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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28 19:23 수정 : 2019.06.28 23:00

지난 17일 박남춘 인천시장이 인천시청에서 ‘붉은 수돗물 피해 관련 조치·경과보고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 주민들에게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지난 17일 박남춘 인천시장이 인천시청에서 ‘붉은 수돗물 피해 관련 조치·경과보고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 주민들에게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적수(붉은 수돗물) 사태’가 인천에 이어 서울로 옮아오더니, 이제 평택 같은 곳으로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평택은 다행히 일시적 현상으로 확인됐지만, 언제 어디서 벌건 수돗물이 나올지 몰라 불안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대체 뭐가 문제이고, 어찌해야 하는 걸까요?

다들 오늘 드신 수돗물, 안녕하시던가요. <한겨레>에서 환경 분야를 맡고 있는 전국2팀 기자 박기용입니다. 거의 한 달을 끌고 있는 적수 사태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상황을 잘 모르는 분들은 이 문제가 노후관로 때문 아니냐 생각하실 수 있는데, 직접적인 원인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노후’의 기준이 없거든요.

지방공기업법에 회계 처리 때 쓰는 노후 기준이 있긴 합니다. 강관이나 주철관은 30년, 플라스틱인 피브이시(PVC)나 피이(PE)관은 20년이라 돼 있습니다. 한데 선진국은 이보다 훨씬 수명이 깁니다. 일본은 재질과 관계없이 40년(요코하마는 80년), 미국은 주철관(배수관) 75년, 영국·캐나다 100년입니다. 한국에서 20년인 플라스틱관 수명은 영국과 캐나다에서 80년으로 늘어납니다.

이래서 우리 기준이 “과학적 근거가 없는, 다분히 추측성”이란 비판이 있습니다. “국가적 낭비”란 지적도 있죠. 전국의 수도관이 20만9034㎞(2017년 기준)인데 이 중 6만8000㎞가 20년 이상, 2만9000㎞가 30년 이상 됐습니다. 20년을 기준으로 하면 거의 절반을 바꿔야 합니다. 막대한 비용, 공사로 인한 불편 감수 등을 따지면 노후관 교체는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라고 저는 봅니다.

게다가 이번에 수돗물을 붉게 만든 물때는 20년 미만인 관이나 부식방지 처리된 관에서도 나타납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10년 이하 수도관에서도 이물질이 5~30%까지 나온다는 통계가 있다”며 “(노후관을 타깃으로 삼을 게 아니라) 상수망의 종합적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라고 했습니다. 이번에 서울시가 애초 2022년까지였던 138㎞의 노후관 교체 시기를 730억원의 추경을 편성해 3년 당기기로 했는데, “다소 과한 조처”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옵니다.

그런데도 노후관 교체 시기를 앞당기는 강수를 두려는 이유는 신뢰 문제 때문입니다. 수돗물 생산은 민간의 진입이 금지된, 공공의 책임 영역입니다. 국민 생존에 필수적인 부분이니 믿을 수 있는 이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한국의 수돗물 수질은 세계 최상위 수준입니다. 서울의 경우 오세훈 전 시장 시절 환경단체들조차 불필요하다 반대했던 고도정수처리시설을 1조원을 들여 설치해놨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그럼에도 수돗물을 직접 마시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죠.

알려져 있듯, 한국은 세계 최상위 수준의 수돗물을 공급하면서도 수돗물 직접 음용률이 한 자릿수에 불과한 거의 유일한 나라입니다. 먹어도 충분히 괜찮은 물을 돈을 들여 만들어놓고도 시민들은 집집마다 정수기를 들여놓습니다. 생산·유통·소비 과정에서 환경에 부담을 주는 생수를, 그것도 휘발유보다 비싼 돈을 주고 사다 먹습니다. 이유는 간명합니다.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인 장재연 아주대 교수(예방의학)는 “수돗물은 행정에 대한 국민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영역이다. 음식을 같이 먹는 건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나타내는데 (시민들이 수돗물을 직접 음용하지 않는 건) 정부를 못 믿겠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민들 설득할 일이 지금도 까마득한데, 이번 적수 사태로 불신이 더 커졌으니 정말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관련 행정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염형철 수돗물시민네트워크 이사장은 적수 사태의 단기 재발방지책으로 전국적 긴급 점검, 관리 인력에 대한 교육과 매뉴얼 숙지, 사고 대응을 포함한 수돗물 관리 체계 정비 등을 꼽았습니다. 한마디로 관련 공무원들의 기강을 바로잡자는 것이죠. 인천 사태 때를 돌이켜보면, 초동 대처가 미흡했습니다. 우선 관련 공무원들이 초기에 발생한 공촌정수장 탁도계 고장을 한참 뒤에야 알아챘습니다. 탁도계는 물이 얼마나 맑은지를 측정하는 장치입니다. 또 통상 10시간 정도 걸리는 수계전환(관로 바꾸기)을 2~3시간 만에 끝내려고 밸브 개방 시간을 줄이는 대신 유속을 2배로 늘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송수관벽의 물때가 떨어져 벌건 수돗물이 가정까지 공급된 것입니다. 염 이사장은 “어느 시도에서나 상수도 분야는 한직으로 대우받고 자존감도 낮은 편”이라며 “(광역시도 단위나 국가 수준으로) 관련 행정을 통합해 규모의 경제를 일궈 공무원들의 전문성,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낡고 비효율적 요소를 덜고, 조직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게 하는 ‘행정의 혁신’이 시급히 필요해 보입니다.

박기용 전국2팀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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