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마을 은경이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수미의 한달 가계부
[김기태기자 달동네에서 한달]
가난에 막힌 15살 은경이의 눈물
가난에 막힌 15살 은경이의 눈물
기자와 말을 나누다가 은경(15·가명)이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눈물에 당황하지도, 눈물을 과장하지도 않았습니다. 은경이는 처음 기자를 대면한 때의 그 표정과 어투로 계속 담담히 자기 이야기를 했습니다. 중3인 이 여자아이에게 눈물은 그다지 낯선 것이 아닌 듯했습니다.
정부 보조금 받아 아빠와 생활
차비 모자라 하교땐 걸어서…간식도 특강도 엄두못내 은경이는 양지마을에서 아빠와 같이 삽니다. 갓 돌을 넘었을 때 엄마가 돌아가셨습니다. 은경이는 아빠가 일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허리가 아픈 아빠는 정부가 주는 한달 40만원으로 생활합니다. 은경이는 여기에서 8만원을 받습니다. 5만원은 용돈이고, 3만원은 차비입니다. 어느쪽으로나 다 모자랍니다. 스타킹, 문구, 교재, 간식, 생리대 등을 사려면 턱도 없습니다. 그래서 버스는 등교할 때만 탑니다. 집에 올 때는 30분 거리를 혼자 걷습니다. 내년에 거리가 먼 ㄱ·ㄴ고등학교로 배정될까봐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학원을 갈 때도 주로 걷습니다. 복지기관이 추천을 해줘 무료로 종합반을 듣습니다. 은경이가 양지마을 학생들 중에선 공부를 잘 하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내신 3등급 정도의 실력입니다. 수학을 잘 못해서 강의를 더 듣고 싶지만, 가끔 있는 특강은 엄두도 못냅니다. 특강료가 12만원이라 아빠한테 말도 못 꺼냈습니다. 학원에서 저녁 때가 되면 배가 고픕니다. 다른 아이들이 매점에 가서 ‘먹고 싶은 것’을 살 때, 은경이는 ‘살 수 있는 것’을 사거나 그냥 지나칩니다.
주변에 깊은 얘기를 털어놓을 친구는 없습니다. 같은 반에 비슷한 처지의 친구가 있지만, 그 친구는 그래도 할머니와 어머니가 수입이 있습니다. 그 친구마저 자기 처지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면 은경이는 입을 다뭅니다. 집 사정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저런 ‘혜택’을 많이 받았습니다. 선생님들은 티나지 않게 급식비나 수학여행비 같은 것을 무료로 처리해주셨습니다. 은경이는 때로는 상대방의 바람에 맞게 가식적으로 가난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그래야 자기한테 혜택도 많이 온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게 싫습니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 애들 앞에서 자기 처지가 드러나는 것도 싫습니다. 반 친구들이 영화 보러 가자고 하면 영화 싫어한다고 답하고, 놀이공원 가자고 하면 그것도 싫어한다고 말했습니다.
가난 과장하기 싫은데…
작가도 고고학자도 배고픈 직업이라기에 포기 은경이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6학년 때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꿈이 작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돈을 잘 못 번답니다.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고고학자도 되고 싶었는데, 같은 이유로 접었습니다. 앞으로 뭘 공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로 가기로 결심은 했는데, 아직도 헷갈립니다. 주변에선 실업계로 가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공부 잘하는 애들과 경쟁해서 대학을 가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비싸다는 대학 등록금도 벌써 걱정입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걱정입니다. 아빠에게 나오는 지원금도 끊기기 때문입니다. 그 때부터는 은경이가 가장이 될 겁니다. 고모댁에 오래 맡겨졌던 은경이는 아빠에게 정이 가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빠가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은경이는 소원이 ‘생각없이 사는 것’입니다. 생각과 걱정이 많다 보니, 초등학교 6학년 때나 중학교 1학년 때는 걷다 보면 어디든 금방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얼마전부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는 걸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젠 생각을 조금 덜 하기로 했답니다. 그저 다른 아이들처럼 아무 생각없이 ‘티머니 카드’를 써보고 싶고, 걱정 없이 옷도 사고 싶습니다. 부모님에게 의지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아이들이 은경이는 부럽습니다. 은경이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것은 이 말을 할 때였던 것 같습니다. 돌아가신 엄마 얘기를 할 때도 안 그랬는데, 스스로 고단한 생활을 지탱해야 한다는 무서운 현실감이 이 아이에겐 엄마에 대한 그리움 따위보다 더 눈물나는 일인가 봅니다. 지난달 29일 제가 사는 양지마을에 있는 나눔의 집 공부방에서 은경이를 만났습니다. 쉽지 않은 인터뷰에 응해준 은경이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차비 모자라 하교땐 걸어서…간식도 특강도 엄두못내 은경이는 양지마을에서 아빠와 같이 삽니다. 갓 돌을 넘었을 때 엄마가 돌아가셨습니다. 은경이는 아빠가 일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허리가 아픈 아빠는 정부가 주는 한달 40만원으로 생활합니다. 은경이는 여기에서 8만원을 받습니다. 5만원은 용돈이고, 3만원은 차비입니다. 어느쪽으로나 다 모자랍니다. 스타킹, 문구, 교재, 간식, 생리대 등을 사려면 턱도 없습니다. 그래서 버스는 등교할 때만 탑니다. 집에 올 때는 30분 거리를 혼자 걷습니다. 내년에 거리가 먼 ㄱ·ㄴ고등학교로 배정될까봐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학원을 갈 때도 주로 걷습니다. 복지기관이 추천을 해줘 무료로 종합반을 듣습니다. 은경이가 양지마을 학생들 중에선 공부를 잘 하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내신 3등급 정도의 실력입니다. 수학을 잘 못해서 강의를 더 듣고 싶지만, 가끔 있는 특강은 엄두도 못냅니다. 특강료가 12만원이라 아빠한테 말도 못 꺼냈습니다. 학원에서 저녁 때가 되면 배가 고픕니다. 다른 아이들이 매점에 가서 ‘먹고 싶은 것’을 살 때, 은경이는 ‘살 수 있는 것’을 사거나 그냥 지나칩니다.
해질무렵 상계동 양지마을 주택의 지붕.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주변에 깊은 얘기를 털어놓을 친구는 없습니다. 같은 반에 비슷한 처지의 친구가 있지만, 그 친구는 그래도 할머니와 어머니가 수입이 있습니다. 그 친구마저 자기 처지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면 은경이는 입을 다뭅니다. 집 사정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이런저런 ‘혜택’을 많이 받았습니다. 선생님들은 티나지 않게 급식비나 수학여행비 같은 것을 무료로 처리해주셨습니다. 은경이는 때로는 상대방의 바람에 맞게 가식적으로 가난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그래야 자기한테 혜택도 많이 온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게 싫습니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 애들 앞에서 자기 처지가 드러나는 것도 싫습니다. 반 친구들이 영화 보러 가자고 하면 영화 싫어한다고 답하고, 놀이공원 가자고 하면 그것도 싫어한다고 말했습니다.
가난 과장하기 싫은데…
작가도 고고학자도 배고픈 직업이라기에 포기 은경이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6학년 때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꿈이 작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돈을 잘 못 번답니다.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고고학자도 되고 싶었는데, 같은 이유로 접었습니다. 앞으로 뭘 공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로 가기로 결심은 했는데, 아직도 헷갈립니다. 주변에선 실업계로 가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공부 잘하는 애들과 경쟁해서 대학을 가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비싸다는 대학 등록금도 벌써 걱정입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걱정입니다. 아빠에게 나오는 지원금도 끊기기 때문입니다. 그 때부터는 은경이가 가장이 될 겁니다. 고모댁에 오래 맡겨졌던 은경이는 아빠에게 정이 가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빠가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은경이는 소원이 ‘생각없이 사는 것’입니다. 생각과 걱정이 많다 보니, 초등학교 6학년 때나 중학교 1학년 때는 걷다 보면 어디든 금방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얼마전부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다는 걸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젠 생각을 조금 덜 하기로 했답니다. 그저 다른 아이들처럼 아무 생각없이 ‘티머니 카드’를 써보고 싶고, 걱정 없이 옷도 사고 싶습니다. 부모님에게 의지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아이들이 은경이는 부럽습니다. 은경이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것은 이 말을 할 때였던 것 같습니다. 돌아가신 엄마 얘기를 할 때도 안 그랬는데, 스스로 고단한 생활을 지탱해야 한다는 무서운 현실감이 이 아이에겐 엄마에 대한 그리움 따위보다 더 눈물나는 일인가 봅니다. 지난달 29일 제가 사는 양지마을에 있는 나눔의 집 공부방에서 은경이를 만났습니다. 쉽지 않은 인터뷰에 응해준 은경이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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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상계4동 나눔의 집 공부방에서 방과 후 활동을 마친 학생들이 지난 5일 저녁 환하게 불이 켜진 공부방 창문을 뒤로 한 채 마을로 내려가고 있다. 아이들은 학원에 갔다가 다시 공부방으로 돌아와 보통 밤 9시까지 머문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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