식 가옥의 지붕과 벽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이 사고로 인근 대파밭에서 일하던 김아무개(65·여)씨가 날아온 합판에 머리를 다쳐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이 마을 주민 김아무개(48·여)씨 등 주민 3명도 차가 눈길에 미끄러져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전주 광주/박임근 정대하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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