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질환 대형병원 가면 약값부담 높이기로
‘지역 주치의’ 등 제도개선안 빠져 실효성 의문
전문가·시민단체 “저소득층만 피해 늘어” 비판
‘지역 주치의’ 등 제도개선안 빠져 실효성 의문
전문가·시민단체 “저소득층만 피해 늘어” 비판
복지부 ‘의료기관 기능재정립 계획’ 발표
정부는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감기, 단순 고혈압 등 가벼운 질환자가 대형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으면 약값 부담을 늘리고, 만성질환자가 동네의원 한 곳을 정해 진료를 받으면 진료비를 줄여주기로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시민단체들은 이런 대책으로는 진료비를 상승시키는 의료 공급자의 행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을 뿐 아니라 환자들의 부담만 늘리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보건복지부는 의원·병원·대형병원의 무한경쟁으로 진료비는 큰 폭으로 오르고, 의료자원은 비효율적으로 활용되는 현실에 대한 개선책으로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기본계획’을 17일 발표했다.
기본계획에는 의원·병원·대형병원의 역할 분담 대책이 담겨져 있는데, 의원은 만성질환자나 노인 환자들을 위한 1차의료의 역할을 강화하고, 병원은 전문병원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기로 했다. 또 대형병원은 중증질환자에 대한 진료 기능과 함께 교육 및 연구 기능을 대폭 강화해 연구중심병원으로 만들어갈 방침이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올 상반기에 의료기관 종류별 표준 업무와 함께 서비스 제공 및 의료 이용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할 계획이다.
또 환자들의 의료기관 이용 행태를 바꾸기 위해, 동네의원을 이용하는 만성질환자의 진료비 부담을 덜어주고, 감기나 고혈압 등 가벼운 질환으로 대형병원 외래를 찾으면 환자의 약값 부담 비율을 올릴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인력과 장비 등 의료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전문의 수련 제도를 포함한 의료인력 제도의 근본적인 개편안을 마련하고, 고가 의료장비에 대한 품질검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이런 대책을 수립하게 된 배경에 대해 대형병원에 가벼운 질환자들까지 몰리면서 불필요한 의료 이용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 환자들의 진료비 부담이 커지고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는 현실을 꼽았다. 실제로 대학병원 등 대형병원의 외래진료 가운데 약 33%가 의원에서 진료하기에 적합한 질환인데도 환자들은 대형병원을 찾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전체 의료기관 가운데 의원의 진료비 비중은 2009년 31.6%로 최근 5년 동안 6.5%포인트 감소했다. 병상 수는 우리나라가 인구 1000명당 9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5.4개)의 2배에 가깝다.
정부 대책에 대해 이재호 일차의료연구회 회장(가톨릭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은 “지역주민의 건강을 지속적이고 포괄적으로 돌볼 주치의 제도나 병원 및 대형병원의 의뢰체계 확립 등과 같은 제도적 개선 방안이 빠져 있어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며 “대형병원 외래 약값 부담을 늘리면 저소득층의 의료 이용 문턱만 높아질 뿐 부유층에게는 별다른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관련 시민단체들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어 “의료 공급자들의 과당경쟁으로 고가 진료장비 및 병상 수가 크게 늘어 환자들에게 막대한 부담으로 다가오는데도 공급자를 규제할 만한 효과적인 개선책이 없다”며 “환자들의 약값 부담을 늘리는 방안은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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