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중의 건강수첩
지속 가능한 보건의료체계 마련을 위해 구성된 보건의료미래위원회가 최근 술이나 패스트푸드, 탄산음료 등에도 담배처럼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을 정부에 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음주 폐해 및 비만 예방을 위해 필요성은 인정하나, 서민들을 비롯해 국민들의 호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야 하고 관련 부처와의 협의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런 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시점 등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당장 시행할 정책은 아니라는 뜻을 밝혔지만, 건강증진부담금을 놓고 ‘죄악세’라는 비판과 함께 도입 여부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찬성 쪽 입장을 보면 우선 세계적인 추세를 근거로 든다. 세계 여러 나라와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의 담뱃세나 주세 등은 많이 낮고, 게다가 영국 등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 일본 등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담배나 술에 붙는 세금을 계속 인상해 왔다는 것이다. 또 담배, 술 등에 부과한 세금으로, 사람들이 담배나 술을 끊게 하거나 최소한 이들의 건강 증진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된다는 논리도 있다.
하지만 술 등에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이 서민들을 이중으로 괴롭히는 ‘죄악세’가 되지 않게 하려면 여러 조건들이 필요하다. 우선 술, 패스트푸드 등이 간암을 비롯한 각종 간 질환, 비만 등을 일으켜 건강을 해치고 수명을 단축시키는지에 대한 의학적인 근거가 확실해야 한다. 최근 알코올성 간 질환, 음주 운전이나 비만의 사회적 비용 등이 추계되고 있으므로, 근거를 어느 정도 확보해 가는 단계라 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석면 등 암 유발물질이나 담배보다는 그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의 유해성만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정말 더 큰 문제가 되는 다른 원인을 간과하는 오류는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과다한 노동시간, 직무 스트레스 등을 비롯해 유해한 작업 환경 등이 이들 담배나 술, 패스트푸드보다 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쏟아야 할 관심이 줄어들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직장이나 사회에서 책임져야 할 건강을 개인의 습관으로 돌리는 오류가 생길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와 함께 술이나 담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서민들에게 이중 고통을 줘서는 안 된다. 한 가지 예로, 현재 저소득층의 흡연율이 높게 나타나지만, 이들은 정작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금연클리닉을 제대로 이용할 형편이 못 된다. 일용직 등으로 일하다 보면 금연클리닉에 갈 시간도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담배, 술, 패스트푸드 등을 더 많이 이용하는 저소득층의 건강 수준을 높이는 정부 정책이 현재의 세금 체계에서도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돈을 더 걷어야 저소득층의 건강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면, 이른바 ‘부자 감세’에 따른 세수 감수와 ‘4대강 사업’ 예산 탓에 빚어진 재정 적자를 메우려는 꼼수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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