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보건지소의 의료진들. 왼쪽부터 권훈(한의사)·박찬(일반의)·정이선(간호사)·임연정(〃)·김남일(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재호(치과의사)씨.
‘연평도 유일한 의료기관’ 보건지소 6명의 의료진
하루에 주민들 100여명 진료
해상훈련만 해도 불안하지만
이곳서 일하는 게 우리의 사명
하루에 주민들 100여명 진료
해상훈련만 해도 불안하지만
이곳서 일하는 게 우리의 사명
지난 9일 밤 11시, 40대 초반의 남성이 인천시 옹진군 연평 보건지소의 문을 두드렸다. 술자리에서 이웃 주민과 싸우다 얼굴을 다쳤다고 했다. 늦은 밤이었지만, 김남일 보건지소장은 지소 2층 숙소에서 내려와 그를 진료했다. 30분가량 치료를 한 뒤 환자를 돌려보낸 그는 “연평도에 의료기관이 이곳 하나뿐이다 보니 밤중이나 새벽에도 지소 문을 두드리는 환자들이 많아 이런 일은 일상에 가깝다”고 했다.
이날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김 지소장을 비롯해 치과의사·한의사·간호사 등 6명의 의료진은 “폭격이 또 언제 있을지 몰라 긴장은 되지만, 주민 건강은 보건지소가 책임진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들은 당뇨·고혈압을 비롯한 만성 지병부터 외상 환자나 치과 환자까지 하루 100여명의 주민들을 진료한다. 보건지소는 지난해 11월23일 북한의 포격 당시 포탄에 맞아 부서지는 바람에 지금은 임시로 다른 건물을 빌려 쓰고 있다. 다행히 의료진들은 첫 포격 뒤 신속히 대피해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포격의 상처는 여전했다. 지난해부터 이곳 지소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 임연정씨는 “포격 순간 너무 놀라 넋이 나갈 정도였다”며 “지금도 해상훈련을 할 때 포격 소리가 들리면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 역시 상당수가 포격으로 인한 정신적 상처로 고통받고 있다. 김 지소장은 “최근 건강검진을 위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포격 뒤 50살 이상 환자의 절반 이상이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씨는 “서울의 국립의료원에서 일하다가 자원해서 이곳으로 온 만큼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올 4월에 온 다른 의료진들도 묵묵히 자신들의 일을 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한의사인 권훈씨는 “직접 포격을 당하지 않아서 그런지 그렇게 겁이 나지는 않는다”며 “걱정하시던 부모님들도 이제는 안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 땅과 3~4㎞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다 지난해 포격 뒤 언제든지 군사충돌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긴장감이 여전히 감돌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곳 보건지소 의료진들은 그 어느 곳에 뒤지지 않는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심재봉 옹진군 보건소장은 “고립된 섬인데다 시설도 낙후돼 누구도 일하기 힘든 곳에서 6명의 의료진이 최선의 진료를 하고 있다”며 “면에서도 군대 대신 온 공중보건의사들이라는 인식을 바꿀 정도로 칭찬이 자자하다”고 말했다. 또 심 소장은 “특히 김 지소장은 진료에 필요하다며 자기 돈을 들여 초음파기계를 지소에 놓고 진료를 하고 있다”며 “방사선 촬영 인력이나 진단장비 등을 더 갖춰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내년 5월까지 대연평도에는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보건지소를 새로 짓고, 대연평도에서 배로 10분가량 떨어진 소연평도에는 보건진료소를 설립할 계획이다.
연평도/글·사진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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