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고 신해철씨 의료사고 의혹을 수사중인 가운데 누리꾼들은 ‘유명인이라서 이만큼이라도 의혹이 밝혀진 것이다. 일반인이라면 어림도 없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의료사고를 당하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의료사고에서 의사 과실을 입증하는 건 왜 어려울까. 5일 <한겨레>가 의사 출신 변호사인 ‘법무법인 태신’의 윤태중(36·사법연수원 40기) 변호사에게 물었다.
1. 의료사고, 왜 피해자들이 병원 과실을 입증하기 어렵나요?
“약제 사고는 어떤 약을 썼는지 정확히 기록에 남아 있으니까 과실 여부를 입증하기가 쉬운 편이죠. 반면 수술 사고는 진료기록부나 수술기록지를 가지고 수술 과정상 과실이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수밖에 없어요. 사람이 죽었다면 부검 결과가 참고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참고할 자료가 없잖아요. 그런데 수술기록지 작성은 수술한 사람이 한단 말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과실을 밝혀내기는 어렵겠죠.“
2. 자신의 잘못을 자신이 작성한 기록에 의해 입증해야 한다는 뜻인가요?
“그렇죠. ‘실수로 절개했다’고 쓸 리가 없죠. 오히려 그렇게 기록하는 건 양호한 경우고,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말 그대로 ‘과실’이라는 건 모르고 했다는 거 잖아요. 자신이 몰라요. 그러면 (자신이 쓴) 수술기록지에 (과실이) 나올 리가 없는 거죠. 오히려 신해철씨 같은 경우는 돌아가셔서 부검을 할 수 있고 다른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기록이 있으니까 과실 여부 밝히기가 쉬운 경우입니다.” (*윤 변호사는 “장 위쪽은 유착이 풀리고, 아래쪽은 유착이 덜 풀린 상태에서 음식물이 들어가 장 운동이 시작됐을 경우 장 아래쪽이 막혀 있기 때문에 압력에 의해서 장 위쪽이 터졌을 수도 있다. 압력에 의해 터졌는지, 칼에 의해 잘렸는지는 부검에 의해 정확히 나올 것”이라고 첨언했다)
의료사고로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가 ‘의료사고피해자 증언대회’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던 중 감정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3. 진료기록부는 법으로 쓰도록 강제되는 기록인가요?
“네. 의료법을 보면 진료기록부를 기록하도록 강제하고 있어요. 거짓으로 작성한 경우 또는 아예 작성하지 않은 경우 모두 처벌합니다. ‘상세히 기록하라’고 돼 있지만 허술하게 기록해도 처벌하는 규정이 없어요. 진료기록부가 수술기록지를 다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4. 허술하게 기록하지 않도록 양식을 표준화해야 하지 않나요?
“그렇게까지 하려면 환자를 오랜 시간 봐야 해요. 구조적으로 의료 시장 문제와 연결됩니다. 환자를 오래 보면 살아남을 수가 없는 구조에요. 양식을 표준화하게 되면 진료 시간이 엄청나게 걸려요. 우리나라 의료 수가로는 환자를 그렇게 꼼꼼히 볼 수 없어요. 물론 표준화하면 좋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려워요. 환자를 많이 봐야 유지할 수 있는 체계라서요. 질병마다 어떻게 표준화할 것인지도 어려운 얘기에요. 질병의 종류가 워낙 많기 때문에요.
5.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진료기록부를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한가요?
“사후에 의사가 기재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바로 확보하는 게 중요하죠. 의사에게 현재 벌어진 상황에 대해 물으면서 녹취를 해두는 것도 좋아요. 대화 참여자가 녹취하는 건 불법이 아니니까요. 증거가 될 수 있고 나중에 전문가가 판단할 때도 도움이 되니까요. 나중에는 자기가 뭘 잘못했다고 생각이 들면 숨기려고 할테니까, 초반에 녹취하는 게 도움이 되겠죠.”
6. 진료기록부는 환자가 요구하면 언제든 입수 가능한가요?
“달라고 하면 됩니다. 안 주면 처벌을 받습니다. 환자가 원하면 내줘야 합니다. 하지만 기록만으로 과실을 입증하기는 굉장히 어렵다고 봐야죠. 요즘은 법원이 제3의 의사에게 보내서 과실 여부 판단하게 됩니다. 근데 수술은 응급상황이 많아요. 사후에 보면 의사가 잘못했다고 해도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서 보면 과실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7. 신해철씨의 경우 진료기록부 외에도 수술 동영상이 있을 수 있다고 하던데요?
“네. 복강경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수술 동영상이나 스틸 사진이 있을 수 있어요. 이 병원은 녹화하지 않았다고 하는 걸 보니 스틸사진만 찍었을 수도 있겠네요. 개복 수술은 수술 장면을 촬영하지 않지만 복강경 수술을 했다면 수술 장면이 촬영돼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걸 확보하는 것도 좋아요. 물론 신해철씨의 경우 촬영했다해도 유착이 많이 돼서 시야가 흐릴 거에요.”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