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1 05:00
수정 : 2019.11.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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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제2공항백지화전국행동 회원들이 지난 7일 서울 세종로공원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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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국토부 ‘입지 적절성’ 공방
2공항 예정지 서귀포 성산 일대
철새도래 동부벨트 3~8㎞ 인근
환경정책연구원 “조류 충돌 우려”
국토부 “검증결과 무난”…본안 강행
국토부 평가에 연구원 “조사방법 잘못”
“조사범위 좁고 새 이동경로 등 무시”
‘반경 13㎞ 아닌 5㎞ 조사’ 고시 위반
예정지 주변 금지된 과수원 등 상당
공항 반대쪽 “철새 많을 때 조사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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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제2공항백지화전국행동 회원들이 지난 7일 서울 세종로공원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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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러시아 모스크바 주콥스키 공항에서 승무원과 승객 등 233명을 태운 항공기가 이륙 직후 활주로에서 1㎞ 떨어진 옥수수밭에 비상착륙했다. 엔진이 꺼지고 착륙장비가 접힌 상태여서 기체는 재비행이 불가능할 만큼 파괴됐다. 최소 27명이 다친 사고의 원인은 ‘조류 충돌’이었다. 갈매기 떼가 엔진에 빨려들어간 것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조류 충돌’ 위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하 연구원)이 최근 제주 2공항 사업 예정지에 대해 “조류 충돌 위험이 있어 입지로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낸 것이다. 연구원은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20일 환경부에 제출한 ‘제주 2공항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본안에 이런 의견을 냈고, 환경부는 지난달 30일 이 의견을 토대로 “보완하라”고 국토부에 요청했다.
국토부가 정한 예정지는 ‘서귀포 성산읍 온평·난산·고성·수산·신산리’ 일대다. 문제는 인근에 대규모 철새도래지가 있다는 것이다. 제주도는 우리나라를 오가는 철새들의 중간기착지다. 예정지에서 3~8㎞ 떨어진 성산읍 천미천(성남~남원 연안)과 오조리, 구좌읍 종달리·하도리는 제주의 ‘철새도래지 동부벨트’를 이룬다. 해마다 겨울에 30여종의 철새 3천~5천마리가 찾아오는 하도리는 특별보호구역이다. 계획대로라면 새떼가 출몰하는 곳에 공항이 들어서는 셈이다.
연구원이 지난 6월 국토부 평가서 초안을 검토한 의견을 보면 “생태보전 가치가 우수한 제주도의 주요 철새도래지들이 예정지 가까이 있으므로 (항공기-조류 충돌을 막기 위한) 국내외 안전규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환경부는 이때 보완을 요청했지만 국토부는 그대로 본안을 제출했다. 한국공항공사가 사용하는 방법(모델)으로 분석했더니 “조류 충돌 가능성이 적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연구원은 국토부가 사용한 방법이 문제라고 봤다. 이미 건설돼 운영 중인 공항에 적용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공항 내·외부 반경 5㎞ 이내의 조류 서식과 충돌 현황 등을 분석한 것인데, 제주 2공항은 아직 지어지지 않은 ‘미래 공항’이므로 이보다 더 넓은 범위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연구원은 주장한다. 연구원은 2003년 미국·캐나다 조류충돌위원회가 내놓은 ‘신규 공항 입지 평가를 위한 조류 충돌 위험성 평가 방법’을 예로 들었다. 이 모델을 적용하면 공항 예정지 평가에서 주변 조류 현황과 함께 조류 이동 경로, 예정지를 가로질러 이동할 가능성 등을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게다가 5㎞는 국토부가 정한 내부 고시에도 어긋난다. ‘조류 및 야생생물 충돌 위험 감소에 관한 기준’에는 공항에서 13㎞ 주변에 대해 조류와 야생동물을 유인할 토지 이용이나 농작물 경작을 금지하고 있다. 예정지 반경 13㎞ 안에는 철새도래지 말고도 과수원, 양돈장, 사냥금지구역, 양식장 등이 있다. 모두 ‘새를 유인할’ 시설이다.
2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쪽도 국토부 평가서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평가서 초안을 보면, 조류 현지 조사는 단 세차례(2017년 9월18~19일, 2018년 1월13~15일, 2월6~8일) 했다. 총 8일 동안 사업 예정지와 주변 철새도래지를 중심으로 했는데, 겨울 철새가 제주도에 도착하는 10월 초순~11월 중순과, 번식지로 북상하는 2월 말~4월 초순이 빠져 있다. 지난 6월부터 지난달까지 2공항 예정지에서 새를 관찰한 ‘환경을 지키는 성산주민모임’의 김광종(55·신산리)씨는 “지난 6~7월 거의 매일 천연기념물인 두견이 소리를 들었다. 긴꼬리딱새(멸종위기종)와 팔색조(천연기념물·멸종위기종)도 있었는데, 비전문가인 우리도 쉽게 접하는 새들이 평가서엔 ‘없다’고 돼 있다”고 말했다. 주민과 함께 예정지를 조사한 조류 전문가 주용기 전북대 연구원도 “제주도는 연안에 머물다 가는 새뿐 아니라 지나쳐 가는 새도 많다.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국토부는) 근본적인 입지 적정성 문제를 검토하기보다 (공항이 건설된 뒤) 운영할 때의 관리계획안을 수립한 것”이라며 “입지 타당성을 검토하는 전략환경영향평가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국토부가 환경영향평가를 충실히 하지 않은 채 사업 추진을 위해 승객 안전과도 관련된 문제를 눈감고 있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환경부의 요청에 대해 충실히 보완할 예정”이라며 “세부 대책 등은 실시설계 단계에서 진행 예정인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최예린 박기용 기자
floye@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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