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원이 일반 동네의원으로 간판을 바꾼 경우
산부인과·외과 접고 너도나도 성형·일반의원 갈아타기
전공 안밝힌 의원 4569곳
오진·과잉진료 등 우려 커
경기도 성남의 한 산부인과 김아무개 원장은 서울 강남에 새로 의원을 열어 성형환자들을 주로 볼 계획이다.
그는 “산부인과 전문의로 20년 이상 아기를 받아왔지만 요즘에는 직원들 월급도 못 줄 형편”이라며 “후배들한테 배워서라도 성형환자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산부인과·외과·흉부외과 등 상당수 전문의들이 경영난 등으로 자신의 전문과목을 포기하고 일반의원(동네의원)으로 개원하거나 다른 과 환자를 보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2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를 보면, 산부인과를 하다 일반의원으로 간판을 바꾼 의원은 2003년 말 131곳에서 올 6월 말 현재 304곳에 이른다. 외과나 흉부외과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외과를 하다 일반 의원으로 간판을 다시 단 경우는 2003년 12월 말 현재 916곳에서 올 6월 말 현재 1014곳으로 늘어났다. 흉부외과를 전공했지만 전문의 표시를 하지 않고 일반의원을 여는 곳도 244곳이나 된다. 반면에 흉부외과 이름을 내건 곳은 단지 38곳뿐이었다. 이렇듯 자신의 전문과목을 밝히지 않고 개업한 일반의원은 올 6월 말 집계로 전체 의원 2만5573곳의 17.8%인 4569곳에 이른다. 게다가 이런 비율은 2003년 말 15.3%, 2004년 말 15.7%, 2005년 말 16.2%로 해마다 늘고 있다.
현행 의료법에는 산부인과나 외과 전문의가 일반의원으로 개원하거나 다른 과 환자를 진료해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의사 면허는 모든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자격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의료 소비자 쪽에서 보면 의료서비스의 질 하락을 의미할 수도 있다. 김창보 건강세상네트워크 사무국장은 “특정 과의 전문의는 자신의 전공 분야에 대해서는 잘 알겠지만 다른 분야는 익숙하지 않아 오진을 하거나 잘못된 치료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외과 전문의이지만 일반의원을 열어 감기·관절염 등의 질환을 비롯해 미용 성형 수술까지 하고 있는 김아무개 원장(서울 종로구)은 “성형수술은 주위 의사들과 연수를 통해 배웠고, 내과 계통의 가벼운 질환은 의사로서 기본 지식을 가지고 환자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도 ‘질환이 이미 진행됐거나 합병증이 있는 내과 환자의 경우 내과 전문의보다 잘 진찰하기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어느 정도 수긍하는 모습이었다. 임아무개 성형외과 전문의는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의사가 전문성형병원에서 성형수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아무리 간단하다고 알려진 수술이라도 한두번 연수를 통해 할 수 있다면 성형외과 전문의 과정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의료자원의 낭비란 지적도 적잖다. 윤태호 부산대 의대 교수는 “전문 의료 인력이 감기 등 일반환자를 본다면 굳이 수년 동안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전문의를 양성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전문의들의 이런 ‘전공 포기’ 현상에는 정부의 근시안적인 의료인력 수급정책, 저출산·고령화란 인구구조 변화, 이에 따른 경영악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돈 되는’ 진료과목만 선호하는 요즘 의료계의 풍토 등이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 조홍준 울산대 의대 교수는 “정부가 중장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의료인력 수급정책을 세우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며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서는 전문의 제도에 대한 재검토와 함께 무엇보다도 동네 주치의인 일차 의료 의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교육 및 수련 시스템의 개혁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김일주 기자 himtrain@hani.co.kr
의료자원의 낭비란 지적도 적잖다. 윤태호 부산대 의대 교수는 “전문 의료 인력이 감기 등 일반환자를 본다면 굳이 수년 동안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전문의를 양성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전문의들의 이런 ‘전공 포기’ 현상에는 정부의 근시안적인 의료인력 수급정책, 저출산·고령화란 인구구조 변화, 이에 따른 경영악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돈 되는’ 진료과목만 선호하는 요즘 의료계의 풍토 등이 이를 부채질하고 있다. 조홍준 울산대 의대 교수는 “정부가 중장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의료인력 수급정책을 세우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측면이 크다”며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서는 전문의 제도에 대한 재검토와 함께 무엇보다도 동네 주치의인 일차 의료 의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교육 및 수련 시스템의 개혁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김일주 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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