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장애인

[필진] 다운증후군 친구를 사귄 날

등록 2006-10-27 18:12

서울 한복판에 가보면 사지가 멀쩡한 사람도 길건너기가 만만치않다. 특히 시청과 광화문근처가 심하다. 여기가 거기겠지 해서 지하도를 나와 보면 다른 구멍으로 나오기 일쑤이니. 그놈의 지긋지긋한 지하도를 건너다니며 서울서 거의 10년가까이 살았다. 서울서 꽤 살았던 나도 그런데 거길 처음 오는 사람이었다면 광화문 지하도 건너다 육두문자 한 번 쯤 안지껄일 수가 없다.

그리고 장애인이라면? 하반신 마비자는 광하문 사거리에서 길건널 권리가 없다. 거기 다닐 길이 있어야 말이지. 그러니 목숨내놓고 건너야 한다. 한 하반신 마비자의 광화문 사거리를 건너기 시위를 촬영한 단편영화를 예전에 본 일이 있었는데 그걸 보고 얼마나 마음이 처절했던지... 함께 동참해서 건너고 싶은 마음이었다. 광화문 사거리 건너는 장애인 말리기. 우리나라의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딱 요만큼이다. 그러니 꿩먹고 알먹고 할 요량으로 자살할 사람들에게 고한다. 한강대교가 아니라 광화문 사거리를 좀 애용해 달라고.

얼마전 한 다운증후군 청년을 일생동안 가둬놨다가 이웃의 신고로 그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진 부모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부모는 하루에 한 번 청년이 있는 창고를 방문, 기저귀를 갈아 주고 음식을 넣어주었단다. 발견될 당시 청년은 이십 대의 나이였음에도 5세 아이의 몸을 하고 있었고 지능 역시 발육하지 못한 신체만큼이나 떨어진다는 이야길 읽고 이 청년은 부모를 잘못만났기에 앞서

사회를 잘못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청년과 동시대 인물인 나, 나는 신기하리만치 장애인을 못보고 자랐다. 동네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장애인과 함께 일하거나 놀았던 기억이 없다. 그런 내가 독일온 초기 버스나 식당에서 장애인들을 많이 보면서 독일엔 왜이리 장애인들이 많을까


하고 생각했다. 심지어 ‘여기 기후와 풍토가 우리나라와 틀려 장애인이 많이 태어나는 걸까?’하고 생각하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 걸 알게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눈구녕 두 개 똑바로 뚫린 사람이라면 그거 눈치채는데 한 달이 안걸린다. 장애인들도 다닐만 하니까, 댕기기 편하니까 다니는 것이다.

수퍼, 은행, 가구점, 공항 등에서 제일 좋은 주차자리는 장애인 주차장이다. 우리 아파트 주차장도 그렇다. 제일 좋은 자리는 장애인 주차장이고 거기는 늘 비어있지만 이 아파트에서 4년을 살면서 거기 주차해놓은 차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학 화장실이 세 개면 그 중 하나는 장애인 화장실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오톨도톨한 금그어논 노란 줄따라 지팡이 흔들며 혼자서 다니는 것도 많이 봤고, 휠체어 탄 하반신 장애자가 버스타고 볼일 보러 가는 것도 많이 봤다.(운전사가 오르내리는 것을 도와준다)

나는 결혼해서 독일에 오자마자 장애인을 한 명 알게되었다. 바로 시댁 옆집에 사는 수지라는 여자였다. 수지는 내가 알게된 최초의 장애인이므로 수지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시댁 옆 집에는 브레스켄 부인이 딸과 함께 산다. 우리 시댁과 이웃하고 산 지 25년이 넘었다. 아줌마는 젊은 시절 남편과 이혼하고 다운증후군 아이를 혼자 기르면서 살고 있다. 아줌마는 임신중에 태어날 아기가 다운증후군이란 걸 알면서도 아기를 낳았다.

유산을 주장하던 남편은 아기가 태어난지 몇 달이 채 안돼 이혼을 요구했고 아기가 걷기도 전에 급히 집을 떠났다. 우리 시어머니는 아이 낳은 집에서 쉬쉬하는 바람에 이웃사촌임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보기까지 9개월이나 걸렸단다. 그 얘길 예전에 언뜻 들은 일이 있었고 종종 울타리 너머로 수지와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지난 여름에서야 나는 그 집 식구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 날은 시아버지의 생일이라 정원에서 새우며 고기를 재워놓고 구워먹고 있었는데 고기냄새를 맡은 수지와 아줌마가 울타리 나무를 비집고 시댁으로 온 것이었다. 수지는 그 날이 시아버지 생일이라는 것을 살짝 엿듣고 후다닥 그림을 네장이나 그려왔다. 시부모님과 우리내외, 두 당 한 장씩. 눈치도 빠르지.

가까이서 본 수지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뵜다. 나이는 이런 저런 얘기로 대충 짐작컨데 20대 중후반 정도 될 것 같은데 외모는 10대 중반이다. 어려보이는 얼굴 만큼이나 키도 작다. 150센티가 채 안될 것 같은 키에 엄마를 닮아 금발이고 동그란 눈끝이 약간 치켜올라갔다. 그리고 손이 어린이 손처럼 아주 작은데 자세히 보니 새끼손가락이 네 번째 손가락만큼이나 길다.

수지는 내게 있어 완벽한 외계인이었다. 나는 다운증후군에 대한 예비상식이 전혀 없다 보니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아이와 얘기할 때는 아이의 눈높이에서, 노인과 얘기할 때는 노인의 눈높이에서. 남자와 얘기할 때, 여자와 얘기할 때 사람들은 대화 상대에 따라 각각 눈높이를 조절한다. 하지만 수지와 얘기할 때는 어디에 내 눈높이를 맞춰야할지 고민이었다. 키는 좀 작지만 가슴이 볼록나온 아가씨, 하지만 초등학생 수준의 그림을 내게 선물로 준 수지. 어쩐다...

그러고 있다 보니 그 자리에서 안절부절 못한 사람은 역시 나 혼자였다. 우리 신랑과 시부모님은 그녀가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오랜 세월을 수지와 함께 하다보니 대화가 아주 자연스러웠다. 수지는 낯선 나에게만 낯을 가린다 뿐이지 다른 사람들과 얘기할 때는 큰소리로 웃기도 하고 수다스럽기까지 하다.

수지는 수다스럽게 자기가 할머니를 구해준 얘기를 했다. 하루는 아줌마가 외출을 하고 할머니가 수지를 봐주기 위해 수지네 왔단다.

목욕을 하고 욕조에서 나오려던 할머니는 뒤늦게야 잡고 일어설 손잡이가 없는 것을 알았지만 도와줄 이가 없었다. 손잡이가 없어 나오지 못하고 한 시간이 넘게 버둥거리고 있는데 수지가 엄마 직장으로 전화를 했단다.

수지는 글씨를 쓸 줄 모르고 숫자개념도 없다. 숫자를 모르는 수지가 전화를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전화번호를 외우는 게 아니라 전화번호의 위치를 외우는 거다. 맨 가운데 단추 두 번, 오른쪽 상단 한 번, 왼쪽 상단 두 번... 이런 식으로 전화번호가 그려진 판에 손가락이 다니는 길을 순서대로 외우는 거다. 휴가를 가면 길 잃어버릴까봐 호텔 전화번호를 이런 식으로 외우기도 하고 좋아하는 친구네 전화번호도 이렇게 외운단다. 사람들은 다들 입을 모아 수지가 없었으면 할머니는 정말 큰일날 뻔 했으며 비상시에 똑똑하게 잘 처신했다고 칭찬했다.

이런 대화들이 오갔고 수지도 어느 정도 내게 낯가림이 없어질 무렵, 맥주를 두어 잔 마셔서 기분이 좋아진 나는 수지에게 술을 한잔 권했고, 그랬더니 수지는 남자친구 얘기도 스스럼없이 했다. 토비아스라고 좀 뚱뚱한 남자친구와 수지는 사랑에 빠졌단다. 같은 학교에 다니니 캠퍼스 커플인 것이다. 토비아스 역시 다운증후군인데 둘 다 혼기가 꽉 차서 어쩌면 머지않은 장래에 결혼을 하게될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지는 너무나 자랑스럽게 덧붙였다.

“엄마가 그러는데, 임신을 했는지 안했는지 알고 싶으면 약국가서 임신 테스트를 사다가 집에서 해보면 된대.”

수지는 자기가 성인여자로서 자연스럽게 남자친구와 섹스를 하고 있음을 당당히 자랑하는 거였다. 그렇다. 스물여섯. 인생에서 가장 피는 한강가는 시절이다. 나는 수지가 토비아스와 사랑에 빠진 것이 참 다행이다 싶었다. 사랑의 기쁨과 쾌감은 세상에서 태어나 제일 짜릿한 경험인 것이다. 이걸 못해보고 죽으면 인생의 즐거움 반이 삭감되는 것이다. 다운증후군 딸에게 남들 다 누리는 사랑의 기쁨과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준 브레스켄 부인이나, 수지의 남자친구 얘길 듣고 기뻐해준 시댁식구들의 모습이나 내게는 좀 생소하면서도 즐거운 광경이었다.

영화 오아시스가 개봉되고 나서 장애인의 섹스에 대한 말이 많이 오갔다. 그런 말이 오간다는 것 자체가 벌써 웃기는 징조다. 그게 뭐 특이할 것이라고 갑론을박인가. 당연히 장애인도 성인이 되면 성적욕망이 생길 것이고 종족보존의 본능이 생길 것이고 그러면 섹스가 하고 싶을 진데. 거기 대고 갑론을박 할 시간있으면 장애인이 오르가즘 느끼기에 편한 체위에 대해 좀 연구했으면 한다.

‘여자가 오르가즘 느끼는 섹스체위’ 이거 여성지에 지겹도록 재탕 삼탕하는 기사다. 나는 이런 기사 결론이 뻔해 보지도 않는다. 이제 이거 좀 그만하고 장애인의 장애별 섹스체위에 대해 연구하고 쓸 기자는 없을까? 장애인의 원활한 섹스라이프를 위해 섹스기구를 만들고 판매할 기업은 없을까? 어떤 벤처기업이 장애인을 위한 섹스기구를 만들어보겠다고 나선다면 나는 연구기금 1만원을 희사할 생각이 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