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물바람숲
알집에서 깨어난 어린 거미가 실 같은 거미줄을 타고 멀리 날아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몸집이 작다면 어른 거미도 이런 방식으로 먼 거리를 이동한다.
찰스 다윈은 1832년 비글호를 타고 아르헨티나 해안에서 100㎞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서 하늘에서 수천마리의 붉은 거미가 배 위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고 일부 거미가 공중 비행으로 확산한다고 믿게 됐다. 실제로 많은 거미가 이런 방식으로 세계 전역에 분포한다. 새로 생긴 화산섬이나 간척지를 가장 먼저 개척하는 동물의 하나도 거미다.
거미는 공중 비행을 위해 먼저 높은 곳으로 오른다. 이어 다리를 들고 배를 공중으로 향한 다음 아주 가는 거미줄을 내뿜는다. 바람 또는 상승 기류를 타고 이 거미줄은 삼각형의 낙하산 형태를 이뤄 거미를 공중으로 들어올린다. 거미는 보통 한번에 평균 500m, 하루에 최고 30㎞를 이렇게 이동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수백~수천㎞를 이동하려면 반드시 겪어야 할 난관이 바로 물이다. 강, 호수, 늪, 그리고 방대한 바다는 지구 표면의 70% 이상을 덮고 있다. 공중 확산에 성공한 거미라면 당연히 물 표면에서 살아남는 전략이 있어야 한다.
영국 노팅엄대 하야시 모리토 등 연구자들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실험실에서 접시거미 21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놀랍게도 비행을 하는 거미들은 모두 항해에도 능숙했다. 거미들은 5가지 항해술을 썼다. 앞다리를 돛처럼 하늘로 들어올리거나 물구나무서기 자세에서 배를 돛처럼 들어올려 물 표면을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것이 대표적인 동작이었다. 물에 젖지 않는 다리를 이용해 걷거나 아예 몸을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는 방법도 있었다. 거미줄을 물에 뿜어 속도를 줄이거나 떠 있는 물체가 있으면 위로 올라가 쉬었다. 거미줄은 닻인 셈이다.
연구자들은 “거미의 항해가 잔잔한 물이거나 거친 물, 민물이나 짠물 모두에서 이뤄졌으며, 항해 능력이 공중 확산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밝혔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사진 알렉산더 하이드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