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의료·건강

‘폭행·폭언’으로 찌든 ‘의사선생님’의 하루

등록 2006-11-17 16:46수정 2006-11-17 22:21

대한 전공의협의회 전공의 게시판에 올라온 의사 폭력에 관한 글.
대한 전공의협의회 전공의 게시판에 올라온 의사 폭력에 관한 글.
‘전공의’ 환자앞에서 맞고 욕먹고
‘교수 폭력’에 벌벌 떨고 참담하고
경기도 한 종합병원의 소아과 3년차 전공의(레지던트) ㅇ아무개(여)씨는 병동에서 열리는 아침 회의만 생각하면 ‘끔찍’하다. 회의를 주관하는 ㄱ아무개 교수가 무슨 폭언과 폭행을 해댈지 두려워서다. 얼마 전 아침 회의시간, 환자 진료 기록을 살펴본 ㄱ교수는 여지 없이 소리를 질러댔다. “넌 병원 관두고 집에 가서 애나 보고 살아라. 이 XX같은 X.” ㅇ씨는 환자 앞에선 ‘의사선생님’이지만 ㄱ교수 앞에선 ‘XX같은 X’이다.

이날 ㅇ씨는 다행히(?) 회진을 따라 갈 수 있었다. 며칠 전 다른 동료 전공의 한 명은 ㄱ교수한테 ‘너만 보면 재수 없어, 넌 나가 있어’라는 말을 듣고 회진에 참가하지 못했다. ㄱ교수는 전공의들에게 폭언을 쏟은 뒤엔 종종 병동 회진에도 배제하기 때문이다.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한 시간 동안 ㅇ씨나 전공의들은 혼자서 심한 자괴감을 되씹어야 한다.

아침회의때 ‘XX같은 X’
회진 따라나서면 여성인데도 손가락으로 몸 찌르며 막말
폭력에 익숙해지는 자신이 슬퍼

그렇지만 회진이 시작됐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회진은 환자들의 상태를 교수에게 보고하고 여러 처치를 지시받는 자리다. 하지만 교수의 폭언은 환자를 앞에 두고도 터져나온다. 이날도 역시 환자와 보호자 앞에서 ㅇ씨의 자존심은 무참히 구겨졌다. “머저리 같은….” ㄱ교수는 “환자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며 여성인 ㅇ씨의 몸을 손가락으로 찔러대며 막말을 내뱉었다.

ㅇ씨는 ‘환자나 보호자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하는 부끄러움에 환자를 돌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정말 나는 의사로서 자질이 없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하루 종일 ㅇ씨의 뇌리를 스쳤다.

그나마 이 정도는 약과인지도 모른다. 지난해에 다른 남자 전공의 한 명은 중환자실에서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심한 욕과 함께 정강이를 걷어차였다. 잇단 폭행과 폭언에 소아과 전공의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면서, ㄱ교수는 과장직에서 물러났다. 다시는 폭력을 쓰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사과와 약속은 몇 달이 가지 않았다. 올들어 ㄱ교수의 폭언과 폭행은 다시 시작됐고, ‘맞으면서 배우는’ 전공의도 당연히 다시 생겨났다. 최근에도 폭언을 들은 전공의 한 사람은 병원을 떠날 결심을 했다. 그러자 뒤늦게 병원 쪽이 문제 교수에게 수련을 받지 않도록 하는 조처를 내렸다. 하지만 ㄱ교수는 아무런 징계나 처벌도 받지 않았다. 이에 반발한 소아과 전공의들은 전국 병원 전공의들의 모임인 전공의협의회에 도움을 호소했다.

ㅇ씨 등 이 병원 전공의들은 병원 쪽이 ‘병원 폭력’을 근절할 만큼 적절한 조처를 취하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얼마 전에 다른 과에서도 교수가 전공의를 폭행한 일이 있었지만, 감봉 3달의 징계 조치를 받았을 뿐이다. 반면 폭행을 문제삼은 피해 전공의는 병원을 그만뒀다.

ㅇ씨는 “두렵다”고 했다. 환자를 보는 것도 무섭지만, 폭력에 익숙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에 더욱 참담하다고 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그동안 알려진 의료계 폭력 사례
이런 폭력 저런 폭력…외과계가 내과계보다 더 폭력적

의사들 사이의 폭력 양상은 내·외과계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다.

일반외과, 정형외과, 산부인과, 성형외과 등의 외과계통이 내과, 소아과, 정신과, 피부과, 가정의학과 등의 내과 쪽보다 더 폭력적이라고 전공의들은 전한다. 이는 임기영 아주대 의대 교수팀이 전공의·개원의 9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의료현장 폭력실태(2004년 2월)’나 올해 대한전공의협의회에 접수된 폭력 피해 민원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임 교수팀의 조사에선 내과계 의사 475명 가운데 199명(41.9%)이 폭언을 경험한 데 비해 외과계는 361명 가운데 166명(46.0%)이었다. 폭행 피해 경험에선 그 차이가 더 벌어져, 내과계 의사들의 7.6%가 폭행을 경험한 반면, 외과계는 15.2%에 이르렀다. 가해 의사들의 비율도 외과계가 내과계의 2배였다.

올해 인터넷이나 전화로 전공의협의회에 신고된 전공의 폭력 사건 20건 가운데, 전공 과가 확인된 경우는 주로 외과·정형외과 등이었다. 전공의협의회 관계자는 “아무래도 외과계가 남성 비율이 높고, 수술 등이 주된 일이다보니 응급 상황도 많기 때문일 것”이라며 “이전부터 폭력을 방치하는 분위기도 한 몫 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아래는 2004년 4월 열린 의료현장 폭력추방 워크숍 자료에서 나온 폭력 유형 사례들의 일부이다.

사례 1

의사 폭력 집에 가서 애나 봐!
의사 폭력 집에 가서 애나 봐!
한 대학병원에서 3년차 전공의의 지시를 1년차 전공의가 수행하지 않아, 3년차가 1년차를 계속 호출했다. 연락이 없자, 새벽에 일을 마친 뒤 1년차를 불러 야단치는 과정에서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해 옆에 있던 둔기로 1년차를 때렸다. 둔기로 맞은 1년차 전공의는 두개골이 골절되고, 뇌막 아래 피가 고이는 중상을 입었다. 바로 응급수술을 받았다.

3년차 전공의는 구속되는 등 법적 절차가 진행돼 결국 벌금형에 처해졌다. 또 병원협회 차원에서 9월부터 이듬해 2월말까지 수련기간을 인정하지 않는 처분이 내려졌다. 해당병원으로부터는 3달 동안 정직처분이 내려졌다.

사례 2

한 인턴이 동료 인턴과 함께 전공의의 집들이에 참석했다. 10여명이 저녁식사와 술을 먹었다. 집들이는 밤 10시 쯤에 끝나 2차를 갔다. 마침 다른 장소로 옮기는 택시 안에서 택시 기사와 전공의, 인턴과의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 때 전공의가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나머지는 먼저 노래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한참 뒤 전공의가 화가 난 채로 들어와 윗년 차가 밖에서 말다툼 하고 있는데 인턴들은 노래나 부르고 있냐고 호통을 쳤다. 전공의를 말리는 과정에서 다른 인턴들도 매를 맞았고, 한 인턴은 전공의에게 뺨을 얻어 맞아 큰 부상을 입었다.

사례 3

한 대학병원의 교수가 전공의에게 폭행을 가한 사건이다. 그 교수는 아침 회의시간에 장부정리 및 발표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전공의들의 머리 혹은 뺨을 때렸다. 종종 발로 걷어차는 폭행을 가했다. 또 병동 복도에서 환자 및 보호자, 간호사들이 보는 앞에서 발로 전공의 배를 6번 정도 연속으로 찼기도 했다. 수술실에서도 정형외과용 망치 등으로 이마를 때리거나 수술 장갑을 낀 상태로 뺨과 머리를 8번 정도 연속해서 때리기도 했다. 수술실에서 배나 다리 등을 걷어차기도 했다. 외래 진찰실에서도 환자 및 보호자가 보는 앞에서 구둣발로 다리 및 배를 차고, 뺨을 안경이 날아갈 정도로 심하게 때린 적도 있다.

사례 4

의사 폭력
의사 폭력
대학병원의 한 교수가 자신의 특진 수술을 수석 전공의에게 대신 할 것을 명했다. 수석 전공의는 피부를 절개하던 중 담당 교수가 수술 방에 들어와 피부절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나무로 만들어진 수술신발로 정강이를 10번 때렸다. 교수가 직접 집도해 수술하면서 수석 전공의에게 계속해서 욕설과 구타를 가했다. 욕설은 ‘넌 교만해’, ‘이따위로 할 거면 나가’, ‘교활해’, ‘넌 보험재정을 까먹는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자식이야’ 등이다.

사례 5

남자 의사가 중환자실의 환자에게 솜베개를 만들어주라고 한 여성 간호사에게 지시했으며, 이를 미처 하지 못한 간호사의 얼굴에 환자 진료기록부를 던지고 뺨을 때렸다. 이에 간호사가 겁이 나 도망가자 쫓아가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렸다.

‘의료계 폭력’ 제보 기다립니다.

우리 사회 각 부문에 존재하는 비상식적인 폭력적 관행에 대해 지속적으로 감시와 고발을 늦추지 않아온 <한겨레>는 ‘의료계 폭력’에 대해서도 추가보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의료계 폭력’에 대해 관련되신 분들의 제보와 사례를 기다립니다. 제보해주실 곳 : himtrai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