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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8 17:59 수정 : 2005.03.08 17:59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화재는 특히 건조한 겨울과 봄에 많다. 화재가 났다 하면 막대한 재산 피해는 물론 인명 사고로도 이어지므로 아무리 불조심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화재 발생으로 사람이 사망하는 경우는 불이나 열에 의한 화재 현장에서의 사망, 화상 뒤 감염이나 쇼크 등과 같은 합병증에 의한 사망, 마지막으로 흡입 화상에 의한 사망 등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과거에는 화상의 합병증 때문에 숨지는 경우가 많았으나, 화상 치료법이 발전하면서 화상 뒤의 쇼크나 감염증은 많이 줄어들고 있다. 반면, 요즘 화재에서의 사람의 사망은 절반 이상이 흡입 화상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흡입 화상은 뜨거운 연기를 들이마신 결과 기도의 부드러운 점막에 화상이 생긴 것을 말한다. 열로 손상받은 점막이 부어오르면서 기도가 막히거나 폐의 손상으로 이어져 결국 숨을 쉬지 못해 사망하는 것이다. 1999년 10월 57명이 숨진 인천 지하 호프집 화재 사건과 2003년 2월 19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대구 지하철 화재사건이 흡입 화상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들 사건의 희생자들을 조사한 결과 실제로 사망자의 대부분은 불에 타 숨지기 전에 이미 연기 흡입 때문에 질식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흡입 화상은 불이 났을 때 유기 물질이 덜 타서 생기는 연기에 들어 있는 0.5㎛ 이하 크기의 입자들 때문에 생긴다. 이 입자들을 들이마시면 성대 아래 부분에 염증을 일으켜, 기도 점막에 상처를 내고, 이 때문에 기도가 붓거나 경련을 일으키면서 공기의 통로가 막혀 질식하게 된다. 화재 현장이 막힌 곳이거나, 화재 현장에 오래 있을수록 그 부상 정도는 심해진다.

한편, 연기를 들이마신 뒤 곧바로 손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최대 하루 정도 뒤에도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이 또한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실례로 화재 현장에서 구조된 뒤 별 이상이 없어 그냥 지켜보다가 두어 시간이 지난 뒤 갑자기 호흡이 힘들어져 응급실을 찾은 경우도 있었다. 곧바로 응급조처와 치료를 받긴 했지만, 결국엔 큰 후유증을 남겼다.

이 때문에 화재 현장에서 무사히 나오더라도 부탄가스 폭발 등과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의 화재였다거나,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면 즉시 의료기관을 찾아야 한다. 또 머리카락이나 코털이 그을렸다거나, 입과 코 및 그 주변의 그을음이 있다거나, 목소리가 쉬었거나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내거나, 까만색 가래가 나오면 흡입 손상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때도 마찬가지다. 만약 시간을 지체해 기도가 막힌 뒤 의료기관을 찾으면 기도를 통해 폐로 산소를 공급하는 관을 넣기 힘들 수도 있으므로 소생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화재현장에서 흡입 화상을 줄이는 방법도 있다. 불이 났다면 가능하면 먼저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리면서 몸을 최대한 낮추고 빠져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연기를 덜 마실 수 있을뿐더러, 연기의 열을 식혀 기도의 화상을 어느 정도는 예방할 수 있다.

서길준/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suhgil@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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