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과친구하기■
브루가다증후군 앓는 박용남씨 심장이 갑자기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이 발생해 실신하는 등 심장마비와 다름없는 위기를 네 차례나 겪은 박용남(60)씨에게 2003년 11월은 인생의 큰 분수령이었다. 그때 세번째 실신하는 사건을 겪은 뒤 그는 30여년간 일해온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새 출발도 했다. 2000년에 두 차례나 실신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지 못한 술과 담배에 대해 금주와 금연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제 몸이 강철인줄 알았어요. 젊어서부터 거의 매일 소주를 2병 이상씩 마시고, 담배도 하루에 한갑반 이상 피웠지만 끄떡없었으니까요. 2000년 두 차례 실신한 뒤 심장마비로 돌연사할 수 있는 브루가다증후군으로 밝혀져 술과 담배를 끊으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됐어요.” 브루가다증후군이란 스페인의 ‘브루가다’라는 심장내과 의사가 발견한 유전적 소인에 의한 심장 부정맥으로 갑자기 심장의 심실이 불규칙적으로 뛰면서 혈액 순환이 멈춰버려 돌연사를 부르는 것을 말한다. 김영훈 고려대 의대 교수(안암병원 부정맥센터)는 “유전적으로 브루가다증후군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과음과 흡연은 그 증후군을 촉발시키는 뇌관으로 작용한다”면서 “건강한 남자가 원인불명 질환으로 급사할 경우 대부분 이 증후군에 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안산시 월피동에서 살고 있는 그가 처음 쓰러진 것은 2000년 2월. 동네병원에서 응급조처를 받은 뒤 좀 더 큰 병원으로 옮겨 정밀검사를 받았지만 브루가다증후군이란 진단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같은 해 10월 두번째 실신했을 때 고려대의대 산하 안산병원을 거쳐 안암병원에 가서야 비로소 브루가다증후군이란 진단을 받았고, 술과 담배를 끊지 않을 경우 이 증후군이 나타나 돌연사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세번째 실신할 때까지는 주량만 조금 줄였을 뿐 이전의 생활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갑자기 심장 멎는 증세 4차례, 불안함에 불면증까지 얻었지만
가슴 속에 제세동기 설취한 뒤 화초 키우며 안정 되찾아 “설마 했는데 세번째 실신하는 일이 발생하자 무척 당황했어요. 술과 담배를 끊고서도 밤에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지요. 특이하게도 처음부터 세 차례의 실신이 모두 새벽 2~4시 잠자리에서 발생했기 때문이죠.” 그는 운이 좋았다. 아내가 잠귀가 밝은데다 안산시 소방서 119 응급차량이 집에서 2㎞ 떨어진 가까운 곳에 있다. 그가 세 차례의 돌연사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조건이 큰 도움이 됐다. 그럼에도 세번째 실신한 뒤에는 잠을 자는 것 자체가 두려워 불면증까지 걸렸다. 하지만 그는 해송, 소철, 벤자민 등을 화분에 정성껏 키워 분재로 만드는 일에 재미를 느끼게 되면서 직장을 잃은 상실감과 그렇게도 좋아했던 술과 담배를 끊은데서 오는 허탈감과 외로움을 달래기 시작했다. 네번째이자 마지막 실신은 2005년 8월에 일어났다. 앞서의 실신처럼 잠을 자다가 새벽에 발생했다. 하지만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좁아져 있는 것으로 나타나 약물치료에만 의존할 수 없어 수술이 불가피한 단계에 접어든 점이 달랐다. “관상동맥을 넓히기 위해 스텐트를 설치했을 뿐만 아니라 브루가다증후군에 의한 돌연사를 막기 위해 왼쪽 가슴 피부 안쪽에 제세동기를 설치하는 수술을 받았어요. 제세동기 덕분에 잠을 잘 잘 수 있게 됐어요.” 제세동기는 얇은 담배갑 크기의 컴퓨터 장치로 심장의 심실이 갑자기 불규칙하게 또는 너무 빠르게 뛴 끝에 심장이 마비되는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그 즉시 작동해 멈춘 심장에 전기충격을 가해 박동을 정상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제세동기를 몸안에 삽입하는 수술을 받고나서 한달쯤 지났을 때 부정맥으로 심장이 멎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제세동기가 곧바로 작동해 심장 박동을 정상화시켰어요. 제세동기 덕을 톡톡히 본 셈이지요. 이젠 잠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어요.” 그는 1년반 가량의 실업자 생활을 청산하고 올 초부터 천직인 볼트와 너트를 만드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 없다고, 후배들한테 좋은 인상을 심어준 결과, 그를 아끼는 한 후배가 ‘아무 이유없이 선배한테 돈을 줄 수는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일자리를 제공한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화초 가꾸는 것을 좋아했다는 그는 “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불현듯 집에서 가꾸고 있는 분재가 보고 싶은 생각이 떠오른다”면서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달려가 ‘잘 있었느냐’고 묻는 등 분재들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박씨는 분재라도 가꾸면서 술 좀 적게 먹으라고 잔소리하곤 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병을 함께 달래고 있다. 안산/글·사진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브루가다증후군 앓는 박용남씨 심장이 갑자기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이 발생해 실신하는 등 심장마비와 다름없는 위기를 네 차례나 겪은 박용남(60)씨에게 2003년 11월은 인생의 큰 분수령이었다. 그때 세번째 실신하는 사건을 겪은 뒤 그는 30여년간 일해온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새 출발도 했다. 2000년에 두 차례나 실신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지 못한 술과 담배에 대해 금주와 금연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제 몸이 강철인줄 알았어요. 젊어서부터 거의 매일 소주를 2병 이상씩 마시고, 담배도 하루에 한갑반 이상 피웠지만 끄떡없었으니까요. 2000년 두 차례 실신한 뒤 심장마비로 돌연사할 수 있는 브루가다증후군으로 밝혀져 술과 담배를 끊으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됐어요.” 브루가다증후군이란 스페인의 ‘브루가다’라는 심장내과 의사가 발견한 유전적 소인에 의한 심장 부정맥으로 갑자기 심장의 심실이 불규칙적으로 뛰면서 혈액 순환이 멈춰버려 돌연사를 부르는 것을 말한다. 김영훈 고려대 의대 교수(안암병원 부정맥센터)는 “유전적으로 브루가다증후군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과음과 흡연은 그 증후군을 촉발시키는 뇌관으로 작용한다”면서 “건강한 남자가 원인불명 질환으로 급사할 경우 대부분 이 증후군에 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안산시 월피동에서 살고 있는 그가 처음 쓰러진 것은 2000년 2월. 동네병원에서 응급조처를 받은 뒤 좀 더 큰 병원으로 옮겨 정밀검사를 받았지만 브루가다증후군이란 진단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같은 해 10월 두번째 실신했을 때 고려대의대 산하 안산병원을 거쳐 안암병원에 가서야 비로소 브루가다증후군이란 진단을 받았고, 술과 담배를 끊지 않을 경우 이 증후군이 나타나 돌연사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세번째 실신할 때까지는 주량만 조금 줄였을 뿐 이전의 생활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갑자기 심장 멎는 증세 4차례, 불안함에 불면증까지 얻었지만
가슴 속에 제세동기 설취한 뒤 화초 키우며 안정 되찾아 “설마 했는데 세번째 실신하는 일이 발생하자 무척 당황했어요. 술과 담배를 끊고서도 밤에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지요. 특이하게도 처음부터 세 차례의 실신이 모두 새벽 2~4시 잠자리에서 발생했기 때문이죠.” 그는 운이 좋았다. 아내가 잠귀가 밝은데다 안산시 소방서 119 응급차량이 집에서 2㎞ 떨어진 가까운 곳에 있다. 그가 세 차례의 돌연사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조건이 큰 도움이 됐다. 그럼에도 세번째 실신한 뒤에는 잠을 자는 것 자체가 두려워 불면증까지 걸렸다. 하지만 그는 해송, 소철, 벤자민 등을 화분에 정성껏 키워 분재로 만드는 일에 재미를 느끼게 되면서 직장을 잃은 상실감과 그렇게도 좋아했던 술과 담배를 끊은데서 오는 허탈감과 외로움을 달래기 시작했다. 네번째이자 마지막 실신은 2005년 8월에 일어났다. 앞서의 실신처럼 잠을 자다가 새벽에 발생했다. 하지만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좁아져 있는 것으로 나타나 약물치료에만 의존할 수 없어 수술이 불가피한 단계에 접어든 점이 달랐다. “관상동맥을 넓히기 위해 스텐트를 설치했을 뿐만 아니라 브루가다증후군에 의한 돌연사를 막기 위해 왼쪽 가슴 피부 안쪽에 제세동기를 설치하는 수술을 받았어요. 제세동기 덕분에 잠을 잘 잘 수 있게 됐어요.” 제세동기는 얇은 담배갑 크기의 컴퓨터 장치로 심장의 심실이 갑자기 불규칙하게 또는 너무 빠르게 뛴 끝에 심장이 마비되는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그 즉시 작동해 멈춘 심장에 전기충격을 가해 박동을 정상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제세동기를 몸안에 삽입하는 수술을 받고나서 한달쯤 지났을 때 부정맥으로 심장이 멎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제세동기가 곧바로 작동해 심장 박동을 정상화시켰어요. 제세동기 덕을 톡톡히 본 셈이지요. 이젠 잠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어요.” 그는 1년반 가량의 실업자 생활을 청산하고 올 초부터 천직인 볼트와 너트를 만드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술 좋아하는 사람치고 악한 사람 없다고, 후배들한테 좋은 인상을 심어준 결과, 그를 아끼는 한 후배가 ‘아무 이유없이 선배한테 돈을 줄 수는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일자리를 제공한 것이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화초 가꾸는 것을 좋아했다는 그는 “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불현듯 집에서 가꾸고 있는 분재가 보고 싶은 생각이 떠오른다”면서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달려가 ‘잘 있었느냐’고 묻는 등 분재들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했다. 박씨는 분재라도 가꾸면서 술 좀 적게 먹으라고 잔소리하곤 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병을 함께 달래고 있다. 안산/글·사진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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