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중의 건강수첩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이 낸 자료를 보면 전체 영유아 가운데 정부가 권장하는 필수예방접종을 받는 비율이 75%로 경제협력개발기구가 권장하는 95%보다 20%포인트나 낮다. 이 때문에 가까운 민간 병의원에서 예방접종을 받을 때도 이를 국가 예산에서 지원해 부모들의 부담을 줄여서라도 예방접종을 받는 비율을 높이자는 정책은 국민의 동의를 쉽게 얻을 수 있다.
현재 민간 병의원에서 필수예방접종을 모두 맞힐 경우 약 33만원이 들고, A형 간염이나 폐구균 예방접종 등을 추가로 받으면 100만원 이상 든다. 여당은 지난 9월 저출산 고령화 대책의 하나로 병의원에서 필수예방접종을 받을 때 드는 부담을 절반 가까이 줄여주기로 했다.
하지만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내년도 예산안을 보면 필수예방접종 지원에 대한 증액분이 반영되지 않았다. 앞서 필수예방접종에 대해 국가가 올해보다 지원을 더 해야 한다고 해당 부처와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결정을 했는데도 말이다. 이 때문에 정부와 여당이 ‘진정 서민층을 위한 정치와 행정을 하고 있느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이에 대해 여당이나 경제부처에서 경제적 부담이 문제라면 보건소를 이용하면 된다고 말하나, 맞벌이 등으로 평일 근무시간대에 시간을 낼 수 없거나 교통이 불편한 경우에는 사실상 보건소 이용은 불가능에 가깝다. 모든 의료 이용에는 쉽게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접근성이라는 요소가 매우 중요함은 의료정책에서는 상식이다. 경제부처와 여당의 보건소 권장은 이런 이유 때문에 예방접종 비율이 낮은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문제는 필수예방접종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만 해당 질병 발생 가능성이 큰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건당국이 예방접종 비율을 높이려 하는 이유는 전체 인구의 80~90%가 어떤 감염병에 대해 면역력을 가져야 해당 감염병이 아예 유행하지 않게 되는 효과를 누리려 함이다. 면역력을 가진 비율이 이보다 낮으면 대규모까지는 아니겠지만 그 사회에 유행이 일어날 수 있다.
한 감염병이 유행하면 가장 크게 피해를 보는 아이들은 예방접종을 받지 못했거나 평소 영양섭취와 운동 등이 부족해 면역력이 약한 이들이다. 물론 저소득층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이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예방접종을 받은 아이들도 안심할 수 없다. 예방접종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가 항체가 생겨 면역력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전 지구를 놀라게 했던 ‘신종 인플루엔자’의 경우 우리나라의 임상실험에서 예방접종을 받은 뒤 항체 생성률을 조사한 결과 18~65살 미만은 91.3%, 만 65살 이상은 63.4%, 만 9~17살은 82.6%로 나타난 바 있다. 8살 이하 어린아이들은 80%에도 미치지 못했다. 실제로 예방접종을 받은 아이들 가운데 해당 감염병에 걸렸다는 소식은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결국 필수예방접종 국가지원액 확대 좌절은 예방접종을 받지 못한 아이들뿐만 아니라 접종을 받은 이들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 감염병에 대해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아이들 모두가 면역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 감염병이 아예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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