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여 품목 일반약 전환 요구…의사회 “강행땐 좌시못해”
대한약사회가 비아그라 등을 의사의 처방없이도 팔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 데 이어 `성분명 처방’도 요구하고 나섰다. 성분명 처방은, 의사가 약을 처방할 때 약의 효능을 나타내는 성분만 처방하면 약사가 해당 성분이 든 여러 약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환자에게 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박카스, 까스명수 등을 슈퍼 등에서 팔 수 있도록 한 걸 계기로 의약계의 해묵은 논쟁들이 재연되고 있는 형국이다.
대한약사회는 지난 18일 서울 서초동 약사회관에서 긴급 궐기대회를 열고 의약품 슈퍼 판매를 저지하기 위해 강력한 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당장 21일로 예정된 중앙약사심의원회 의약품분류소위원회 2차 회의에서 일부 일반의약품의 의약외품 전환을 반대하고 나설 예정이다. 약사회는 또 대통령과 국민에게 드리는 글과 결의문을 채택해, 성분명 처방을 도입하고 1200여개 품목의 전문약을 일반약으로 전환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에 앞서 대한약사회는 17일 비아그라, 제니칼(비만치료제), 사후 피임약, 벤토린(천식기도확장제), 테라마이신(눈 염증 치료제) 등을 일반약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성분명 처방이나 전문약의 일반약 전환은 지난 2000년 의약분업 당시부터 의사와 약사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던 정책들이다. 특히 성분명 처방은 약의 선택 권한을 의사에서 약사로 넘기는 제도이기 때문에 더욱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의사단체 쪽은 일단 관망하겠다는 태도이지만, 성분명 처방 도입 등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면 나서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약사법 개정을 추진하는 등 일반약의 약국 외 판매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약사들이 반발한다고 의사들마저 집단 행동에 나서면 자칫 의사들의 정당한 주장이 왜곡될 소지가 있다”며 “이런 이유로 대정부 투쟁 등을 결의하기 위한 전국의사대표자대회를 연기했지만, 성분명 처방 등과 같은 정책을 약사회가 밀어부치려 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반약의 슈퍼 판매 허용 등을 담은 경제부처의 ‘서비스 산업 선진화 방안’이 그동안 잠복해 있던 논쟁을 다시 촉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이익단체의 압력에 따른 ‘레임덕’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44개 품목의 의약외품 전환을 뒤집기는 힘들 것”이라며 “이에 따라 약사회는 전문약의 일반약 전환이나 성분명 처방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약을 둘러싼 의사와 약사 사이의 논쟁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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