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제주에 사는 한정희 푸른컵 대표가 푸른컵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푸른컵 제공
“제주 오는 분들은 공항을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공항을 통한다면 제로웨이스트립(zerowaste+trip)이 가능하다고 봤어요. 제주에서 마음에 위안을 얻고 치유받는 만큼, 제주를 해하지 않고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제로웨이스트립’을 꿈꾸는 한정희 푸른컵(43) 대표는 26일 “제주는 일회용품이 용납되지 않는 곳”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최근 제주 내 다회용컵 대여 업체 ‘푸른컵’을 창업했다. 6월 한 달 동안 제주공항 1층에 도착하면 푸른색 스테인리스 다회용컵을 빌릴 수 있다. 제주의 협재·함덕 바다를 연상시키는 푸른 색이라 회사 이름도 컵 이름도 ‘푸른컵’이다. 제주 카페 23곳 이상에서 일회용컵 대신 사용할 수 있다.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렌터카 컵홀더에 잘 맞는다. 스테인리스 텀블러는 2주만 쓰면 플라스틱컵을 사용할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량을 따라잡는다고 한다.
한 대표는 ‘과거’가 있다.
2011~15년 그린피스 해양캠페이너로 활동했다. 스스로를 “나무를 끌어안고 교감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한 대표는 늘 제주의 푸른 바다를 그리워하던 중 건강때문에 직업으로서의 환경운동은 그만 두고 재활을 위해 제주에 왔다. 프리랜서로 국제환경단체 자료 검색과 문서 번역 활동을 해왔다. 2018~19년에는 전세계 어선 움직임을 위성으로 추적해 어업활동을 감시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제공하는 국제단체 글로벌피싱워치의 한국 활동을 맡았다.
“그동안 자연과 실제로는 연결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제주 입도 5년 동안 서울에서 보이지 않던 자연과 더 많은 교감을 하게 됐다고 한다. 도시에서 살 때는 슈퍼 태풍이 와도 건물 안에 있으면 그만이고 폭염이면 에어컨을 틀었다. 쓰레기를 버려도 다음날 아침이면 환경미화원이 치워주는 덕분에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자연이 생계, 생존과 직결”됐다.
한 대표가 발견한 제주의 환경 문제는 기후위기·난개발 등 여러 가지였다. 특히 쓰레기 문제는 심각했다. 그도 여느 제주도민처럼 바다를 산책할 때면 늘 쓰레기를 주웠다. 하지만 변화가 없었다.
특히 제주는 전국에서 인구 대비 카페가 가장 많은 곳이다. 관광객들이 찾아와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차 한잔을 하고 돌아가지만, 그 자리에는 일회용컵이 남는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인구 1만명 당 카페 수는 전국 평균 19.1개다. 서울은 21.6개, 대전 19.3개, 부산 15.7개와 비교할 때 제주는 무려 33.2개에 달한다. 도민 수는 67만명에 불과하지만 카페는 2239개에 이른다. 다회용컵을 내밀어도 일회용컵에 주는 카페가 너무 많다.
“코로나 이후 일회용컵 사용이 더 늘었습니다. 바다에는 일회용컵뿐 아니라 각종 어구, 장화, 낚시바늘, 라면 봉지, 스티로폼 박스, 생수병 등이 떠다녀요. 제주를 아름다운 휴양지와 여행지로만 여길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죠.”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친환경 실천을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한 대표의 꿈은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를 통해 고용노동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지원을 받으며 현실이 됐다.
제주도 내에서 푸른컵으로 이용할 수 있는 카페들. 현재 23곳으로 표기돼 있으나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푸른컵 제공
코로나19시대에 사람들은 훨씬 더 위생에 민감해졌다. 관광객이 사용 후 반납한 푸른컵은 미온수 불림→뚜껑 실리콘 분해 세척→고온·고압수 세척→정밀 검수→자외선 살균 보관된다고 한다. 식당에서 남이 썼던 식기를 안심하고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푸른컵 쪽은 “공장에서 만들어 진 뒤 세척·살균을 거치지 않은 일회용 식기보다 세척한 다회용 식기가 더 위생적”이라고 했다.
반응은 좋다.
함께 하겠다는 카페들이 늘고 있다. 아직은 ‘힙’한 카페보다 독립·친환경 컨셉 카페 응답율이 높다. 한 대표는 “참여자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방법을 포함해 친환경 젊은이들과 협업할 방법을 찾고 있다. 시범서비스 평가 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도 연락해서 참여 업체 수를 차츰 늘려가려 한다. 제주에서는 다회용컵 이용이 기본값이 되도록 만들고 싶다”고 했다.
6월 한 달 동안 300개 푸른컵을 시범 대여한다. 대여 신청은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 채널 등으로 보증금 1만원을 내고 사전 예약할 수 있다. 제주공항 1층 4번 게이트 근처에 있는 푸른컵 부스에서 컵을 받은 뒤, 제주를 떠날 때 반납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