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 시정 절차·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전·후 사건 접수 변화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년
교원 음성시험·투표 참정권 확보 등 성과
인권위 축소·현행법 충돌 풀어야 할 ‘숙제’
교원 음성시험·투표 참정권 확보 등 성과
인권위 축소·현행법 충돌 풀어야 할 ‘숙제’
교사 김명옥(32·서울 정인학교)씨는 날마다 출근길이 설렌다.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미술·과학·율동을 가르치는 일이 재미있고 보람되기 때문이다.
그가 선생님이 된다는 건 1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선천성 망막 변성’이란 시각장애를 가진 탓이다. 지난해 교원 임용시험 때는 점자로 된 문제지를 받았다. 20대 중반에 눈이 나빠져 뒤늦게 점자를 배웠기에 70분 안에 50문제를 손으로 읽고 풀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몰라서 못 푸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절반 이상 답을 찍지도 못하고 나왔으니 절망적이었죠.” 교육청에 ‘컴퓨터를 통해 음성으로 문제를 들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를 구한 건 시험 낙방 두 달 뒤 시행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이었다. 김씨는 다른 시각장애인 32명과 함께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 달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가 시정을 권고하자, 서울시교육청은 “음성 지원 컴퓨터를 배치하고, 시험 시간도 1.5배로 확대하겠다”는 개선책을 내놨다. 김씨는 올해 2월 다른 동료 두 명과 함께 시험에 합격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11일로 시행 한 돌을 맞는다. 이 법은 장애에서 비롯하는 ‘차이’를 이유로 장애인을 ‘차별’하지 못하게 한 법이다. 김씨처럼 장애 차별 때문에 지난해 인권위에 진정된 695건 가운데 502건의 처리가 종결됐는데, 조사 대상이 되는 진정 281건 가운데 176건(62.6%)이 조사 도중 해결되거나 인권위가 시정을 권고하는 등으로 ‘변화’를 끌어냈다.
△우체국이 정신장애 3급 장애인의 재해안심보험 가입을 거부한 일 △대한주택공사가 시각장애인에게 토지보상 계획과 액수를 활자 인쇄물로만 통보한 일 △지난해 7월 서울시교육감 선거 때 장애인이 투표소 앞 계단 19개를 넘지 못해 투표를 하지 못했던 일 등이 인권위 권고로 개선됐다. 인권위의 시정 권고를 거부하면 최고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 등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차별금지법의 ‘한계’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박은수 민주당 의원실이 낸 자료를 보면, 이 법과 충돌하는 현행법이 70여개나 된다. 이를테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5·17조는 ‘장애를 이유로 보험 가입·신용카드 발급 등에 차별이 있으면 안 된다’고 규정했지만, 상법 제732조에는 ‘심신박약·심신상실자 등과의 보험 계약을 무효로 한다’고 돼 있다.
정부가 지난 6일 인권위 인력을 21%나 축소한 것도 이 법의 실효성을 위협할 수 있다. 장애인 차별 시정은 오로지 ‘인권위 진정-시정 권고’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인권위 쪽은 “침해구제팀 정신장애 담당(3명)이 없어졌고 교육·정책 인력도 대폭 축소됐다”고 말했다. 인권위 업무는 이 법 시행 이후 크게 늘어났다. 인권위 자료를 보면, 이 법 시행 이후 지난해 말까지 7개월 남짓 동안의 진정 사건(645건)이 2001년 11월 인권위 출범 이후 7년여 동안의 진정 건수(630건)보다 많았다. 박옥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장애 차별 근절을 위해 갓 새싹을 틔운 단계”라며 “수유실 점자 안내책, 음성 문제 제공 등 비장애인들이 알기 어려운 차별을 고치려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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